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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좀 했다며? 배팅 좀 해봐 … 자존심 긁은 하라 앞에서 펑펑 넘긴 김기태

중앙일보 2013.12.26 00:12 종합 30면 지면보기
최태원 코치(왼쪽)가 작년 6월 29일 SK전이 비로 취소되자 더그아웃에서 노래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
김기태는 2007년 일본 최고 명문 요미우리에서 코치 연수를 시작했다. 보통의 코치 연수는 일본야구를 몇 달간 ‘구경’하는 수준이지만 김기태는 2009년 시즌이 끝날 때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연수코치 신분은 2008년 ‘2군 타격코치’로, 2009년 ‘육성군 감독’으로 바뀌었다. 이전까지 외국인 코치의 연수를 허락조차 하지 않았던 요미우리는 해가 바뀔 때마다 그에게 중책을 맡겼다.


[기자가 본 김 감독]
일본 연수 때 팀과 융화, 고속 승진
내일의 큰 승리 위해 패배도 감수
선수들과 살갑게 지내 … 마음 잡아

 보수적이며 권위적인 요미우리에서 김기태가 한국인 최초로 정식 코치가 된 건 팀 안으로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일본말이 짧아도 먼저 다가가 인사했고, 한국식으로 식사대접을 했다. 많은 사람이 김기태를 따르기 시작했다. 하라 감독은 어느 날 “자네가 한국에서 야구 좀 했다며? 프리배팅 한 번 해봐”라고 지시했다. 자존심이 상할 수 있는 테스트였지만 그는 웃으며 응했다. 김기태는 도쿄돔 외야석 곳곳으로 홈런타구를 펑펑 날렸다.



 기자는 2007년부터 2년간 김기태의 야구칼럼을 대필했다. 전화로 주요 내용만 불러주면 알아서 정리할 텐데 그는 기를 쓰며 자신이 쓴 긴 원고를 읽었다. 아주 낯선 일을 하면서도 단어 하나라도 틀리지 않으려 노력했다.



 김기태에게 성실하고 진솔한 면만 있는 게 아니다. 노회함도 보통을 넘는다. 이승엽이 한창 잘나갈 때 그에게 “이승엽이 더 좋은 타자가 되려면 무엇을 보완해야 하나”라고 물은 적이 있다. 김기태는 “이승엽은 지금 최고다. 나 같으면 이럴 때 일부러 삼진 몇 개를 당하겠다. 예를 들어 한신 불펜 투수의 슬라이더를 고의로 헛스윙하는 거다. 나중에 정말 중요할 때 그 투수는 또 슬라이더를 던질 것이다. 그걸 노리면 된다”고 말했다.



 그가 LG 지휘봉을 잡고 2012년 9월 12일 SK전에서 고의패배 논란을 일으켰을 때 사람들은 “김 감독이 SK의 과도한 투수교체에 분을 참지 못해 사고를 쳤다”고 말했다. 기자는 그러나 오늘 다칠 걸 각오하고 내일을 위한 승부수를 띄운 것이라 생각했다.



 앞서 6월 29일 SK전이 비로 취소되자 김기태는 코치·선수들에게 노래 한 곡씩 뽑아보라고 했다. 연패 중에 ‘더그아웃 노래방’이 열린 것이다. TV를 통해 중계되는 줄도 모르고 LG 선수들은 신나게 노래를 불렀다. 몇 달 사이 김기태는 선수들에게 두 가지 모습, 안으로는 따뜻하지만 외부의 상대와는 무섭게 싸울 줄 아는 지휘관의 면모를 보여줬다.



 김기태는 총 15명의 프로 감독을 모셨는데, 그분들의 장단점을 빨아들여 자기 것으로 만들고 싶어한다. 그는 김성근 감독처럼 선수들 머리꼭대기에 앉아 있는 리더는 아니다. 대신 마음을 움직일 줄 안다. 김기태는 EQ(감성지수)가 높은 사람이다.



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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