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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ssia 포커스] 합법 사업체로 탈바꿈 … 전 조직원, 교수·의원 변신도

중앙일보 2013.12.27 00:10 3면 지면보기
1994년 9월 경찰 조직폭력 단속반이 범인을 체포하고 있다(왼쪽). 납치해 50만 달러를 요구한 혐의를 받고 있는 조지아 출신 타리엘 오니아니가 재판을 받기 위해 모스크바 하모브니체스키 법정으로 들어가고 있다. [RUSSIA OUT, 리아 노보스티]


1994년 4월의 시원한 저녁, 모스크바의 크라스노프레스넨스키예 사우나에서 건장한 체격의 캅카스 출신 남자가 걸어 나왔다. 건장한 보디가드들이 둘러쌌다. 걸음걸이와 도도한 눈빛…강력한 보스임을 알 수 있었다. 자동차 쪽으로 천천히 걸어가던 그가 한순간 멈추는가 싶더니 폭발 소리처럼 총성이 울렸다. 첫 발은 가슴을, 두 번째는 목을, 세 번째는 머리를 명중시켰다. 경호원이 그를 감쌌지만 늦었다. 1990년대 러시아 범죄계 대부 가운데 한 사람이자 거대 사업가였던 오타리 크바트리시빌리가 이렇게 피살되었다. 며칠 뒤 모스크바의 고급스러운 바간코보 공동묘지에서 성대하게 열린 그의 장례식에는 유명 운동선수와 예술가, 사업가들이 참석했다. 보리스 옐친 당시 대통령마저 조의를 표했다. 러시아 사회에 범죄 세계가 강력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던 시기의 일이다.

쇠락해가는 러시아 마피아
주로 업소 뒤 봐주며 보호세 갈취
지역별·인종별로 사업 분야 달라
푸틴 이후 쇠락 "미 영화서만 활개"



러시아 마피아는 1980~90년대 소련 붕괴를 전후로 활개를 쳤다. 정치적 불안정, 국가권력 약화, 러시아인 대다수의 빈곤화, 총체적 실업의 시기를 틈타 뒷골목 건달들과 운동선수들, 아프가니스탄 참전 병사들, 경찰과 심지어 KGB 출신까지도 범죄 대열에 대거 휩쓸려 들어갔다. 이들은 보통 지역을 기반으로 뭉쳐 도시를 분할 관리했다. ‘손체보 마피아’는 모스크바 남서부 손체보 지역을, ‘포돌스크 마피아’는 모스크바 교외 도시 포돌스크를 관리했다. 당시 막 태동하기 시작한 중소 사업체들은 곧 마피아 손아귀에 들어갔다.



대표적인 지역 마피아 활동은 뒤를 봐준다며 갈취나 다름없는 보호세를 받아내는 것이었다. 갈취는 너무 흔해 사업가라면 어떻게 하든 그들과 마주칠 수밖에 없었다. 유명한 러시아 헤비급 권투선수 출신으로 현 국가두마(하원) 의원이기도 한 니콜라이 발루예프는 마피아 갑(甲)질을 했다. 수사 기록에 따르면 당시 장래 세계챔피언으로 꼽히던 그는 ‘콜랴-쿠발다’라는 별명으로 통했다. 2m12㎝의 장신으로 엄청나게 체격이 큰 발루예프의 ‘협박 게임’을 견뎌낼 자가 없었다. 그의 첫 번째 트레이너는 한때 매점들의 ‘뒤를 봐주다가’ 문제가 생기면 그를 데리고 갔다. 어느 날 한 사업가가 끈질기게 말을 듣지 않자 트레이너는 그에게 “그래, 저 친구가 널 손봐줄 거야”라며 발루예프를 가리켰다. ‘콜랴-쿠발다’는 말 없이 사업가의 눈을 쳐다봤다. 갈등은 곧 끝났다. 이 때 일로 발루예프가 경찰에 끌려가자 사람들이 나서서 문제를 덮어줬다.



지역 마피아와 함께 인종별 마피아도 무수하게 생겨났다. 이들은 저마다 고유한 특징이 있었다. 아제르바이잔 마피아는 시장 상권을 관리했고, 집시 마피아는 마약 사업을 관리했다. 체첸 마피아는 가장 대담하고 잔인한 갱단으로 통했다. 영향력이 큰 체첸인들은 은행업뿐 아니라 대규모 투기에 관여했고 석유 사업을 관리했다. 조무래기 체첸인들은 몸값을 노리고 사람들을 납치했다.



마피아 영화 ‘죽은 남자의 블러프’. [RUSSIA OUT, 리아 노보스티]


1990년대에 활개쳤던 마피아 범죄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집권 이후 입지를 잃기 시작했다. 범죄 전문가들은 특히 마피아 단속반으로 불리는 러시아 내부무 특수부대를 꼽는다. 공식 명칭 ‘조직범죄 단속반’인 이 부대는 연방보안국(FSB)과 우열을 다툴 만큼 경찰 최정예 부대로 통했다.



정부가 목을 조여오자 마피아 가운데 일부는 거대 사업체로 무대를 옮기는 등 커다란 변화가 있었다. ‘손체보 마피아’의 전직 보스 중 세르게이 미하일로프(별명 ‘미하시’)는 법학박사가 돼 교수 겸 유명 자선가로 변신했다. 알렉세이 김(별명 ‘코레시’ 또는 ‘고려인’)은 레슬링 도장 ‘토르페도’의 관장이 되었는데, 그의 제자 중에는 그레코로만형 레슬링 올림픽 챔피언 하산 바로예프가 있다. 안드레이 스코치(별명 ‘스코치’)는 하원 의원으로 러시아판 ‘포브스’지에 따르면 2012년 자산 규모 79억 달러로 ‘러시아 부자 사업가’ 순위 19위에 올랐다.



내분도 마피아 약화의 또 다른 배경이 됐다. 그런 일이 바로 모스크바 최대 조직인 오레호보 마피아에서 일어났다. 끝없이 벌어진 내분 결과 보스 24명 중 22명이 살해됐다. 1990년대 말 경찰은 이 조직이 자행한 범죄 대부분을 밝혀냈다. 살아남은 보스들은 스페인으로 달아나 숨었지만 모두 검거됐다. 이 조직에서 가장 유명한 킬러로 ‘병사 레샤’라고 불린 알렉세이 셰르스토비토프는 2013년 수감 중에 『청산자: 전설적 킬러의 참회록』을 썼다. 이 책에서 그는 오레호보 조직범죄단 내부를 솔직하게 보여줬다. 킬러는 서문에 이렇게 썼다. ‘신보다 더 멋지게 살고 싶었던 사람들에게, 그리고 살아남았으나 마침내 깨달은 자유와 가정의 진정한 가치들을 꿈꾸고 있는 우리들을 위해 목숨을 바쳐 길을 내주고는 이 책을 읽을 시간도 없이 죽어간 수많은 사람에게 바친다.’



2013년 10월 미국 재무부는 러시아 인기가수 그리고리 랩스를 ‘러시아 마피아의 메신저’로 꼽고 그에 대한 제재안을 도입했다. 기자들이 묻자 랩스는 “과거에 음악가라면 누구라도 그런 교제가 있었다”고 답했다. 일간지 ‘소베세드니크’와의 인터뷰에서 랩스는 “모든 일이 이들에겐 그저 우스울 뿐이었다. 그런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범죄단 출신은 극소수만 남았다. 모두 손을 뗐거나 이제는 죽고 없다. 이들은 오래전부터 사업에 종사한다. 모든 것은 이미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고 말했다.



러시아인들은 20년 전의 마피아 방식이 사라진 지 오랜데 러시아 밖, 특히 미국의 할리우드가 ‘냉전’은 물론이고 러시아 마피아, 아랍 테러리스트들, 북한 간첩들과 같은 상투적 괴물들을 내세우는 것을 불편해한다.



2013년 5월 미국의 러시아연구소는 ‘러시아 마피아’라는 이름의 카드 한 벌을 출시했다. 카드에는 러시아 조직 범죄 대표 48명이 모여 있다. 연구소의 보도자료에는 ‘러시아 마피아는 전 세계적 규모의 현상이자 범죄 세계의 핵심 세력이다. 이 카드가 해당 문제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킬 것으로 보인다’고 쓰여 있다.



러시아 이민자 출신으로 뉴욕에 사는 라리사는 “미국인들은 러시아 마피아에 관해 이야기하길 굉장히 좋아한다”며 “상점을 나서는 할머니의 물건을 빼앗은 ‘러시아를 말하는 미성년자’가 체포되면 온 나라가 러시아 마피아를 체포했다고 떠들썩한데 웃기는 일이다. 러시아 마피아 신화는 러시아 사람들만 빼고 모든 사람이 믿는다”고 말한다.



러시아에선 ‘러시아 마피아’라는 용어 자체를 사용하지 않는다. 러시아 범죄 전문가인 경찰청의 블라디미르 오브친스키 소장은 “러시아 마피아라는 용어는 1970~80년대에 소련 출신 유대인 이민자들의 범죄조직에 처음 사용됐다. 이보다 더 넓은 의미로는 소련 출신들이 해외에 조직한 범죄단체를 지칭하는 것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드미트리 신 기자



본 기사는 [러시스카야 가제타(Rossyskaya Gazeta), 러시아]가 제작·발간합니다. 중앙일보는 배포만 담당합니다. 따라서 이 기사의 내용에 대한 모든 책임은 [러시스카야 가제타]에 있습니다. 또한 Russia포커스 웹사이트(http://russiafocus.co.kr)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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