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중앙시평] 북한에 싹트고 있는 테르미도르의 움직임?

중앙일보 2013.12.26 00:30 종합 35면 지면보기
장달중
서울대 명예교수·정치외교학
정말 영화 속의 얘기가 현실로 나타나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월트디즈니의 애니메이션 영화 ‘라이언 킹’의 내용이 북한에서 현실로 나타났다.



 김정은이 스위스에서 귀국한 후 북한 사람들은 모두 ‘라이언 킹’을 관람해야 했다. 동시에 디즈니랜드의 미키마우스 화면도 보게 되었다. 김정은과 함께 나타난 이런 움직임은 북한판 개혁·개방의 신호일지 모른다는 기대를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이런 기대는 우리의 ‘희망적인 생각’일 뿐이었다. 연평도 포격, 로켓 발사, 3차 핵실험에 이어 이제 북한으로부터 불어오는 공개처형의 광풍을 목격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라이언 킹’은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모티브로 한 어린이용 가족영화다. 삼촌의 쿠데타로 왕국에서 쫓겨난 주인공 심바.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 왕위를 되찾을 것인가, 아니면 그대로 주저앉아 친구들과 즐길 것인가를 놓고 고민한다. 이때 왕위 찬탈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아버지 유령의 모습에 그는 삼촌에 대한 복수를 결심하고 결국 왕위를 되찾는 데 성공한다.



 북한에서 ‘라이언 킹’이 처음 상영되었을 때 이 삼촌이 누구인지 가늠하기 쉽지 않았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아마 군부가 아닐까 하는 농담조의 말들이 오갔을 뿐이다. 선군정치에서 선경정치로 방향을 트는 듯한 모습이나 제 2인자로 떠오르던 이영호 총참모장의 실각에서 이런 농담은 현실로 나타나는 듯했다. 하지만 ‘라이언 킹’의 탐욕스러운 삼촌이 당 행정과 경제를 관장해온 고모부 장성택으로 밝혀져 우리 모두를 놀라게 했다.



 이를 두고 우리 언론은 ‘북한의 민낯’을 이렇게 생생하게 본 적이 없다고 요란하다. 하지만 북한의 민낯은 지금부터 더 노골적으로 나타날지 모른다. 헤겔의 유명한 말이 있지 않은가. 어떤 실체든 그것의 민낯은 분열될 때 가장 리얼하게 나타난다고. 바로 김정은 체제가 앞으로 보이게 될 모습일지 모른다. 지금 북한에서는 테러로 반대파를 처형한 후 김정은을 신격화하려는 우상화의 열풍이 불고 있다. 하지만 그럴수록 내부 모순은 더욱 심해질 수밖에 없다.



 스탈린의 우상화 열풍을 본 트로츠키가 예언한 적이 있다. 스탈린주의는 러시아에 테르미도르의 쿠데타를 잉태시킬 것이라고. 1794년 7월 프랑스의 테르미도르 쿠데타는 로베스피에르의 몰락과 공포정치의 종식을 몰고 왔다. 처음에는 자코뱅 당의 내부 분열처럼 보였지만 결과는 사회세력의 균형에 근본적인 변화를 몰고 온 정변이었다. 마르크스가 얘기했듯 그것은 ‘사회를 구하기 위해’ 프랑스 부르주아들이 군대에 요청해 일으킨 쿠데타였던 것이다. 소련에서도 흐루쇼프의 스탈린 격하운동으로 시작된 테르미도르 움직임은 마침내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로 이어졌다.



 지금 북한에서 이런 테르미도르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는 것은 비현실적일지 모른다. 왜냐하면 북한에서는 소유계급이라 할 수 있는 부르주아 세력이 제거된 지 오래이며 집단화된 농민들이 부르주아 질서를 복원하리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가정보원이 발표했듯 장성택 처형은 권력 내부의 단순한 ‘이권 갈등’의 산물일 수 있다.



 하지만 공산주의 사회는 테르미도르의 움직임에서 결코 해방될 수 없다는 것을 역사는 말해주고 있다. 지금 시장의 확대로 돈의 위력이 점점 거세지고 있는 북한이다. 어느 학자는 북한을 ‘달러화된 사회’라고 규정한다. 북한의 항의로 중국에서 금서가 되어버린 『진실적 조선』의 저자 예융례(葉永烈)도 급전취소, 몰전취규(給錢就笑, 沒錢就叫·돈을 주면 웃고, 돈을 안 주면 시끄러워짐)의 나라가 바로 북한이라고 묘사하고 있다. 장성택은 이런 경제세력의 성장을 주도해온 장본인으로 알려져 있다. 처형 판결문은 ‘개혁가’로서 외국과의 경제협력 사업을 통해 ‘자본주의 날라리 풍’을 끌어들이는 데 앞장서왔다고 적시하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해서 모은 돈으로 당 행정부 산하에 무장한 ‘내무군’을 거느릴 정도의 세력을 구축했다는 것이다. 그는 중국의 덩샤오핑이나 소련의 고르바초프를 꿈꾸었을지도 모른다.



 지금 김정은은 전체주의 사회에서 유행했던 ‘더러운 리넨을 세탁해버렸다’고 기뻐할지 모른다. 그러나 경제 개혁밖에 살길이 없는 그다. 이 때문에 공개처형으로 그런 세탁을 계속할 수는 없다. 비록 시간은 걸리겠지만 결국 보다 더 깨끗한 손이 새로운 세탁을 준비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장성택 사건은 그런 세탁을 위한 북한판 테르미도르의 움직임에 싹을 틔웠는지 모른다.



장달중 서울대 명예교수·정치외교학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