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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 불신의 늪 빠진 철도

중앙일보 2013.12.24 01:57 종합 1면 지면보기
박근혜 대통령은 23일 철도노조 파업과 관련, “당장 어렵다는 이유로 원칙 없이 적당히 타협하고 넘어간다면 우리 경제 사회의 미래를 기약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 회의를 주재하면서다. “어려운 때일수록 원칙을 지키고 모든 문제를 국민 중심으로 풀어가야 한다”고도 했다. 철도노조 집행부를 검거하기 위해 서울 정동 민주노총 사무실에 경찰력이 투입된 지 하루 만이다. 철도파업에 대한 무관용 원칙이 확고하다는 점을 재차 강조한 것이다.


대통령 이어 정 총리도 "민영화 아니다 3번이나 말해"
철도노조 "결국 민영화" … 진영논리가 노사 판 흔들어

 박 대통령은 “언제 도발할지 모르는 북한과 철도파업 문제, 세계적인 경기불황과 정치권의 갈등으로 국민들이 여러 가지로 걱정스러울 것”이라며 “불편하고 힘들지만 이 시기를 잘 참고 넘기면 오히려 경제 사회의 지속발전이 가능한 기반을 다지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민에게 불편을 감수해 달라는 호소다. 그러면서 “새해가 갑오년인데 120년 전 갑오경장이 있었다. 120년 전의 경장(更張·개혁)은 성공하지 못했지만 이번에는 꼭 대한민국의 미래를 여는, 성공하는 경장의 미래가 될 수 있도록 수석들께서 사명감을 갖고 노력해 달라”고 당부했다. 고질적인 불법 행위와 적당히 타협하는 관행을 ‘경장’의 대상으로 지목한 것이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철도노조의 백기투항을 요구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박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은 대처리즘을 연상케 한다.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는 정권까지 굴복시킬 정도로 막강했던 탄광노조의 불법파업에 타협 대신 법의 잣대를 들이대 해결했다. 복지병에 신음하던 영국의 체질은 이때부터 확 바뀌었다.



 문제는 정부의 실천의지가 향후 대처리즘과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느냐다. 연세대 이지만(경제학) 교수는 “합리보다는 어느새 좌우의 진영논리가 노사판을 뒤흔드는 형국이 됐다”며 “이런 상황에서는 내년 노사 리스크가 국가 경제의 가장 큰 위험요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홍원 국무총리는 이날 “수서발 KTX에 대해 세 번이나 민영화가 아니다고 말했다”며 답답해했다. 노동계와 일부 정치권은 “민영화의 전 단계”라며 맞서 있다.



 서로를 믿지 못하는 이런 진영논리는 민주노총에 경찰력이 투입되면서 정부와 노조 간 전면전 양상으로 증폭되고 있다. 한국노총은 “폭압적인 공권력 투입”이라며 모든 노사정 대화의 불참을 선언했다. 민주노총과 일부 시민·사회단체는 대정부 공동 투쟁에 나설 태세다.



 정부의 부담은 더 커졌다. 통상임금과 정년연장에 따른 임금체계 개편, 근로시간 단축, 시간제 일자리 창출과 같은 굵직한 고용 현안을 처리할 길이 막혔기 때문이다. 이들 사안은 노사정 간의 대화가 없으면 풀기 힘들다. 박 대통령이 “산적한 노사관계 이슈를 대타협을 통해 해결해 내야만 한다. 노사정이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당부한 것도 이 때문이다. 고용부 고위관계자는 “경찰력 투입에 따른 전면전이란 복병이 돌출해 (현안을 노사정 대화로)극복하기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자칫하면 정부의 노조 압박 이 정부를 되레 압박하는 부메랑이 될 수도 있다. 지금은 여론이 노조에 비판적이지만 국민불편이 길어지면 정부의 해결 능력 부재가 도마에 오를 수 있어서다. 아주대 박호환(경영학) 교수는 “철도파업 사태가 정부-노조 간 치킨게임으로 변하면서 대화 창구가 완전히 막힌 느낌”이라며 “갈등이 장기화하면 고용시장 개혁은 물론 공기업 개혁과 같은 정책도 악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사회 전 부문이 갈등 국면에서 빨리 헤어나지 못하면 국가경쟁력의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김기찬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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