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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골 피신처 된 조계사 … 2002년 후 공권력 투입은 없어

중앙일보 2013.12.26 01:49 종합 4면 지면보기
25일 오후 철도노조 지지자들이 조계사 경내에서 사복 경찰관을 밖으로 끌어내고 있다. 조계사에서 은신 중인 박태만 수석부위원장은 이날 오후 대웅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갈 곳은 오직 조계사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26~28일 철도 민영화 반대집회를 열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박종근 기자]


불법 철도파업을 주도한 혐의로 체포영장이 발부된 철도노조 박태만(55) 수석부위원장이 경찰의 추적을 피해 24일 서울 종로 조계사로 피신했다. 박 위원장은 김명환(48) 위원장 등 수배 중인 노조 지도부 13명 중 한 명이다. 그의 ‘조계사행(行)’으로 파업 상황이 길어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철도노조 수석부위원장 은신
노조 측 "종교계가 중재 나서 달라"
조계종 "강제로 내쫓을 수는 없다"
전교조 위원장 구속영장은 기각



 극락전 2층에 머물고 있다는 박 부위원장은 25일 오후 조계사 경내에 나와 “경찰이 민주노총까지 침탈하는 상황에서 갈 수 있는 곳이 조계사밖에 없었다”며 “종교계가 나서서 파국으로 치닫는 철도 민영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중재에 나서 달라”고 말했다. 박 부위원장은 전날 오후 8시10분쯤 일반 노조원 3~4명과 함께 이곳으로 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난 22일 서울 정동의 민주노총 본부 사무실에 있다가 경찰의 진입 작전을 어떻게 피해 빠져나왔느냐는 질문에 “지금은 말할 수 없다”고 답했다.



 조계사 측은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았으나 당분간 박 위원장 등을 보호한다는 입장이다. 조계종의 한 관계자는 “종교시설 안으로 몸을 피한 노동자들을 강제로 쫓아낼 수는 없다”고 말했다. 경찰의 강제 체포는 쉽지 않아 보인다. 지난 22일 경찰 진입 시 민주노총 본부에서 김 위원장과 찍은 것이라며 관련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렸던 진보정의당 박원석 의원, 대한성공회 유시경 신부는 조계사를 찾아와 박 부위원장을 만나고 갔다.



 노조 간부나 노조원들이 조계사로 피신한 건 처음이 아니다. 그동안 1994년 철도·지하철 노조 간부의 60일간 농성을 필두로, 한국통신노조, 발전노조, 민주노총 노조 등이 조계사에서 짧게는 두 시간에서 길게는 5개월까지 농성했다.



 이런 게 가능했던 건 종교시설의 특수성과 비난 여론을 의식해 정부가 공권력 투입에 신중을 기했기 때문이다. 조계사는 군사독재 시절, 재야인사들이 자주 찾아 ‘민주화의 성지’로 여겨졌던 ‘명동성당’에 비견된다.



 조계사 농성의 끝이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95년 6월 조계사와 명동성당에서 농성하던 한국통신 노조 간부 13명은 전원 경찰에 연행됐다. 경찰은 또 98년 현대중기산업 노조원 수백 명이 5개월간 조계사 안에서 농성 투쟁을 하자 노조 지지 성향의 승려들을 외부로 나가게 했다. 2002년 발전노조원 체포 당시에는 조계사 법당까지 들어가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10여 년 동안 조계사에 공권력이 투입된 사례는 없었다.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 당시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 등 8명이 1~3개월간 조계사에 머물렀으나 경찰은 경내에 진입하지 않았다. 경찰은 이날 조계사의 경비를 강화하는 한편 다른 수배자들이 명동성당으로 갈 수도 있다고 보고 성당 주변에도 병력을 배치했다.



한편 김정훈(49)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위원장에 대한 사전구속영장은 26일 새벽 기각됐다. 지난 22일 경찰의 민주노총 공권력 투입 당시 체포됐던 김 위원장은 풀려났다.



 김 위원장에 대한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심문)를 맡은 이상호 서울중앙지법 판사는 “범죄혐의 성립여부에 대해 다툴 여지가 있어 방어권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 증거인멸·도주의 염려가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기각 이유를 밝혔다. 검찰은 경찰의 민주노총 건물 진입을 방해하고 폭력을 휘두른 혐의(공무집행방해 등)로 김 위원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김 위원장은 진입작전 당시 경찰관의 얼굴에 깨진 강화유리 파편을 던져 왼쪽 눈 부위를 1.5㎝ 찢어지게 했다.



글=민경원·구혜진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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