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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칼럼] 암담한 남북관계에 희망의 빛을 본다

중앙일보 2013.12.27 00:04 종합 35면 지면보기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
북한의 조선경제개발협회와 중국의 인프라와 자원개발 전문 기업인 상지관군(常地冠軍)유한공사는 12월 8일 베이징에서 신의주~평양~개성을 잇는 고속철도와 왕복 8차선 고속도로 건설에 관한 합의서에 서명했다. 양측은 정식 계약을 두 나라 유관기관의 심의를 거쳐 “적절한 날짜를 선택하여” 체결하기로 합의했다. 이것은 북·중 경제관계와 북한의 경제·사회 발전에 획기적인 기여를 할 의미 있는 합의다.



 김정은에게 장성택 처형은 특히 중국을 상대로 한 위험한 도박이었다. 장성택은 북·중 경제협력을 주도한 사람이다. 후진타오 시대의 중국 지도부는 장성택을 언젠가는 북한에 중국식 개혁을 도입할 개혁가로 보고 그를 직접 만나 격려했다. 그런 장성택을 처형하고 그 측근들을 처형 또는 숙청하는 것은 중국에는 정면 도발로 비칠 수 있고, 북·중 경제협력 프로젝트에 적신호가 될 수도 있다. 북한의 국내 사정은 김정은을 그런 위험부담을 무릅쓰고 장성택 처형이라는 극약처방을 쓰지 않을 수 없는 상황으로 몰았던 것 같다.



 12월 8일이면 나흘 뒤의 장성택 처형 절차가 진행되고 있었을 시점이다. 김정은은 북한의 대표적인 친중 인사를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숙청하면서 중국에 유화 제스처를 취한 것이다. 경제협력을 포함한 북·중관계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며 14개의 경제개발특구 프로젝트로 상징되는 경제개발 전략도 흔들림 없이 추진한다는 메시지다. 그것은 동시에 중국 이외의 국제사회에 보내는 메시지이기도 했다. 장성택 처형 후 남한에는 개성공단 정상화를 위한 공동위원회 개최를 제안하고, 경제개발협회 관계자는 평양에 지국을 두고 있는 미국 AP통신과 전례없는 인터뷰를 자청해 북한 경제정책의 불변을 강조했다. 김정은은 저울추의 한쪽에 자신의 유일 영도체제에 위협이 될 장성택과 그 일당을 제거하는 서슬 퍼런 카드를 올려놓고, 다른 쪽에는 국제사회에 유화의 손짓을 하는 미소의 카드를 올려놓는 게임을 한 것이다.



 북한은 남한에 대해서도 한편으로는 개성공단 국제화를 위한 대화를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살벌한 전쟁위협 발언을 쏟아내는 양면작전으로 혼란을 선동하고 있다. 남한에 대한 북한의 위협 수위는 북한 내부 사정에 좌우된다. 장성택 세력의 제거로 북한 군부의 권력이 강화되리라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장성택이라는 견제세력이 사라진 지금 북한군은 고삐 풀린 망아지와 같다. 최근 부쩍 거칠어진 북한의 대남 위협도 이런 사정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 국민들이 장성택 처형에 의혹을 갖거나 2만 명 이상으로 추정되는 장성택 추종세력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크고 작고 간에 저항이 일어난다면 김정은 정권은 국내 결속을 위해 남쪽으로 위기를 조성할 위험이 없지 않다. 예상되는 이런 위험이 국정원장과 국방장관이 말하는 북한의 전쟁도발 경고의 배경일 것이다.



 연말연초의 한반도 분위기는 참으로 엄혹해 보인다. 국정원 주변에서는 김정은 체제 조기 붕괴까지 예고하면서 선제적으로 북한의 변화를 주도하자는 주장까지 들린다. 그러나 희망사항에 바탕을 둔 대북 적극 공세론은 무모하고 비현실적이다. 이것은 대화 부재, 안보 우위의 현상에서 비롯된 문제다. 청와대 안보실과 국정원과 국방부에 포진한 예비역 장군들의 존재만 뜨고 외교·통일부 장관의 존재는 위축된 외교·안보 라인의 현실이 북한 군부가 주도하는 강경노선과 맞서는 강 대 강의 구도가 새해의 한반도에 어떤 위기를 불러올지 참으로 걱정이다.



 중국은 장성택 처형에서 받은 충격이 컸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건 북한 내부의 일”이라는, 치밀하게 계산되고 북·중관계의 미래를 멀리 내다본 전략적인 반응을 내놓았다. 인민일보의 자매지 환구시보는 김정은에게 사태를 잘 수습해 중국을 방문할 조건을 만들라고 넌지시 조언하는 논조까지 폈다. 김정은에 대한 징벌적 대응으로 얻을 것이 없음을 생각하면 가장 현실적인 자세라고 하겠다.



 장성택 처형이라는 엽기적인 사태에서 우리가 확인한 것은 젊고 겁 없는 김정은이 언제 어떤 무모한 도발을 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중국의 신중한 대응과 함께 외국과의 경제협력은 계획대로 진행하겠다는 북한의 거듭된 언질은 한반도의 이런 암담한 현실에서 희미하게 반짝이는 한 줄기 희망의 빛일 수 있다. 장성택 처형에 국민들이 의혹을 갖거나 경제를 일으키지 못해 국민들의 불만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김정은의 유일 영도체제라는 것도 사상누각이다. 북한의 도발은 확실히 응징한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북한과 주변4강에 발신하면서 희망의 빛을 살리는 두 갈래 전략으로 새해에는 남북관계에 작은 돌파구라도 열릴 것을 기대한다.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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