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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한국에서 결혼은 또 하나의 입시 총점만 높아선 안 된다?

중앙일보 2013.12.27 00:04 종합 35면 지면보기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2013년도 이제 나흘밖에 남지 않았네요. 과년한 처자인 제겐 20대의 끝이 보이기 시작해요. 화려한 연애 편력 마감하고 진지하게 결혼 고민을 해야 할 때죠. 조건이 어떻게 되냐고요? 중산층에 명문대 졸업, 대기업 사원. 외모도 어디 나가서 빠지는 편은 아니에요. 문제는 괜찮은 짝, 구하기가 쉽지 않네요.



 선배 언니가 이런 얘길 하더군요. 우린 총점만 높은 게 문제야. 솔직히 우리가 바라는 결혼 상대는 잘나가는 전문직이잖아. 그런데 그들은 총점만 높은 여자 말고 얼굴, 몸매가 연예인급이거나 돈 많은 집 규수를 원하지. 그럼, 누가 우릴 원하냐고? 알잖아. 대기업이나 공기업 다니는 평범남(男)들이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어요. 미국에서 흑인 결혼율이 낮아진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어요. 고학력 흑인 여성들이 자기 눈높이에 맞는 흑인 남성을 찾기 힘들다는 거죠. 저희 상황이 뭐, 반드시 그렇다는 말씀은 아니고요. 수요와 공급이 맞지 않는 시장이라는 겁니다. 한국의 결혼 시장이.



 혹시 지난주 한 신문에 드라마 ‘응답하라 1994’ 주인공들 스펙 비교하는 기사 나온 거 보셨나요? 여주인공 성나정(고아라) 입장에선 병원 레지던트인 쓰레기(정우)도, 일본 프로야구 선수 칠봉이(유연석)도 손해가 아니라는 내용인데요. 결혼정보회사 연애코치라는 사람 멘트가 걸작입니다. “일반 남자 위에 일반 여자, 그 위에 예쁜 여자, 최종 포식자는 능력남”이라고….



 마음 맞는 사람과 잘 살면 되는 거 아니냐고요? 그게 꼭 그렇지가 않아요. 웬만한 경제력으론 서울에 신접살림할 전세 아파트 얻기도 힘든 세상이잖아요. 그런 걸 빤히 알면서 저희보고 그 길을 가라고요? 요즘 젊은 여자들, 영악하다고 하시겠지만 남자들도 다르지 않아요. 가끔 뵙는 대학 교수님께서 이번에 졸업하는 남학생을 면담하셨대요. S전자와 첨단 IT 기업에 합격했는데 어느 쪽 가겠냐고 하셨나 봐요. 그 학생이 “S전자”라고 해서 이유를 물었더니 “장가가려면…”이라고 하더랍니다.



 세태가 변한 책임을 과연 저희에게만 돌릴 수 있을까요? 어쩌면 결혼 시장이 우리 사회를 비춰주는 거울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의사와 결혼한 제 친구가 그러더군요. SKY(서울·고려·연세대)에 합격한 기분이라고. 그만큼 저희 세대는 모든 게 입시예요. 특목고·대학 입시에 취업도 입시, 결혼도 입시. 끊임없이 입시 준비하는 마음으로 지금까지 살아왔어요.



 인생의 마지막 입시 앞에 서 있는 셈인데, 왠지 막막하네요. 대입 때 수시 끝나고 정시 기다리는 느낌이라고 할까. 하지만 최선을 다할 거예요. 스펙 좋고 착하면서 나를 사랑해줄 남자, 그런 남자 만날 수 있겠죠?



권석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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