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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ssia 포커스] '털외투 청어' 먹으며 샴페인 건배 … 거리마다 폭죽

중앙일보 2013.12.27 00:10 4면 지면보기
모스크바 크렘린 궁 옆에 있는 굼 백화점에서 꼬마 소녀가 아이스크림을 핥으며 크리스마스 트리를 보고 있다. [Shutterstock]


2012년 12월 31일 밤. 블라디보스토크엔 눈이 내리고 있었다. 자정이 되자 스베틀란스카야 거리의 한 집 창문이 활짝 열리더니 한껏 빼입은 사람들이 고개를 내밀고 외쳤다. “오라! 새해여, 오라!”

러시아의 새해맞이
엄청난 양의 샐러드 꼭 해먹어야
큰 그릇 없으면 대야에 담기도
동·서부 시차 7시간 … 풍습 달라
크렘린 종소리 들으며 소원 빌어



“무슨 일?” 모스크바서 온 우린 놀랐다.



“저렇게 말해주지 않으면 새해가 어떻게 우리를 찾아오겠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자란 친구 마샤가 웃으며 이 도시가 새해를 맞는 풍습을 설명했다.



모스크바와 페테르부르크에는 이런 풍습이 없다. 새해도 블라디보스토크보다 7시간 늦게 찾아온다. 요즘은 러시아의 유럽 지역에 사는 사람들도 극동지방에서 제일 먼저 새해를 맞이한 친지에게 전화해 축하 인사를 나눈다. 러시아에서는 12월 31일과 1월 1일 밤 심각한 통신 마비가 발생하곤 한다. 매년 통신사들이 이 시기에 통화량이 폭주할 것에 대비하는데도 친지와의 전화 연결에 실패한 사람들이 생기곤 한다.



유럽과 다른 국가들은 가톨릭식 성탄절을 중요한 축일로 기념하지만, 러시아는 12월 31일 밤을 준비하는 데 전념한다.



모스크바에 살며 물류회사에 다니는 니콜라이(35)는 이미 한 달 내내 새해맞이 전통의 영향을 직접 받고 있다. 상점은 선물과 새해 상차림을 위해 식료품을 사는 사람들로 붐비고 길은 고객과 파트너사에 카드나 선물 같은 ‘신년 메시지’를 보내려는 차량으로 몇 ㎞씩 막힌다.



일주일도 채 남지 않은 2013년의 마지막 날은 평일인 화요일. 하지만 니콜라이의 상사는 직원들이 러시아의 주요 명절인 신년 첫날을 준비할 수 있도록 그날은 휴무하게 했다. 다른 회사도 대부분 마찬가지다. 니콜라이는 다른 러시아인과 마찬가지로 전통적인 방식, 즉 가족과 함께 새해를 맞는다. 이날은 러시아에서 가장 가족적인 명절이다.



새해를 며칠 앞둔 지금 거리뿐 아니라 아파트에도 장식품이나 장난감, 불빛, 과자, 귤로 장식한 ‘욜카(크리스마스트리)’가 세워졌다. 대부분 ‘진짜(나무로 된)’ 크리스마스트리를 선호한다. 진짜 트리를 세우면 침엽수 향이 퍼지는데, 여기에 귤 향기가 더해지면 모든 러시아인이 ‘새해 냄새’라 부르는 향이 생겨난다. 12월 31일 저녁 즈음에는 포장한 선물을 트리 아래 놓아둔다. 그리고 막바지 명절 준비에 들어간다. 아이들도 함께 새해를 맞을 수 있게 미리 잠을 재운다.



러시아의 새해 상에서 빠질 수 없는 요리가 있다. 한국에선 떡국이지만 러시아에선 샐러드다. 대부분 러시아 사람은 샐러드를 아주 많이 만든다. 만든 샐러드를 다 넣을 만큼 큰 그릇이 집에 없는 경우도 있다. 그 경우 ‘대야’에 담아 내간다.



셀료드카 포드 슈보이 샐러드
전통적으로 러시아인이 새해에 먹는 샐러드는 ‘올리비에’와 ‘셀료드카 포드 슈보이(털외투 입은 청어라는 뜻)’이다. 흥미로운 점은 세계적으로 ‘올리비에’가 러시아식 샐러드로 알려졌다는 것이다. 데친 채소와 고기(소비에트 시대에 햄으로 바뀌었다)로 만든 이 샐러드의 프랑스 명칭 ‘올리비에’는 그 창시자인 주방장 류센 올리비에의 이름을 딴 것이다. 그는 1860년대 초 모스크바에서 프랑스 요리 레스토랑 ‘에르미타주’를 운영했다. ‘셀료드카 포드 슈보이’ 샐러드는 소비에트 시대부터 이미 새해 음식이었다. 이 샐러드에는 소금에 절인 청어와 삶은 감자, 비트, 당근, 계란, 신선한 사과가 들어간다. 이 두 샐러드 이외의 새해 요리는 집마다 다르다. 그러나 대개 1년에 한 번만 엄두를 낼 수 있는 손이 많이 가는 복잡한 요리를 해보려고 한다. 예를 들면 어린 돼지 통구이나 사과를 곁들인 오리 요리, 건과를 곁들인 오리 요리 같은 것들이다. 물론, 새해를 맞는 데는 보드카와 샴페인이 필수다. 소비에트 시대에는 선택의 폭이 좁아 소비에트연방 전역에서 ‘소비에트스코예 샴페인’이 터졌다. 그 후 ‘철의 장막’이 걷히고 상점에 이탈리아와 프랑스산 주류가 진열되면서 경쟁이 치열해졌지만 소비에트스코예 샴페인은 여전히 인기 품목이다.



시계를 거꾸로 돌리면서 새해맞이 일정을 분 단위로 살필 수도 있다. 밤 11시 아이들을 깨워 옷을 입힌 다음 식탁에 앉힌다. 11시30분에는 (거리일 경우) 보드카와 글루바인(데운 와인)을 마시며 지난해를 돌아본다. 11시50분에는 텔레비전을 켜고 모든 채널에서 방송하는 크렘린 시계탑 배경의 대통령 연설을 거의 모두가 듣는다.



러시아에는 9개의 시간대가 있어서 대통령 연설을 미리 녹화한다. 대통령은 5분간 한 해를 결산한다. 중요한 사건을 언급하고 내년 계획을 약속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순간인 ‘크렘린의 스파스카야탑 시계종이 자정을 알리는 시간’이 온다. 한국의 보신각 타종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시계탑 종소리는 1분만 이어진다. 이 1분 이내에 샴페인을 열어 잔에 따르고 소원을 빌고 친구와 가족과 건배하고 마시기까지 해야 한다. 종이 멈추고 국가가 연주되기 전까지다.



이제 새해가 시작됐다. 모두 식탁으로 되돌아가 다시 마시고 춤추고 선물을 주고받는다. 그러다가 거리로 나가 폭죽을 터뜨린다. 새해 폭죽 풍습은 1699년 개혁군주 표트르 대제의 지시로 시작됐다. 대제의 명령에 따라 7일간 새해를 기념했다. 집이나 대문 앞에 장식용 침엽수를 세우고, 저녁마다 타르가 든 통에 불을 붙이고, 축포를 쏘았다. 크렘린 궁전 앞에서는 200여 문의 대포를, 민가에선 소총을 쏘았다. 새해가 러시아의 진정한 명절이 된 것은 1919년 그레고리력으로 새해를 기념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하지만 아직 일부 가정에는 지금의 1월 13일에 해당하는 ‘정교식 새해’를 맞는 전통이 남아 있다.



어쨌든 아침까지 ‘요란한 새해맞이’를 한 뒤 고요를 되찾고 러시아인들은 잠을 청한다. 1월 1일 아침은 연중 가장 조용한 시간이 된다. 오후 2시까지 거리는 텅 비고 일하는 사람도 없다. 신년 맞이는 러시아 민족의 ‘하나됨’을 느낄 수 있는 날이다.



리자 레비츠카야 기자







본 기사는 [러시스카야 가제타(Rossyskaya Gazeta), 러시아]가 제작·발간합니다. 중앙일보는 배포만 담당합니다. 따라서 이 기사의 내용에 대한 모든 책임은 [러시스카야 가제타]에 있습니다. 또한 Russia포커스 웹사이트(http://russiafocus.co.kr)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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