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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발견한 멧돼지 10여 마리 총도 겨누기 전 300m 달아나

중앙일보 2013.12.23 00:56 종합 14면 지면보기
목에 위치추적장치를 단 사냥개 네 마리가 갑자기 ‘컹컹’ 짖어대며 눈 덮인 산을 내달리기 시작했다. 멧돼지 포획단 소속 엽사들의 시야에 한 가족으로 보이는 멧돼지 10여 마리가 들어왔다. 엽사 3명도 사냥개를 따라 뛰었다. 그러나 멧돼지와 사냥개는 이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위치추적장치에는 300m 떨어진 곳에 사냥개들이 있다고 나타난다. 길목을 잡고 있던 다른 팀에 무전을 날렸지만 그 팀도 쫓아가기엔 너무 먼 거리. 결국 멧돼지 가족을 놓쳐버렸다. 또 다른 곳에선 멧돼지 여러 마리가 눈 위에서 뒹군 흔적이 발견됐다. 주변을 샅샅이 뒤졌지만 역시 허사였다.


전국 4만 마리 골칫거리 … 사냥꾼 소탕작전 가 보니
눈치·행동 빨라 허탕 일쑤

 지난 20일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감악산에서 한국야생생물보호관리협회가 경기도 파주시의 허가를 받아 벌인 멧돼지 포획작전 현장이다. 겨울이 돼 먹이가 떨어진 멧돼지들이 인근 농가에 내려와 닭을 잡아가는 등 피해가 속출하자 멧돼지 잡이에 나선 것.



 환경부에 따르면 현재 전국에 서식하는 멧돼지는 4만 마리가량으로 추정된다. 사육하던 멧돼지가 도망쳐 나와서는 야생 멧돼지가 됐고, 잡기가 쉽지 않아 개체 수가 크게 증가했다. 먹이를 찾다가 도심 한복판까지 진출하는 일도 갈수록 늘고 있다. 2010년 79건이었던 대도시 멧돼지 출몰이 지난해에는 641건으로 8배가 됐다. 지난 10월에는 몸무게 70㎏ 정도인 멧돼지 한 마리가 강원도 강릉의 한 병원 응급실에 나타났다가 사살됐다. 지난 11일엔 서울 구기동 주택가에서 90㎏짜리 멧돼지가 마취총에 맞아 잡혔다.



 멧돼지들이 이처럼 도시 한복판에까지 출몰하면서 이젠 농작물, 닭처럼 작은 가축뿐 아니라 인명 피해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이에 환경부는 올 2월까지 겨울 수렵기간 동안 전국 수렵장에서 잡을 수 있는 멧돼지 수를 애초 계획했던 8063마리에서 2만 마리로 늘렸다. 멧돼지가 너무 많아 먹이가 부족해 농촌은 물론 도시지역에까지 진출하게 됐다는 판단에 ‘숫자 줄이기’를 적극 추진하는 것이다.



 그러나 멧돼지가 워낙 눈치 빠르고 행동 또한 재빨라 잡기가 쉽지 않다. 20일 파주 감악산 일대에서는 10명의 사냥꾼과 사냥개 12마리가 3개 조로 나뉘어 여섯 시간 동안 작전을 펼쳤지만 수확은 없었다. 멧돼지를 10여 차례 목격했는데도 그랬다. 작전에 참가한 엽사 홍윤식(54)씨는 “멧돼지는 냄새·소리에 민감해 총으로 쏴 잡을 거리까지 접근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멧돼지들이 사냥꾼을 피해 도망다니다 결국 도시 주택가에 나타나게 된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포획 시도 부작용’에 대한 경고다.



 이런 점 때문에 “멧돼지를 잡기보다 겨울철 멧돼지 서식지에 먹이를 뿌려주는 게 도심 출몰을 막는 현실적인 방법”이라는 제언이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해 국립공원관리공단은 효율적인 멧돼지 피해방지 방안을 찾기 위해 서울대 산림자원학과와 공동 연구에 착수한 상태다.



파주=전익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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