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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화 값 금융위기 이후 최저

중앙일보 2013.12.26 01:05 종합 25면 지면보기
일본 엔화가치가 5년래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성탄절인 25일 일본 도쿄 외환시장에선 미국 달러와 견준 엔화값이 104.44엔에 거래됐다. 미국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 파산 직후인 2008년 10월 8일 이후 가장 낮다.


달러당 105엔 눈앞 … 소니·도요타 등 수출 대기업들 효과 톡톡



 올 들어 엔화가치는 15% 정도 떨어졌다. 세계 10대 산업국 통화 중 가장 크게 떨어졌다. 로이터통신 등은 “아베노믹스 바람이 분 지난해 10월~올 6월에 이은 2차 엔저 흐름이 형성될 조짐”이라고 진단했다.



 이번 엔저는 좀 다르다. 순수 일본발이 아니다. 미국 영향을 크게 받고 있다. 미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가 양적완화 축소를 공식 발표한 게 엔저를 부채질하고 있다. 여기에다 미국 실물경제의 탄탄한 회복도 엔화 하락을 거들고 있다. 그 바람에 엔화가치는 1차 엔저 때 깨지 못했던 104엔 선을 지나 105엔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도쿄 외환전문가의 말을 빌려 “미국 경제가 좋아진다는 소식이 확산하면 달러가치가 강해져 여기에 견준 엔화가치는 105엔 선까지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이때다 싶었던가. 일본은행(BOJ) 구로다 하루히코(黑田東彦) 총재는 25일 일본 재계 이익단체인 게이단렌(經團連) 연설에서 “일본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내년 초 1%를 넘어설 전망”이라며 “가능한 한 빨리 상승률 2%를 달성하기 위해 통화를 양적으로, 그리고 질적으로 계속 팽창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구로다 총재의 말이 전해진 직후 엔화가치는 더 떨어져 104.45엔 선에 이르기도 했다. 덩달아 도쿄증시의 닛케이225지수도 1만6000선을 넘어섰다. 이날 닛케이지수는 0.76%(120.66포인트) 오른 1만6009.99로 거래를 마쳤다. 2007년 12월 12일 이후 6년 최고치다.



 그러나 엔저가 일본 경제에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최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엔저 때문에 수입 원자재 값이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며 “하지만 일본 중소상공인 등은 그 부담을 소매가격에 반영하지 못해 채산성이 악화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반면 도요타·소니 등 수출 대기업들은 엔저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엔저가 일본 경제의 양극화와 불평등을 조장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는 FT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마틴 울프가 지적한 “돈의 힘에만 의존한 디플레 처방의 한계”다.



 울프는 최근 칼럼에서 “임금 상승이 뒤따르지 않는 디플레 처방은 한계가 있다”며 “(지금처럼 돈 풀기에만 의존하면) 아베노믹스 열차가 탈선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 일본 평균임금은 97년 이후 16년째 하락하고 있다.



강남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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