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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그만 좀 가릅시다

중앙일보 2013.12.26 00:38 종합 34면 지면보기
강갑생
JTBC 사회1부장
부잣집 막내딸이자 대학 신입생 소양. 음악을 좋아하고 꽃과 향초 모으기가 취미다. 강단도 있어 카페에서 버젓이 담배를 꺼내 핀다. 여성 흡연이 못마땅한 주인이 담배를 꺼달라고 요구하면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며 맞서기도 한다. 입학 초엔 시위에도 참여했다. 하지만 이내 시위에서 빠졌고 휴학까지 했다. 밤새 종로거리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방황한다. 언니 미양이 나서 방황의 이유를 캔다. 운동권 친구가 전해준 소양의 말. “(학생) 운동하는 건 좋은데 다른 고통, 갈등도 포용하고 인정해야 한다. 너희만 의식 있는 인간이고 진실하다고 생각하는 건 오만이고 너희가 대항하려는 체제만큼 비인간적이다.”



 소양은 일기장에 이런 구절도 적었다. ‘머리는 명주, 재형에게 두면서 발은 경옥, 희중 쪽에 두려 하고 있다. 이성을 존중하되 감각이 편해서인가’. 의식적으론 운동권 친구들에게 동조하면서도 실제 편하게 찾는 건 반대편 친구들이란 얘기다. 그러면서 ‘이런 나의 다양성을 전엔 인간의 폭이라 자부했지만 이젠 이것이 나를 비틀거리게 한다’고 썼다. 흑과 백, 이분법이 판치는 시대에 중간인 회색지대의 고민이었다. 소양은 결국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1980년대 중반 출간된 강석경 작가의 소설 『숲속의 방』 얘기다.



 오래전 읽었던 이 책을 요즘 새삼 떠올린다. 마주 보고 달리는 폭주 기관차처럼 극단으로 치닫는 편가르기를 보면서다. 철도와 의료 정책을 둘러싼 대립이 대표적이다. 한쪽은 민영화 수순으로 철도요금과 병원비가 폭등할 거라고 주장한다. 반대쪽은 민영화와는 무관한 경쟁력 강화 차원이라고 맞선다. 팽팽한 대립 속에 중간은 존재할 수 없다. 아니 존재 자체가 인정되지 않는다. 어느 한편의 의견에 조금이라도 수긍하면 난타를 당한다. 정부나 사측 논리가 어느 정도 타당하다는 말을 꺼내는 순간 ‘꼴통 보수’가 된다. 반대로 노조나 야권을 지지하면 ‘좌빨’로 낙인 찍는다.



 그런데 진보와 보수, 네 편과 내 편을 가르는 기준이 무 자르듯 명확할까. 투표 때면 늘 야권을 지지하지만 낙태와 동성애는 반대라면 진보일까 보수일까. 또 낙태와 동성애는 지지하지만 여당에 표를 던진다면. 진실은 어느 한 극단에 있지 않다. 대부분은 두 성향이 혼재된 회색지대에 자리한다. 하지만 편가르기에 매달린 사람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논리와 이성은 상관없다. 신랄한 비난과 막말, 음모론만이 있을 뿐이다. 거리에서, 온라인에서 모두 목격하게 된다.



 앞선 정권들에서, 더 멀리는 역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극한 편가르기와 갈등, 충돌만이 만연했던 시절이 어떠했는지. 소양의 말처럼 우리는 다른 고통과 갈등도 포용하고 인정해야 한다. 때론 고집을 꺾고 수긍도 해야 한다. 그러면서 답을 찾아야 한다. 뭔가 답답하고 늘 갈등의 불꽃이 튀었던 일년을 보냈다. 새해엔 지루하고 소모적인 편가르기를 그만 끝냈으면 싶다.



강갑생 JTBC 사회1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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