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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ssia 포커스] Old & New … 붉은광장 '루이뷔통 가방' 굴욕사건 눈길

중앙일보 2013.12.27 00:10 2면 지면보기
루이뷔통이 러시아의 심장쯤 되는 붉은광장에 명품 가방을 흉내 낸 높이 9m, 길이 30m 전시관을 만들었다가 하루 만에 철거하는 망신을 당했다. [리아 노보스티]


러시아 문화의 변화는 1년 전 힙스터 문화의 형태로 작은 클럽이나 서점, 자율 강연회와 거리에서 시작됐다.

Russia포커스가 돌아본 2013 문화계
옛것·새것 공존하며 진통과 발전, 작은 클럽·서점들이 새 문화 주도
푸시킨미술관장 수십 년만에 교체, 로마노프왕조 400돌 기념전 성황



우선 수십 개 문화시설의 책임자가 새 얼굴로 바뀌었다. 가장 주목받은 사례는 컨템퍼러리 아트(contemporary art)의 마리나 로샤크 관장이 수십 년간 ‘푸시킨 국립 미술관’의 관장을 맡아온 이리나 안토노바를 대신해 미술관의 새 관장이 된 것이다.



혁신가들이 등장해 모스크바 문화를 세계 문화의 흐름에 합류시켰다. 선진화된 세계 수준에 맞게끔 모스크바의 공원을 정비하고, 중심가에 인도를 설치했다. 야간에 열리는 연중 문화행사인 박물관의 밤, 도서관의 밤, 음악의 밤, 예술의 밤은 이런 노력의 일환이다. 축제 목적은 독특한 방식으로 문화를 소개해 시민들의 관심을 유발하고 전파하기 위해서다.



◆자랴디예 공원=크렘린 바로 뒤쪽에 ‘자랴디예’라는 공터가 있다. 7~8세기에는 모스크바 강을 통해 들여온 상품을 거래하는 시장이 있었다. 1812년 나폴레옹의 침공으로 모스크바가 불탄 후 이곳에 주택이 들어서기 시작했고, 19세기 중반에는 시내에서 유일하게 유대인 상인의 거주가 허가된 유대인 게토가 들어섰다. 소련 시절 그 자리엔 대형 고층 호텔 로시야가 있었으나 2006~2007년 철거돼 공터로 변했다. 2012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이곳에 공원을 꾸밀 것을 제안했다. 뉴욕의 ‘하이라인(Highline)’ 고가철도 공원을 멋지게 디자인한 미국의 ‘딜러 스코피디오+렌프로(Diller Scofidio+Renfro)’ 건축설계소가 공모에서 우승했다. 모스크바 시내 공원들이 눈에 띄게 현대화되고 있지만, 앞으로 자랴디예에 세워질 공원과 견줄 만한 곳은 없다.



◆루이뷔통 가방의 대망신=올해 건축 분야의 ‘주인공’은 붉은광장에 세워졌던 다층 건물 높이의 루이뷔통 가방이다. 루이뷔통 측은 국영백화점 굼(ГУМ) 옆에 전시장으로 사용하기 위해 가방 모양의 임시 건물을 설치하는 작업을 했다. 그런데 포장을 걷고 건물이 공개되자 논쟁의 중심에 서게 됐다. 많은 블로거와 정치인은 러시아의 중심 광장에 ‘웬 프랑스 가방’이 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분개한 여론이 크렘린 성벽을 넘자 루이뷔통 측은 개장 바로 다음 날 황급히 전시장을 해체했다. 아마 이 전시장은 세계 건축사에서 가장 수명이 짧은 건물이었는지도 모른다.



◆동성애 영화제=누구나 새롭고 낯선 것을 쉽게 받아들이진 못한다. 2013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엔 역경도 찾아왔다. 이 지역의 원리주의자(공산주의자나 단순한 보수주의자, 그다지 교육수준이 높지 않은 사람들)는 비전통적 예술이라면 모두 치를 떤다. 이 때문에 정기 동성애영화제 ‘나란히(Бок-о-бок)’가 온갖 비난과 개최를 막으려는 시도 속에 힘겹게 치러졌다. 반대 여론은 당연했다. 오래전부터 ‘게이’라는 말이 욕으로만 쓰이는 나라에서 열리기엔 너무나도 생소한 행사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제가 개최됐다는 사실은 뭔가 변하기 시작했음을 시사한다.



영화 `스탈린그라드`의 한 장면.
◆영화 ‘스탈린그라드’와 ‘하드 투 비 어 갓(Трудно быть богом)’=러시아 고전영화 감독 알렉세이 게르만은 10년 넘게 판타지 디스토피아 영화 ‘하드 투 비 어 갓’을 촬영했다. 그는 올해 초 세상을 떠났고, 아버지처럼 감독이며 이름도 같은 그의 아들이 제작을 마무리했다. 러시아 영화관에선 아직 개봉되지 않았지만, 지난 11월 열린 로마 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였다. 영화는 무겁고 자연주의적이며 난해하다. 조심스러운 평론이 주를 이루는 가운데, 움베르토 에코는 감격에 차 이렇게 말했다. “게르만의 작품을 보고 나니 타란티노의 영화는 디즈니 만화영화 같다.”



표도르 본다르축 감독의 ‘스탈린그라드’는 제2차 세계대전의 결정적인 전투 중 하나였던 스탈린그라드 전투를 다룬 영화다. 매우 애국적인 고예산 영화이며, 동시에 수익성이 좋은 영화이기도 하다. 약 3000만 달러의 제작비가 들어갔는데, 개봉 11일 만에 손익 분기점을 넘었다. 평론은 부정적이었고,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과 줄거리의 오류가 발견됐다. 움베르토 에코도 스탈린그라드에 대해선 입을 닫았지만 대중에겐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정리하자면, 2013년에는 모든 것, 즉 옛것과 새것이 공존했다. 많은 모스크바 시민이 로마노프 왕조 400주년 기념 전시회(이콘, 왕가의 유물, 초상화 등 전시)를 관람하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그에 못지않게 많은 사람이 세속적이고 격식 없는 작품을 전시하는 ‘박물관의 밤’을 관람한다. 전통 축제만큼 현대적 축제가 열리고, 대중 영화만큼 컬트영화와 예술영화가 있으며, 유명인사가 출연하는 ‘크렘린 궁전’의 공연보다 열 배, 스무 배 많은 클럽 공연이 열리고, 표는 없어서 못 구할 정도다. ‘옛것과 새것의 병행’이 지금 이 순간의 키워드라 할 수 있다. 대립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러시아가 거쳐가는 정상적인 발전 과정으로 볼 수도 있다.



얀 센크만, 드미트리 로멘딕 기자





본 기사는 [러시스카야 가제타(Rossyskaya Gazeta), 러시아]가 제작·발간합니다. 중앙일보는 배포만 담당합니다. 따라서 이 기사의 내용에 대한 모든 책임은 [러시스카야 가제타]에 있습니다. 또한 Russia포커스 웹사이트(http://russiafocus.co.kr)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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