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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 '올해의 인물' 선정 프란치스코 교황

중앙일보 2013.12.21 00:54 종합 21면 지면보기



자본주의 탐욕 비판 … "마르크스주의자" 공격에 "난 괜찮다"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가장 많이 붙는 수식어는 ‘최초’다. 그는 올 3월 선출과 동시에 1282년 만의 첫 비유럽권 교황, 남미 최초의 교황, 첫 예수회 출신 교황으로 기록됐다. 또 빈자를 위한 성인(아시시의 프란치스코)을 교황명으로 선택한 최초의 교황이 됐다.



 최초라는 말은 바꿔 말해 기존 기록이나 관례를 깬다는 이야기다. 실제 지난 9개월 동안 프란치스코 교황의 행보를 보면 이는 교황을 묘사하는 가장 정확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에게 ‘최초가 많은 교황(a pope of firsts)’이라는 별명을 붙인 언론들조차 다음과 같은 최초는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시사 주간 타임과 동성애 권익 보호 잡지로부터 동시에 올해의 인물로 뽑힌 최초의 교황 말이다. “완벽한 마르크스주의자”라는 비판을 받는 최초의 교황도 그렇다. 이 말을 듣고서도 “상처받지 않았다”고 말하는 교황은 더더욱 그렇다.



중고차 손수 운전, 무슬림 여성도 세족



처음 교황이 주목 받은 ‘최초’는 스타일이었다. 무슬림 여성의 발을 씻기고 입 맞추거나 교황 전용 차량인 고급 승용차 메르세데스 벤츠의 뒷좌석에 타는 대신 준중형인 포드 포커스 중고를 직접 운전하는 것은 전임 교황들에게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일종의 퍼포먼스로 보거나 교황의 권위를 떨어뜨린다고 곱지 않게 보는 시선들도 있었다. 하지만 파격적 행보에 전제된, 일관된 메시지가 부각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위에서’가 아닌 ‘옆에서’, 신자뿐 아니라 모든 이들을 끌어안는 교회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프란치스코가 추구하는 교회 개혁 역시 이 생각을 현실화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교황은 임기 5개월 만인 8월 국무원장 교체를 시작으로 ‘바티칸의 권력 내려놓기’에 착수했다. 국무원장은 교황의 직무 수행 보좌와 교황청 각 부서의 업무 조정·총괄, 외교 업무를 담당하는 명실공히 바티칸의 2인자다. 하지만 전임 베네딕토 16세가 임명했던 타르치시오 베르네토(78) 전 국무원장은 권력 집중을 꾀하며 재정 관리, 주교 임명 등을 도맡아 바티칸을 장악했다는 비판을 받곤 했다.



 반면 프란치스코 교황이 임명한 새 국무원장 피에트로 파롤린(58) 대주교는 직전까지 베네수엘라 주재 교황청 대사로 근무한 ‘직업 외교관’이다. 나이도 전임 국무원장보다 20살이나 젊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 외에도 주교대의원회의, 성직자성 등 주요 기구의 장들을 최근까지 브라질과 콜롬비아 등에서 교황청 대사를 지낸 인물들로 채웠다. 기존에 교황청을 주무르던 관료들이 아니라 실무를 담당해온 전문성 있는 이들을 중용, 일종의 ‘테크노크라트 교황청’을 구성한 것이다. BBC 등은 이를 두고 “권력욕 없이 본연의 임무만을 수행할 전문가들을 기용하고, 독단이 아니라 협의를 통해 교황청을 이끌겠다는 의지”라고 해석했다.



 이후에도 관저 개축에 수백억원을 쓴 독일의 ‘럭셔리 주교’에게 무기한 정직 처분을 내리는 등 교황은 인사권을 강력한 개혁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특히 최근 교황이 주교성에서 활동하던 보수 성향의 레이먼드 버크 추기경을 전격 교체한 것은 가장 과감한 결단으로 해석되고 있다. 주교성은 전 세계 주교 선정 등을 맡는 바티칸 주요 기구다.



 LA타임스는 버크 추기경을 “극단적 전통주의자들의 우상”이라고 표현했다. 버크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교황은 우리가 ‘결혼은 남성과 여성 사이의 결합’이란 것을 너무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지만 이는 더 많이 이야기해야 하는 내용”이라고 말했다. 동성애자도 형제처럼 보듬어야 한다는 교황을 에둘러 비판한 것이다.



 버크 추기경의 낙마를 두고 프란치스코 교황이 교회 내 보수파들과의 전면전을 선포한 것이란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LA타임스는 “그렇다고 후임인 워싱턴의 도널드 우웰 추기경이 진보 성향 도 아니다”고 전했다. 교황청 전문 언론인 로코 팔모도 이번 조치에 대해 “주교성 자리는 뉴욕·보스턴·필라델피아 추기경들이 맡아 왔는데 처음으로 워싱턴 추기경을 임명한 것은 ‘자질만 있다면 누구든 기용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실 교황청 개혁 조치는 요한 바오로 2세나 베네딕토 16세 역시 강조하던 부분이었다. 그런데 프란치스코 교황만 유독 세간의 관심을 받고 이념 논란까지 벌어지는 것은 교황의 개인적 성향이 시대적 변화와 결합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그는 가난한 이민자의 아들이다. 교황의 아버지는 이탈리아에서 배를 타고 죽을 고비를 몇 번씩 넘기며 여섯 달 만에 아르헨티나에 도착해 철도 노동자로 일했 다. 그의 아버지가 원래 타려다 간발의 차로 놓친 보트는 브라질 연안에서 침몰했고, 배에 탔던 수백명이 사망했다. 교황이 유럽의 반이민 정서를 강하게 비판하고, 시리아 난민 문제에 유독 관심을 기울이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그는 또 사제가 되기 전 다양한 직업을 거쳤다. 청소부, 술집 문지기, 화학자, 문학 교사 등 소시민의 삶을 직접 경험했다. 사제가 된 뒤에도 교황은 ‘빈자들의 세계’를 떠나지 않았다. 부에노스아이레스 도심을 둘러싼 빈민가가 그의 사목활동 무대였다. 에이즈 감염자들에게 입을 맞췄고, 미혼모의 자녀들에게 세례를 주지 않는 동료 사제들을 대놓고 비판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교황은 지금 그가 직접 보고, 겪은 일을 바탕으로 잘못된 것이 무엇인지 이야기하고 있다” 고 설명했다.



 교황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은 그가 갖고 있는 또 하나의 ‘최초’ 타이틀이다. 그는 바로 2차 바티칸 공의회(1962·요한 23세~1965·바오로 6세) 이후에 사제가 된 첫 교황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사제 서품을 받은 것은 1969년이다. 2차 바티칸 공의회는 “시대에 맞는 교회의 의식 변화”를 선언, 개방·혁신을 통해 현대 교회의 틀을 갖춘 공의회로 기록돼 있다. 라틴어가 아닌 모국어로 미사를 집전할 수 있게 하고, 평신도의 역할을 강화했다.



강론·성명보다 대중들과 직접 소통



바오로 6세부터 요한 바오로 1세, 요한 바오로 2세, 베네딕토 16세까지 모두 2차 바티칸 공의회에 참석한 인물들이다. 이 때문에 그 틀에서 자유롭지 못했지만, 프란치스코에게는 그런 부담이 없다. 저명한 교회 역사학자인 존 오말리는 최근 미 록허스트대 강연에서 3차 바티칸 공의회를 열 때가 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3차 공의회라고? 3월 13일에 벌써 하지 않았나?”라고 반문했다. 이날 신임 교황이 선출됐다. 프란치스코의 등극 자체가 공의회에 버금가는 가톨릭 교회의 개혁이 될 것이라는 뜻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급진적 언행으로 교회의 분열을 초래하고 있다는 비판적 시각도 있다. 전임 교황들은 강론이나 문서, 대리 성명 등 방식으로 의견을 전달했지만 프란치스코는 성 베드로 광장에 모인 이들과 이야기하거나 자신에게 편지 보낸 신자에게 전화를 거는 등 직접 소통하기 때문에 오해를 사는 경우도 많다. AP통신은 이런 교황의 스타일 때문에 교황청 내에 ‘수습반’이 생겼다고 전했다. 교황이 동성애나 이혼 절차 등 민감한 사안에 대한 발언으로 논쟁이 일 때마다 교황청은 “본질은 그런 것이 아니다”라는 기고나 해명 자료를 내기에 바쁘다.



 최근의 마르크스주의자 논란도 같은 맥락에서 촉발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발단은 지난달 발표한 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에서 자본주의의 탐욕을 거세게 비판한 것이었다. 교황은 특히 경제가 성장하면 자연스럽게 아래로 분배가 이뤄진다는 ‘낙수 효과’에 대해 “걷잡을 수 없이 커져버린 경제의 권력이 긍정적 효과를 낼 것이라는 순진한 믿음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미국의 라디오 진행자인 보수 평론가 러시 림보는 “교황의 말은 완전한 마르크스주의”라며 충격적이라고 표현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번에 소방수로 나선 것은 교황청이 아니라는 것이다. 많은 서구권 언론은 “극단적 자본주의의 확산은 빈곤에 시달리는 많은 이를 외면하게 한다.”(요한 바오로 2세), “제물이 지배하는 국제적 제국주의는 아무도 자본가들에게 대항할 수 없는 사회를 만들었다.”(비오 11세) 등 전임 교황들의 말을 인용하며 물질만능주의 비판은 소외된 이들을 배려하는 가톨릭 교회의 기본 정신일 뿐이라고 대변하고 나섰다.



 압권은 거침 없는 입담으로 내로라하는 거물 정치인들도 꼼짝 못하게 하는 시사풍자 토크쇼 ‘데일리 쇼’의 진행자 존 스튜어트였다. 자유시장 경제만이 해법이라며 교황을 비판한 미 폭스뉴스 진행자 스튜어트 바니를 향해 그가 “교황 직업이 가난한 이들을 돌보는 것인데, 당신 지금 교황 직업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거야?”라고 기가 막힌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자 갑자기 화면에 예수의 초상화와 마태오복음에서 예수가 ‘아무도 하느님과 제물, 두 주인을 섬길 수는 없다’고 이른 문구가 나왔다. 스튜어트는 이렇게 비꼬았다. “ 누가 이런 말을 했더라? 그러고 보니 이 턱수염 좀 봐. 이 사람도 마르크스주의자 맞네!”



유지혜 기자



사진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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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10월 바티칸 성베드로 광장에서 강론 도중 갑자기 단상에 올라온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다. [바티칸 AP=뉴시스]



2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3월 부활절을 앞두고 이탈리아 로마 교외의 소년원을 찾아 재소자의 발을 씻기고 입 맞추고 있다. [로마 AP=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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