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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보다 행복 원했다, 첫 한국인 골프 여제 박인비

중앙일보 2013.12.23 00:48 종합 32면 지면보기

2013년 한국 스포츠에서는 여성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여자 골프의 박인비(25·KB)와 여자 빙상의 이상화(24)는 전 세계가 놀랄 만한 성과를 거뒀다. 프로축구에서는 황선홍(45) 포항 스틸러스 감독이 외국인 선수 없이는 우승이 힘들다는 편견을 깼다. 장애인 세계육상선수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보여준 전민재(36)의 환한 미소는 팬들에게 스포츠의 새로운 감동을 선사했다.



박인비는 올 시즌 LPGA 투어 63년 만에 3개 메이저 대회 연속 우승을 달성했다. 박인비가 지난 6월 US여자오픈 경기 중 갤러리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중앙포토]
한국 선수들이 오랫동안 LPGA 투어 리더보드를 장악하고 있지만 투어를 지배하는 선수는 없었다. 박세리(36·KDB)는 안니카 소렌스탐(42·스웨덴)이라는 거대한 벽을 넘지 못했다. 신지애(25)는 잠시 세계 1위에 올랐으나 로레나 오초아(32·멕시코)의 은퇴 무렵 권력의 공백기를 틈탄 것이었다.

2013 중앙일보 선정 새뚝이 ① 스포츠



 박인비는 2013년 한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MVP격인 LPGA 투어 올해의 선수상을 받았다. 2년 연속 LPGA 투어 상금왕을 한 것도 박인비가 처음이었다. 그는 LPGA 투어에서 63년 만에 3개 메이저 대회에서 연속 우승했고, 1930년 이후 남녀 통틀어 첫 그랜드슬램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기대감 때문에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박인비는 그 관심만큼 많은 별명도 얻었다. 그의 이름을 딴 여왕벌(Queen-Bee), 무표정한 얼굴로 어려운 퍼트를 성공시키면서 상대를 주눅들게 한다고 해서 생긴 조용한 암살자(Silent Assassin) 등이다. 그는 명실상부한 LPGA 투어 최고 선수, 이른바 ‘여제’가 된 한국의 첫 골퍼다.



 최경주, 양용은, 박세리, 신지애 등 세계적으로 성공한 한국의 골퍼들은 가난 등 역경을 견디고 이겨내면서 자랐다. 매우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이 대작가가 될 확률이 높듯, 한국 사람이 골프에서 성공하려면 넉넉한 환경은 어쩌면 매우 큰 핸디캡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박인비는 어릴 때 미국으로 조기 골프 유학을 갈 정도로 여유 있는 집안에서 자랐다.



 어려움을 이겨내고 최고가 되는 것이 더 멋지게 보인다. 스포츠의 매력 중 하나다. 그러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박인비이기 때문에 1등 자리에서의 스트레스를 이겨내고 진정한 최고가 되었다는 해석도 나온다. 박인비는 올해의 선수상 수상 소감에서 “승리가 아니라 행복을 위해 경기를 했고 그때가 잘됐다”고 말했다.



 박인비가 또 바꾼 것이 있다. LPGA 투어의 한국 선수와 가족들 사이에서는 “생각이 남자친구한테 가 있으면 볼이 잘 맞을 리가 있느냐”라는 인식이 있었다. 박인비는 약혼자인 남기협(32)씨와 함께 다닌다. 두 사람이 워낙 다정하고 성적도 좋기 때문에 이제 투어의 분위기는 확 바뀌는 추세다. 유소연(23·하나금융그룹)은 “두 사람이 다정하게 손잡고 다니는 것을 모든 선수가 다 부러워한다”고 말했다.



성호준 기자



◆새뚝이=기존의 장벽을 허물고 새 장을 연 사람을 말한다. 독창적인 활동이나 생각으로 사회를 밝히고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사람 또는 단체다. 중앙일보는 1998년부터 매년 연말 스포츠·문화·사회·경제·과학 분야에서 참신하고 뛰어난 성과를 낸 이들을 새뚝이로 선정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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