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3년 전 극적 구조 성탄의 기적 … "우리 결혼해요"

중앙일보 2013.12.26 00:08 종합 2면 지면보기
생사의 기로에 섰던 이들이 25일 자신들을 구한 해경 경비함 3009함 조타실에서 생명의 은인을 3년 만에 만났다. 오른쪽 사진 왼쪽부터 조민우(목포중앙고2)군, 김문홍 당시 3009함장(현 목포해경서장), 전승호 교사, 침몰 화물선 선주인 이항로씨, 김봉섭 교사. 왼쪽 사진은 3년 전 구조 모습. [사진 목포해경], [프리랜서 오종찬]


2010년 12월 26일 전남 신안군 흑산도 근해에서 배가 침몰했다. [사진 목포해경], [프리랜서 오종찬]
25일 오전 전남 목포시 해경 전용부두. 남고생 하나가 해경 경비함인 3009함 갑판으로 달려 올라가더니 기다리던 김문홍(55) 목포해양경찰서장 앞에서 멈춰 섰다. 그러곤 “생명의 은인께 인사 올립니다”라며 90도로 허리를 숙였다. 김 서장은 “작은 새처럼 오들오들 떨던 네가 이젠 제법 청년 티가 나는구나”라며 자신의 해경모를 벗어 씌워주고 어깨를 두드렸다. 뒤따라온 두 명 중년 남성 역시 허리를 숙이며 김 서장에게 “고맙습니다”를 연발했다.

배 뒤집혀 15명 조난, 해경이 구해
생명의 은인 경비함 함장과 재회
조난자 중 교사 커플 내년 결혼
당시 중2 학생 “해경 되고 싶어”



 김 서장에게 인사한 이들은 조민우(18·목포중앙고2)군과 김봉섭(54·영암구림공고), 전승호(51·함평손불중) 교사였다. 3년 전 타고 있던 배가 침몰했을 때 3009함에 구조된 15명 중 3명이다. 당시 3009함 함장이 바로 김 서장이었다. 침몰선 탑승자들과 이들을 구한 생명의 은인이 3년 만에 만난 순간이었다.



3년 전 침몰선에서 고난을 함께한 뒤 사랑이 싹터 내년 봄에 결혼하는 이승현(왼쪽)·박소라 교사.
 2010년 12월 26일. 방학을 했지만 거센 파도 때문에 가거도에 발이 묶였던 전남 신안군 가거중·가거초 교사 6명과 당시 가거중 2년이었던 조군 등 15명은 이날 아침 화물선 ‘항로페리2호’를 타고 목포로 향했다. 흑산도 근해에 이르렀을 때 높이 4m 파도에 배가 기울었다. 실었던 화물차가 마저 한쪽으로 쏠리면서 배는 균형을 잃고 침몰하기 시작했다. 일부는 얼음장 같은 바다에 뛰어들었고, 일부는 가라앉는 배에 매달려 구조를 기다렸다. 그렇게 45분을 기다린 끝에 SOS 신호를 받고 달려온 해경 3009함에 전원 구조됐다. 구조 직후 화물선은 침몰했다. 몇 분만 늦었어도 인명피해가 발생할 상황이었다. 3009함과 김 서장을 비롯한 승무원들은 거센 파도 속에서 15명을 모두 구한 공로로 이듬해 유엔 산하 국제해사기구(IMO)가 주는 ‘바다의 의인상’을 받았다. <중앙일보 2010년 12월 27일자 1 , 18면



 구조된 이들은 크리스마스 때마다 연락해서 모였다. 하지만 정작 이들을 구한 김 서장은 만나지 못했다. 2011년엔 독도를 지키는 5001함장이었고, 지난해에는 불법 고기잡이를 하는 중국 어선을 쫓으러 긴급 출동했다. 그러다 올해 드디어 한자리에 모였다. 김봉섭 교사는 “성탄절에 우리를 구해준 이 배를 보니 인생을 두 번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뒤집힌 배 위에서 파도에 맞으며 구조를 기다렸던 조민우군은 “추운 날씨에 온몸이 마비되고 숨이 멎을 것 같았다”며 “‘하나님·부처님 무조건 도와주세요’라고 기도했더니 정말 기적처럼 선장님이 배를 몰고 나타났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일행은 3년 전 바다에서 건져 올려질 때 탔던 구명정을 어루만지기도 했다.



 구조된 교사들 사이에 소중한 인연도 싹텄다. 박소라(31·여) 교사와 이승현(27) 교사가 내년 봄 결혼한다. 박 교사는 “바다에 빠진 나를 끌어올리려 애쓰는 모습에 믿음이 생겼다”고 말했다. 이번 만남에서 김 서장이 주례를 서기로 약속했다.



 조군은 구조된 뒤부터 한국해양대학교를 나와 해양경찰이 되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한다. 그는 “바다에서 1~2㎞는 거뜬하게 헤엄을 칠 수 있기 때문에 해경이 되면 사람들을 잘 구해낼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김 서장은 “해경이 되겠다면 내가 멘토가 되고 싶다”고 했다. 침몰한 항로페리2호의 선주인 이항로(59)씨는 “조군이 대학에 진학하면 등록금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목포=장대석 기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