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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ssia 포커스] 눈 할아버지 '데드 마로스'가 선물꾸러미 들고 오시네

중앙일보 2013.12.27 00:10 4면 지면보기
모스크바 마네즈 광장에 설치된 트리. [로이터]
현관문 벨이 울리면 아이들은 잔뜩 기대에 부푼다. 어른들은 모르는 척한다. 문이 열리고 눈앞엔 빨간 볼과 빨간 코, 그리고 희고 곱슬거리는 수염을 달고 눈웃음을 짓는 데드 마로스 눈 할아버지다! “해피 뉴 이어! 즐거운 성탄 되세요! 마샤와 사샤네 집이 맞나요? 인형이랑 자동차를 갖고 싶어 했다며”라고 데드 마로스가 낮고 굵은 목소리로 말한다. 마샤와 사샤는 기쁨의 비명을 지르며 선물로 뛰어든다. 하지만 선물을 그냥 받을 수는 없다. 아이들은 시를 읊고 노래를 하며 데드 마로스의 마음에 들어야 한다. 이 중요한 일을 위해 12월 초나 그보다 더 일찍 장기자랑 준비에 들어간다.


러시아의 성탄절 메신저
손녀 ‘스네구로치카’와 함께 방문
대행 서비스 등장, 1회 9만6000원

서양에서 크리스마스와 새해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산타클로스라면 러시아에는 데드 마로스가 있다. 닮은 점이 많긴 하지만 러시아의 데드 마로스엔 고유한 특징이 있다. 예를 들면, 산타는 양말에 선물을 넣어주지만 데드 마로스는 크리스마스 트리 밑에 선물을 두고 간다. 집을 방문할 땐 굴뚝이 아닌 문을 통해 들어가고, 무엇보다 데드 마로스는 혼자가 아니라 손녀인 스네구로치카(눈 아가씨)와 함께 다닌다.



러시아에서 데드 마로스와 스네구로치카가 없는 새해는 있을 수 없다. 러시아 사람들은 선물만 받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직접 만나고 싶어 한다. 그래서 러시아에서는 데드 마로스 행사를 한다. 이 행사로 누군가는 돈벌이를 한다. 주로 학생들이나 신인배우 또는 무명배우들이 그 역할을 한다. 사실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데드 마로스가 될 수 있다. 전문성이 전혀 필요 없기 때문이다. 물론 부모들이 아이들을 위해 가장 많이 찾는다. 하지만 아이들뿐만이 아니다. 선물의 의미를 떠나 데드 마로스의 방문으로 축제 분위기가 한껏 살아나고 기분 좋은 이벤트가 되기 때문이다.



데드 마로스는 선물만 전달하는 게 아니다. 시를 외우고 노래를 마친 아이들과 트리 앞에서 춤을 추며 즐거운 시간은 보내고 가족들과 기념사진도 찍는다. 데드 마로스의 방문은 30분 정도인데 가끔 길어지기도 한다. 기분 좋아진 부모들이 함께 식사를 하거나 한잔 하자고 요청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길에서 살짝 취한 데드 마로스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심지어 코미디나 유머로 여기저기에 패러디될 정도로 일반적인 일이다.



데드 마로스는 계절 직업이다. 보통 12월 중순부터 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하는데 마지막 주가 절정이다. 많은 경우 하루 7~8곳을 방문한다. 아침엔 유치원에 갔다가, 다음엔 학교, 점심 뒤 가정집을 방문하고 저녁엔 연말 MT에 가는 식이다. 새해가 가까워질수록 데드 마로스와 스네구로치카 서비스의 가격도 점점 오른다. 가정집 방문의 경우 대략 3000루블(약 9만6000원) 정도다. 방문 시간이 길수록 가격도 비싸다. 데드 마로스라는 일은 놀면서 돈 버는 일 같아 보이기도 한다. 선물을 주고 즐겁게 해주고 아이들과 재미있게 놀고 돈까지 번다니 이보다 더 쉽고 즐거운 직업이 있을까. 하지만 오해다. 데드 마로스 일을 해본 사람들은 “하루 종일 온 도시를 돌아다녀야 하고 끼니도 제대로 챙겨 먹을 수 없어 굉장히 피곤한 일”이라고 말한다.



마리야 오세트로바 기자



본 기사는 [러시스카야 가제타(Rossyskaya Gazeta), 러시아]가 제작·발간합니다. 중앙일보는 배포만 담당합니다. 따라서 이 기사의 내용에 대한 모든 책임은 [러시스카야 가제타]에 있습니다. 또한 Russia포커스 웹사이트(http://russiafocus.co.kr)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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