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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 깨서 찌른 건 벌금형 … 병으로 때린 건 징역 1년6월?

중앙일보 2013.12.20 02:30 종합 16면 지면보기
지난해 10월 강모(47)씨는 전북 전주시 평화동 지인의 집에서 술을 마시다 선배 전모(49)씨와 시비 끝에 소주병을 깨 전씨를 찔렀다. 전씨는 오른쪽 가슴 근육이 파열되면서 전치 5주의 상해를 입었다. 전씨는 치료비 전액을 물어주는 조건에 강씨와 합의했고, 담당 검사는 강씨를 형법상 상해죄로 약식기소했다. 강씨는 전주지방법원에서 15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폭처법 '위험한 물건' 정의 불명확
검사에 따라 법 적용 들쭉날쭉
서울북부지법, 위헌심판 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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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면 지난 3월 서울 번동의 술집에서 시비 끝에 지인 강모(40)씨를 소주병으로 때린 최모(46)씨는 징역형을 선고받을 위기에 처했다. 피해자 강씨는 머리에 혹이 생기는 타박상으로 전치 2주의 진단을 받았다. 두 사람은 치료비 200만원에 합의했다. 피해자가 경찰 조사에서 “최씨의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했지만 정식 재판을 피할 수 없었다. 소주병을 ‘위험한 물건’으로 본 담당 검사가 최씨를 형법상 상해가 아닌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이하 폭처법) 위반으로 기소했기 때문이다. 유죄가 인정될 경우 출소한 지 3년이 지나지 않은 최씨는 집행유예를 받을 수 없다. 최소 징역 1년6월형을 선고받게 된다.



 서울북부지법 형사5단독 변민선 판사는 최씨에게 적용된 폭처법 제3조 1항에 대해 “‘위험한 물건’의 정의가 명확하지 않으며 지나치게 높은 형량으로 법관의 양형재량권을 침해한다”며 직권으로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고 19일 밝혔다. 해당 조항은 “흉기 기타 위험한 물건을 휴대하여 상해를 입힌 사람은 3년 이상의 징역으로 처벌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변 판사는 결정문에서 “해당 조항의 ‘위험한 물건’에 대해선 대법원 판례조차 애매모호하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마요네즈병(1984년 판결)과 길이 50㎝의 나무막대기(1997년 판결)를 ‘위험한 물건’이라고 판단한 사례가 있다. 하지만 89년 판결에선 ‘식칼’을 위험한 물건이 아니라고 판단하기도 했다. 변 판사는 “판례를 보면 볼펜·유리컵·국그릇·지구본·우산·휴대전화 등 주위의 흔한 물건들이 폭처법이 규정하는 위험한 물건이 될 수 있다”며 “폭처법 적용 대상을 흉기·총포·도검류로 제한한 일본과 비교된다”고 설명했다.



 변 판사는 또 “폭처법은 검사의 성향에 따라 사실상 형이 결정돼 재판에 넘겨지기 때문에 법관의 양형재량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검사가 형법상 상해죄로 기소하면 판사는 징역 1년 이상 또는 벌금까지 폭넓게 판단할 수 있다. 그러나 검사가 폭처법상 상해죄로 기소할 경우 무죄를 선고하지 않으면 최소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할 수밖에 없다. 변 판사는 “폭처법으로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 받은 사람은 국가공무원법 등에 의해 공무원·교사 임용이 금지된다”며 “공인중개사·회계사 등 자격도 취득할 수 없고, 사기업에서도 해고나 징계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형벌 이상의 과도한 불이익을 주기 때문에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된다는 논리다.



정종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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