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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연의 시시각각] 1965년생 어느 계장의 안녕

중앙일보 2013.12.27 00:05 종합 34면 지면보기
이규연의
논설위원
우리가 정확히 아는 것은 오직 현재뿐이다. 오지 않은 미래는 물론이고 금방 지나친 과거조차 조립해내기 어렵다. 꼭 알아보려는 과거가 세상을 등진 이의 마음이라면 더욱 그렇다. 최근 스스로 삶을 포기한 공무원의 심리상태가 법정에 제출됐다. 법원은 그 결과를 유족보상금 지급 판결의 근거로 인정했다. ‘심리적 부검’을 받아들인 것이다. 법정에서 처음으로 드러난 한국 중년 직장인의 심상(心象), 우리는 유쾌하지 못한 현실과 마주 앉아야 한다.



 말단에서 출발해 주사(6급)까지 올라간 부산지역 공무원, 1965년생. 그를 65씨라고 부르자. 65씨는 술을 거의 하지 않고 가족들에게 늘 자상한 사람이었다. 심리 부검 결과 가족관계는 원만했고 큰 지병도 없었다. “배려심이 컸다” “힘들어도 표현하지 않았다” “책임감이 강했다”는 주변 증언도 나왔다. 내성적 성실남, 평균적인 중년 직장인의 모습이었다.



 비극적 선택을 하기 13개월 전, 65씨는 힘든 보직(본청 계장)을 자임한다. 그는 직장 후배에게 “일이 많지만 특별승진 대상자가 될 수 있는 자리”라고 말했다. 6급으로 6년인 상태였다. 65씨는 매일 오전 7시30분부터 저녁 8시까지 일에 몰두한다. 그럴수록 본청은 더 많은 걸 원한다. 계장 업무와 별도로 특별업무반을 맡으라고 명한다. 상사는 팀원 6명을 약속하지만 3명만 충원해 준다. 극단적 선택을 하기 전, 두 달간 65씨의 초과 근무시간은 총 204시간52분이었다.



 이때부터 65씨는 변해 간다. 식사를 자주 거르면서 34인치였던 허리가 31인치로 줄어든다. “충원 없이 일을 하자니 XX 만큼 힘이 든다”(직장 동료 증언)는 넋두리를 자주 한다. 수면유도제도 복용한다. “잠잘 때 손이 땀으로 흥건히 젖곤 했다”(부인 증언)고 한다. 하루는 아들과 함께 목욕탕에 간다. 아들에게 미안한 얼굴로 말한다. “힘이 없어 등을 못 밀어주겠네.”



 비극적인 선택을 하기 25일 전, 특별승진자가 발표된다. 바로 옆 부서의 계장은 승진하는데 65씨는 그대로였다. 친한 사람에게 이렇게 말했다. “다면평가 점수가 안 좋았는데, (누군가가 나를) 탈락시키려고 나와 친한 사람들을 일부러 평가자에서 뺐다.” 65씨는 잠을 못 자는 날이 많아진다. 아내가 휴가를 내고 병원치료를 받으라고 권했지만 “일이 많다”며 거절했다. 그리고 운명의 일요일이 온다. 안방 침대에 멍하게 앉아 있다가 부하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낸다. ‘월요일 진행관리를 철저히 하라’. 그리고 이런 유서를 남기고 돌아오지 못할 길을 간다.



 ‘본청에서 욕만 먹고, 충원은 안 돼 일은 진척이 되지 않고… 누구한테 하소연하란 말인가요… 찬밥의 도토리 신세… 한직에서 고생하는 직원들을 우대해줘야 합니다’.



 65씨는 개인의 경쟁욕과 조직의 명령 사이에서 힘든 줄타기를 하다 뛰어내렸다. 그 선택은 옳지 못했다. 가족은 법정을 오가며 악몽 속에 산다. 따르던 부하들은 좌절한다. 다만 이번 심리 부검이 대한민국 중년 직장인의 현실을 자세히 들여다 볼 기회가 된 것만은 분명하다. 부검이라는 한계 때문에 암울한 편향성을 보였기는 하지만 그 모습은 중년 직장인에게 낯설지 않은 일면(一面)임에 틀림없다. 한국 40대 남자의 사망률은 세계 1위다. 모든 세대가 다 어렵지만 스트레스의 최격전지에 그들이 있다. 막 달릴 수도, 멈출 수도 없는 계장·과장·부장이다.



 중년이라면 가끔은 내면의 아우성에 귀를 대보자. 주변에 위기의 중년이 있다면 그들의 마음을 잠시 들여다보려 하자. 그리고 판단하자. 65씨인가, 아닌가. 사소한 관심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일지라도 촛불 하나로 암흑은 면할 수 있다. 65씨 사례는 과거이자 비극적 좌절이다. 하지만 그가 우리에게 묻는 건 현재이자 소중한 치유일지 모른다. 당신의 중년은 평안하십니까.



이규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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