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부문]
극단의 언어 절제 늘 멀미 나는 일이나 …

올해 중앙시조대상을 받은 박명숙(57) 시인은 또 다른 감회에 젖은 듯했다. 대상 수상 소식은 20년 전인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됐다는 낭보가 전해진 그때를 떠올리게 했다고 밝혔다.
“문학 활동을 지속하는 데 갈등이 컸어요. 작품을 쓸 때 끊임없이 고민하고 주저하고 망설이는 스타일이거든요. 북쪽을 가리키는 나침반이 끝없이 흔들리며 중심을 잡아가듯 시를 쓰는 것도 그런 듯해요. 늘 멀미가 나죠. 시를 쓰지 않을 때가 가장 편한데, 시를 쓰지 않으면 안 되고….”
이야기를 듣다 보니 그의 주저함은 철두철미함을 에두른 말이었다. 문예지에 발표한 작품이나 시집에 묶인 작품도 다시 퇴고할 정도로 수없이 되새김질을 한다고 했다. 등단 19년 만인 2011년에 첫 시집 『은빛 소나기』를 출간할 만큼 과작(寡作)인 것도 이해가 됐다. 꾹꾹 눌러가며 쌓아냈던 시심이 분출하듯 두 번째 시집은 2년 만에 엮였다.

시조는 그에게 여전히 풀기 어려운 숙제 같다. “극단의 언어 절제와 유연한 형식적 가락을 바탕으로 하되, 시대를 향해 열려 있어야 하는 정형 미학으로서의 시조를 쓰는 일은 정말 지난하고 힘든 사업으로 여겨집니다.”
그렇지만 시조에 사로잡힌 마음은 쉽게 풀리지 않을 듯하다.
“풀어지는 시상을 압축시키며 긴장하게 되는 쾌감이 있어요. 가치를 쳐내며 허사를 빼고, 몸집을 줄이면서 매력을 느끼게 됩니다. 정형이라는 틀에 갇히지 않으면서 시상을 자연스럽게 전개하는 것이 제가 추구하는 방향입니다.”
하현옥 기자
◆박명숙=1956년 대구 출생. 영남대 국문과 졸업. 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조로 등단. 99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시조집 『은빛 소나기』 『어머니와 어머니가』.
중앙신인문학상 시조부문 - 김샴
채울 수 없었던 삶의 허기
쓰는 동안, 나는 배 불렀다

대학을 다니면서 내게 가장 힘든 것은 불화도 가난도 아닌 허기였다. 스승께서 말씀하셨다. 그 허기를 시로 채워보라고. 그래서 나는 시의 길을 걸었다. 시를 읽고 필사하는 동안엔 허기지지 않았고, 시를 쓰는 동안엔 배가 불렀다. 휴학이냐 4학년 진학이냐 그 고민 사이에 당선소식을 받았다. 시인이 된다는 기쁨보다 졸업을 할 수 있다는 안도감이 먼저 찾아왔다.

내 시가 내 인생은 물론 누군가에게 ‘포르투나(Fortuna)’가 되길 바란다. 한 몸으로 태어나 내게 상처만 남겨준 동생이지만, 많이 보고 싶은 날이다.
◆약력=본명 김태년. 1993년 경남 진해 출생. 경남대 국어국문학과 3학년.
신인문학상 시조부문 심사평
응모작 대부분은 대체로 마디를 잇고 끊는 호흡이 안정돼 있고, 선택한 제재를 풀어내는 방식 또한 신뢰감을 갖기에 충분했다.
먼저 김샴의 작품 6편에 주목했다. ‘UFO를 먹다가’ ‘프로게이머’에서 시조와 판타지의 결합을 시도했고, ‘샴쌍둥이를 위한 변명’에선 자신의 불편한 출생마저 5수로 녹여내는 저력을 보여줬다. 몇 차례 의견 교환 후에 ‘바둑 두는 남자’를 당선작으로 뽑았다. 주검의 발견을 ‘발굴’로, 소지품을 ‘부장품’으로 표현한 것이 독특했다.
마지막까지 용창선·이나영·이명숙·엄미영 네 명을 논의했다. 용창선은 대상을 포착하는 방식이 신선했고, 이나영은 시를 밀고 가는 힘이 좋았다. 이명숙과 엄미영은 공히 숙련된 언어구사 능력을 보여주었다.
◆심사위원=오승철·권갑하·강현덕·이달균(대표집필 이달균)
신인상 - 서정택
이 세상과 빗장 질렀던 나 … 시조로 구원받아

판타지 계통 소설을 읽다 보면 인간과 유사한 종족인 엘프가 등장합니다. 천상의 목소리를 가지고 태어난 그들은 미의 정점에 서 있는 종족으로 묘사됩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보호수인 세계수가 없었다면 그저 그런 종족으로 남아지고 말았을 것입니다. 실직과 투병으로 차츰 지쳐가면서 그 시간을 도피하기 위해 세상으로 나 있는 모든 문에 스스로 빗장을 질러 수형자를 자처하고 있었습니다. 점점 침잠해가는 저를 보며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있었는데 시조는 결코 저를 포기하지 않았네요. 엘프의 세계수처럼 내 삶에 또 한 벌의 생명을 벗어 던져 준 시조여!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서정택=1962년 경기 오산 출생. 2006년 농민신문신춘문예 당선. 2011년 나래시조문학상 수상
중앙시조대상 심사평
한 해가 저물어간다. 우보천리(牛步千里)의 마음으로 떠난 길은 어느새 희미해지고 들떠있다. 그렇지만 그 끝쯤 이르러 정해지는 중앙시조대상은 늘 관심의 대상이 돼왔다. 후보자는 모두 12명이었다. 박명숙의 ‘오래된 시장 골목’을 전원 일치로 결정했다.
제목에도 드러나듯 이 작품은 오래된 풍경을 소재로 하고 있다. 힘이 들어가 있지 않은데도 읽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다. 호객하고 돈을 세는 ‘양미간이 팽팽’하게 느껴지는 치열한 삶의 긴장이 있지만 동시에 행간의 쓸쓸함이 있기에 그렇다. ‘늦은 철쭉’에서 연상된 ‘여벌옷’의 심상이 ‘붐비는 풍문에나 펄럭대는’ 우리네 삶으로 연장되면서 세상의 이치에 순응할 수밖에 없는 소시민의 심리가 둘째 수 종장에 압축돼 있다. 그러지 않으리라 생각하면서도 ‘마음이 지는 쪽으로’ 저물어가는 삶의 깊은 속내가 오래도록 시선을 붙든다. 삶의 내면에 닿아 있는 울림과 밀도 높은 서정성이 엮어내는 커다란 힘의 자장이 징소리처럼 길고 깊다.
중앙시조대상 신인상 역시 대상과 같이 후보자가 모두 12명이었고 최종적으로 3명이 남았다. 논의 끝에 결정된 서정택씨의 ‘윷놀이’는 ‘하루치의 일당’으로 살아가는 한 잡부의 삶을 통해 고통을 감내하는 아픔과 희망을 동시에 변주하고 있다. 우리 대다수 서민은 ‘해진 발 대신 신을 들고” 살얼음 내를 건너고 있지 않은가. 유달리 힘들었던 이 한해라도 우리가 내뻗는 윷놀이판, 나무 윷가락이 모여 ‘윷’이나 ‘모’쯤으로 한 번 훌쩍 뛰어 넘는 신명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높이 샀다.
◆심사위원=장경렬·정수자·이지엽(대표집필 이지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