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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ssia 포커스] 혼돈 거듭되는 볼쇼이극장

중앙일보 2013.12.27 00:10 2면 지면보기
볼쇼이극장(왼쪽)과 예술감독에게 황산 테러를 주도한 파벨 드미트리첸코. [로리, 포토 익스프레스]



황산 테러 이어 총지휘자 사직 … "표류하는 큰 배 신세"
치열한 경쟁과 스캔들 표면화
독단적인 주역 배정 폭로까지
공연 수준 하락 … 잡음도 계속

지난 12월 초 볼쇼이극장 총지휘자 바실리 시나이스키가 사직했다. 음악감독 책임을 맞은 시나이스키가 ‘돈 카를로스’ 베르디의 오페라를 맡은 지 2주 만에 발생한 일이어서 다들 경악했다. 그 사건은 러시아 최고 극장에 깃든 불행한 사태가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지난해 볼쇼이극장은 갈등과 운영진 교체의 진통을 여러 차례 겪었다. 극장장이 바뀌었고 주연급 무용수와 예술감독이 연루된 범죄가 발생했다. 몇 년 전에도 러시아 대중은 볼쇼이극장을 주시했다. 대규모 보수공사 때문이었다. 비용이 예산을 한참 초과하고 기한도 늦어져 2011년 겨우 마무리됐다. 공사가 끝난 뒤에도 여러 문제가 터지는 바람에 단원들은 새 단장을 마친 무대에서 마음껏 공연할 수 없었다.



지난 1월엔 볼쇼이극장 예술감독인 세르게이 필린이 얼굴에 황산테러를 당해 시력을 거의 잃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와 관련해 지난 3일 법원은 볼쇼이발레단의 무용수인 파벨 드미트리첸코에게 테러 사주 죄로 6년형을 선고했다. 공범과 도주를 도운 운전사도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 사건으로 볼쇼이발레의 무대 뒤편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경쟁과 스캔들이 대중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발레단도 드미트리첸코를 옹호하는 편과 필린의 손을 들어 주는 편으로 갈렸다.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 발레단을 나왔던 유명 무용수 니콜라이 치스카리드제도 가세해 극장의 숨 막히는 분위기와 독단적인 주역 배정 행태를 폭로했다.



전문가들은 볼쇼이 정도 수준의 극장에서는 비슷한 스캔들과 경쟁이 심심치 않게 일어나지만 그 일이 극장 밖으로 새어 나가는 일은 드물다고 했다. 러시아국립인문대학의 바딤 가예프스키 극장학 교수는 “사건이나 경쟁이 없는 발레단과 오페라단은 어디에도 없지만 대부분 내부에서만 회자하고 대중이 알게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갈등은 발레와 오페라 공연의 수준 하락으로 이어진다. 그네신 음악아카데미 성악과의 아긴 교수는 “몇 년 전부터 공연의 질이 계속 떨어지고 있다. 볼쇼이극장이 선보인 ‘예브게니 오네긴’과 ‘루슬란과 류드밀라’ 오페라도 별로였다. 극을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고 말한다.



일각에선 볼쇼이극장 퇴보의 원인으로 아나톨리 익사노프 전 극장장을 지목한다. 그가 재임했던 지난 13년 내내 볼쇼이극장 보수공사와 관련해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완공은 3년 지체됐고 공사비는 당초 18억 달러보다 16배나 불어났다. 결국 블라디미르 메딘스키 문화부 장관은 2012년 여름 익사노프를 퇴임시키고 블라디미르 유린을 임명했다.



아긴 교수는 “유린 극장장은 전임자 밑에서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여러 문제를 풀어야 하는데 극장 운영 경험이 풍부한 유린에게도 꽤 버거운 과제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볼쇼이극장에는 최고 수준의 예술가도 부족하다”며 “러시아에 훌륭한 성악가들이 있는데, 볼쇼이 측은 이들을 영입하려는 노력을 조금도 안 한다. 무대감독도 더욱 적극적으로 찾아야 한다”고 했다.



러시아를 대표하는 극장의 미래를 위한 결정은 유린 극장장에게 달렸다. 가예프스키 교수는 “볼쇼이극장은 방향이 분명하지 않은 곳으로 선회하는 큰 배에 비유할 수 있다. 지금은 모든 게 불확실한 시기”라고 덧붙였다.



블라디미르 코즐로프 기자



본 기사는 [러시스카야 가제타(Rossyskaya Gazeta), 러시아]가 제작·발간합니다. 중앙일보는 배포만 담당합니다. 따라서 이 기사의 내용에 대한 모든 책임은 [러시스카야 가제타]에 있습니다. 또한 Russia포커스 웹사이트(http://russiafocus.co.kr)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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