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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 시대, 고달픈 MB학번 세대 파고들다

중앙선데이 2013.12.21 23:55 354호 10면 지면보기
19일 오후 서울광장, 한대련과 다양한 대학생 단체들이 ‘안녕하지 못한 대학생들의 합동 기자회견’을 위해 세워 놓은 게시판. 노진호 기자
중앙대 3학년 김명근(22)씨는 지난 13일 고려대의 ‘안녕들 하십니까(이하 안녕들)’라는 대자보를 처음 접했다. 기존 대자보를 볼 때와는 다른 느낌을 받았다고 김씨는 말한다. 그는 “기존의 대자보는 무의식을 건드리는 감성적인 언어가 없었다. 그런데 ‘안녕들’은 스스로를 돌아보고 정말로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게 뭔지 돌아보게 만들었다”고 했다. 14일 서울역에서 모인 첫 ‘안녕들’ 집회에도 참여한 그는 다음 날 중앙대에 ‘안녕들’ 대자보를 써서 붙였다. 그는 “앞으로 ‘안녕들’ 관련 행사와 학내 청소노동자들을 위한 집회에도 참여할 생각이다. 안녕하기 위한 길을 찾을 것이다”고 전했다.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열풍 왜?

 ‘안녕들’ 대자보 열풍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 10일 고려대에서 첫 대자보가 붙은 이후 현재까지 100곳에 가까운 대학에서 비슷한 종류의 대자보가 나붙었다. ‘안녕들’ 페이스북 페이지의 게시물은 26만3500여 명(21일 기준)이 공유하고 있다. 이런 움직임은 집회를 통해 직접 참여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노래도 등장했다. 래퍼 데비(18)가 지난 16일 공개한 4분 길이의 랩에는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질문이 35번 등장한다. 이 음악이 게재된 유튜브에는 “노래는 좋은데 괜히 눈물이 납니다” 등의 댓글이 달렸다.

열흘 만에 대학교 100여 곳에 나붙어
‘안녕들’ 대자보가 열띤 호응을 받으며 연이어 나붙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동안 ‘대자보’는 학내 운동권을 중심으로 계속 붙여져 왔다. 하지만 주로 08~12학번 학생들은 호응하지 않았다. 대학교 4학년인 문소연(23)씨는 “기존의 대자보는 ‘사회에 관심을 가지라’고 가르치고 명령하는 느낌이라 ‘취업하기도 힘든데 무슨 말이냐’ 하는 반발심이 있었다”고 말했다. 반면 ‘안녕들’ 대자보는 명령조·설득조의 언어 방식 대신 공감을 유도하고 있다. 대학생들이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물음에 자발적으로 나서서 호응을 하는 이유다. 권경우 문화사회연구소 연구기획실장의 분석이다.

 “‘안녕’이라는 보편적인 언어를 이용해 각자가 처한 상황을 녹여 낼 수 있었다.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물음은 누구에게라도 자신의 힘든 상황을 돌아보게 하고 ‘안녕하지 못하다’라는 답을 받을 수 있는 질문이다.”

 실제로 ‘안녕들’ 대자보의 주제는 다양하다. ‘우리 예비교사는 콩나물 시루 같은 교실을 만들고 알바 교사를 뽑으려는 대통령님 때문에 안녕하지 못합니다’ ‘어제 술을 많이 마셨는데 제대로 해장하지 못해 안녕하지 못합니다’ ‘세상의 수많은 슬픈 사람들 때문에 안녕하지 못합니다’ ‘철도 민영화 불안 때문에 안녕하지 못합니다’ 등 정치 이슈에서부터 개인적·사회적 문제까지 등장한다. 공통점은 뒤에 ‘안녕들 하십니까’라고 질문을 던지는 형식이다. 즉, ‘안녕’이라는 보편적 언어를 통해 읽는 이로 하여금 감성적인 공감을 불러일으켰다는 말이다.

 이처럼 대학생들이 감성적 요소에 호응하는 모습을 두고 전문가들은 ‘신자유주의 시대의 단상’이라고 분석한다. ‘신자유주의’란 국가의 시장 개입을 반대하고 민간의 자유로운 활동을 추구하는 이론으로, 흔히 ‘극한 경쟁주의’라는 부정적인 의미로 쓰인다. 국민대 최항섭(사회학과) 교수는 “대부분 MB정권 때 입학한 현 대학생들은 외환위기 이후 경쟁이 심화되면서 사회구조적으로 고립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희망보다는 좌절이 계속되면서 감정에 약해진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권경우 실장은 “외환위기 이후 부자·성공이라는 키워드가 한국사회에 퍼지면서 10년 가까이 유지됐다. 젊은 세대도 이러한 담론들이 삶의 가장 중요한 이정표가 됐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2007~2008년 유행했던 ‘88만원 세대’, 2011년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한 세대를 뜻하는 ‘삼포 세대’, 2010년부터 문화코드가 된 ‘잉여’라는 키워드에는 소위 말하는 ‘MB학번 세대’들이 느끼는 사회적 박탈감이 깃들어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한 대학생이 13일 고려대 정경대 후문에서 진행된 ‘안녕들 하십니까’ 포토서명 이벤트에 참가해 ‘안녕하지 못한 이유’를 밝히고 있다.
“환경 순응보다 환경 변화 성향으로”
대학생들은 과거에도 ‘감성’ 코드에 호응해 왔다. 대표적인 것이 ‘힐링’ 열풍이다. 힐링이라는 개념은 애초 1990년대 후반, 일본의 새로운 트렌드로 언론매체를 통해 국내에 소개되면서 처음 등장했다. 이러한 힐링이 한국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건 2010년 이후다. 사회 전체가 호응했지만 그 중심엔 대학생이 있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지난 5월 보고서를 통해 힐링 열풍의 배경 중 하나로 “청년실업이 악화되면서 청년계층의 심리적 불안감이 가중됐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대표적인 ‘대학생 힐링 서적’인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청춘들 사이에서 히트를 쳤다. 이 책은 저자가 서울대 학생과 겪었던 경험을 토대로, 대학생들을 감싸고 있는 불안과 조급함에 대해 “불안해하지 않아도 된다”고 일러주는 게 골자다. 출판사 쌤앤파커스에 따르면 2010년 12월 말에 출간된 이 책은 1년 반 만에 690쇄(약 150만 부)를 발간했고, 현재까지 총 202만 부나 팔렸다. 대학교 4학년인 박춘호(22)씨는 “2011년에 주위 사람들이 하도 추천해 김난도 교수 책을 읽었는데 나름 감명을 받았었다.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가치관이 생기더라”고 말했다.

 멘토가 등장해 학생들과 대화를 나누는 ‘힐링콘서트’도 대학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2011년 5월 안철수 당시 서울대 교수가 참여한 ‘청춘콘서트’는 처음 경희대에서 개최될 때부터 5000명에 가까운 대학생이 참여했다. 이후 부산에서 추가로 개최한 청춘콘서트까지 반응이 뜨겁자, 6월 들어서는 전국 투어를 하며 대학생들로부터 인기를 끌었다. 서울대 곽금주(심리학과) 교수는 “힐링 코드는 듣는 이로 하여금 ‘아프냐, 나도 아프다’라며 얘기를 건네고 위로했다. 열풍이 일었던 것은 말하는 이와 듣는 이가 감성을 공유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안녕들’ 신드롬은 이전의 감성 신드롬과 달라진 모습도 엿보인다. 호응의 형태가 이전에는 수동적이었다면 ‘안녕들’ 열풍은 능동적이다.

 지난 19일 오후 서울광장. 크리스마스를 기념하기 위해 장식된 대형 크리스마스 트리 아래 ‘안녕들’ 게시판이 설치됐다. 게시판에는 ‘저는 학생에게 피해를 전가하는 대학 구조조정 정책 때문에 안녕하지 못합니다’ 등의 종이가 나붙었다. 학생들은 기자회견을 통해 “대한민국 미래를 걱정하는 우리 대학생들은 앞으로도 대통령과 정치인들에게 대한민국의 ‘안녕’을 계속 물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자회견 후에도 남아서 철도 노조의 집회에 참여한 윤세용(22)씨는 “고려대 대자보가 빙판을 깨는 역할을 했다. 정치에 무관심했던 스스로에게 부채 의식을 느껴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연세대 강정한(사회학과) 교수는 “감성을 건드리는 건 같은 맥락이지만, 힐링이나 멘토 열풍엔 주어진 환경을 받아들인다는 측면이 강했다. 하지만 ‘안녕들’ 열풍은 ‘받아들이려고 해도 안 되는구나’라는 생각 때문에 벌어진 측면이 강하다. 환경에 순응하기보다는 환경을 변화시키려는 성향으로 바뀐 것이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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