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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식의 똑똑 클래식] 돈 호세와 카르멘 이어 준 장미 한 송이

중앙일보 2013.12.27 00:05 11면 지면보기
오페라 카르멘 한 장면.


“사랑은 들에 사는 새 아무도 길들일 수 없지요. 거절하려 마음 먹으면 아무리 해도 안되지요. 말을 잘 하거나 말 없는 분 중에서 하나를 택하라면 말 없는 분을 택할래요. 사랑, 사랑, 사랑은 집시 아이. 제멋대로지요. 당신이 싫다 해도 나는 좋아요. 당신이 붙잡았다고 생각하면 나는 도망치고 벗어나려 하면 꼭 움켜쥘 거예요.”



흔히 ‘하바네라’라 부르는 이 아리아는 쿠바의 무곡형식을 이르는 음악 용어인데 조르주 비제가 이 형식을 빌어 작곡한 곡이라는 이유로 그렇게들 부른다. 담배공장에서 일하는 집시여인 카르멘이 육군 상병 돈 호세를 유혹하며 불렀던 노래의 가사와는 달리 돈 호세는 투우사에게 빠져 자신을 배신한 카르멘이 자신이 선물한 반지를 땅에 던지는 순간 그녀를 흉기로 찌른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몰래 버려도 좋을 반지를 굳이 돈 호세가 보는 앞에서 던진 카르멘의 행동은 ‘하바네라’의 마지막 가사처럼 죽음을 택해 그를 꼭 움켜쥐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오페라 카르멘의 배경이 된 1820년경 유럽의 담배공장. 남미의 원주민에게서 배운 담배에 빠져버린 유럽대륙 곳곳에 지어졌던 담배공장의 노동환경은 너무나도 열악했다. 작업장에는 보통 500여 명의 여자들이 빽빽하게 들어앉아 온종일 담배잎을 말아야 했고 한여름에 통풍장치조차 없는 작업장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들은 거의 옷을 벗은 채 일해야 하다 보니 남성 감독자들의 성희롱 대상이 되는 것은 예삿일이었다.



양가 규수는 직업을 가질 수 없는 시대였던 만큼 담배공장 노동자들은 가난한 하층민의 처녀, 유부녀 또는 과부들이었다. 카르멘의 무대인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의 도시 세비야에는 집시들이 많았고 이들의 대부분이 담배공장에서 일했는데 카르멘 역시 그들 중 하나였다.



점심시간이면 우루루 몰려나와서는 그녀들을 유혹하려는 젊은이들에게 둘러싸이곤 했는데 카르멘은 자신에게 무관심한 척하는 돈 호세 상병에게 호기심을 갖게 되고 꽃을 던져서 그를 유혹하는 적극성을 보인다.



땅바닥에 떨어진 꽃. 돈 호세는 그 꽃을 남 몰래 주워 드는 것으로 카르멘과의 비극적 사랑을 시작하는데 베르디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에서 비올레타가 알프레도에게 사랑의 메시지를 전하는 수단이 된 동백꽃은 하루 만에 다시 찾아오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매개체로 대개의 경우 하루면 시들지만 돈 호세가 주워 든 꽃은 싸움질 끝에 감옥으로 호송하던 돈 호세가 카르멘을 풀어준 죄로 감옥에 들어간 후에도 그의 손을 여전히 떠나지 않는다.



그러면 카르멘이 던져준 꽃은 과연 무슨 꽃이었을까? 오페라 카르멘 공연에서 카르멘 역을 맡은 프리마돈나가 등장할 때는 장미꽃 한 송이를 입에 물고 나오곤 하는데 장미는 시든 후에도 마른 꽃으로 보관하기도 함을 생각하면 아마도 붉은 장미 한 송이였으리라 짐작된다.



김근식 고전음악감상실 더 클래식 대표

041-551-5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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