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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듀! 2013 ④ 그날을 기억하라 … 사건으로 보는 올 공연계

중앙일보 2013.12.20 01:56 종합 25면 지면보기



공연장도, 국립극단도 … 유독 불거진 정치 이슈
예술의전당·세종문화회관 사장
인사 논란·해임건의안 '뒤숭숭'
어렵다던 연극 ‘단테의 신곡’ 돌풍
뮤지컬은 새 작품 기근에 시달려



















하루하루가 더해져 역사가 된다. 수많은 날짜 가운데 때론 딱 하루가 전환점이 되기도 한다. 특정일에 관심을 갖는 건 그런 이유다. 이날, 이 사건이 없었다면 과연 올해 우리 공연예술(클래식·연극·뮤지컬·무용)은 어땠을까. 특별했던 ‘그날’들을 통해 2013년 무대 안팎을 돌아봤다. 일지로 보는 한국 공연계의 현주소다.



5시간 35분짜리 대형 오페라 ‘파르지팔’(사진 위), 전회 매진을 기록한 ‘단테의 신곡’(사진 아래). [사진 중앙포토·국립오페라단·국립극장]
 ▶뮤지컬 ‘레베카’ 돌풍(1월 12일)=신작 기근. 올 뮤지컬계는 이 한마디로 요약된다. 뮤지컬 시장이 커지고 경쟁 또한 치열해지면서 이미 흥행성이 검증된 레퍼토리 작품의 재공연이 주를 이뤘다. 혹 신작이 올라가도 대중의 반응은 썩 좋지 못했다. 1월 12일에 개막한 ‘레베카’는 올해 최고의 뮤지컬로 꼽을 만하다. 유료 점유율 86%. 할리우드의 전설적 감독 앨프리드 히치콕(1899~1980) 의 동명 영화를 매끄럽고 긴장감 있게 뽑아냈다. 옥주현의 조역 연기가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잭더리퍼’ ‘모차르트!’ ‘엘리자벳’으로 이어져온 유럽 뮤지컬의 정점이었다.



 ▶코드인사 논란 고학찬(3월 14일)=모철민 서울 예술의전당 사장이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으로 발탁되면서 그 자리에 지명도가 거의 없었던 고학찬(66) 윤당아트홀 관장이 이날 임명됐다. 공연계의 반응은 호의적이지 않았다. 고씨는 박근혜 대통령 싱크탱크 그룹인 국가미래연구원 출신으로 이 정권의 대표적인 문화계 코드 인사로 분류됐다. 고 신임사장은 곱지 않은 시선을 극복하고자 동분서주했지만 지난 1년간 주목할 만한 성과는 눈에 띄지 않았다.



 ▶환골탈태 국립무용단(4월 10일)=이날 막을 올린 국립무용단의 ‘단’은 여성 무용수가 상체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대중의 호기심을 한껏 자극했다. 하지만 정작 공연은 관음증을 채우려 했던 관객이라면 다소 실망스런(?) 수준의 노출이었다. 무엇보다 안성수(안무)-정구호(연출) 콤비의 무대가 세련되고 유려했다. 한국무용이 얼마나 관능적일 수 있는가를 각인시켰다. 전통춤은 낡고 고리타분하다는 고정관념이 유쾌하게 깨졌다. 이른바 전통의 재창조다.



 ▶박인배 세종 사장 퇴출위기(7월 4일)=이날 서울시의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는 박인배 세종문화회관 사장에 대한 해임건의안을 상정했다. 세종문화회관 35년 역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야권 인사를 향해 민주당이 칼을 뽑은 격이라 더욱 화제가 됐다. 결국 해임이라는 최악의 사태까지 진행되진 않았지만 세종문화회관은 올 1년 내내 바람 잘 날이 없었다. 산하단체인 서울시극단·무용단은 별다른 존재감을 보이지 못했고, 서울시뮤지컬단은 무리하게 뮤지컬 ‘디셈버’ 공연을 추진하다 막판에 빠지며 구설수에 올랐다.



 ▶괄목상대한 서울시향(8월 29일)=오케스트라의 명가가 줄을 서있는 유럽에 내놔도 꿀리지 않는 솜씨로 말러의 9번 교향곡을 요리한 서울시향은 올 들어 연주회마다 일취월장한 모습을 보였다. 클래시컬 음악팬들의 즐거움도 배가됐다. 정명훈 예술감독이 펼치는 원숙한 지휘는 음악성뿐 아니라 단원들을 아버지처럼 이끄는 인품과 어우러져 세계로 도약하는 서울시향의 위상을 예감하게 했다. K-클래식의 기반이 단단해졌다.



 ▶국립극단 연극 ‘개구리’ 파장(9월 3일)=국립극단이 제작한 연극 ‘개구리’(박근형 연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은 미화하면서 박정희 전 대통령은 폄하해 정치적 논란에 휩싸였다. ‘수첩공주’ 등 박 대통령에 대한 야유도 적지 않았다. 한국을 대표하는 국립단체가 만들었다는 점이 논쟁을 더욱 부채질했다. 일각에선 “표현의 자유와 정치적 편향성 문제를 넘어 연극적 완성도가 기본적으로 떨어진다”라는 비판도 있었다. 정치판 못지 않게 좌·우 대립 양상을 보이고 있는 한국 연극계의 민낯이었다.



 ▶불패신화 블루스퀘어의 굴욕(9월 22일)=록밴드 그린데이의 음악으로 만든 뮤지컬 ‘아메리칸 이디엇’은 10억원의 적자를 보고 이날 막을 내렸다. 이 공연이 새삼 주목을 끈 건 공연장이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였기 때문이었다. 2011년 개관 이후 ‘조로’ ‘엘리자벳’ ‘위키드’ ‘레미제라블’ 등 대형 뮤지컬을 잇따라 유치하며 불패 신화를 쌓아가던 블루스퀘어로선 첫 흥행 실패였다. 원숭이도 때론 나무에서 떨어지는 법이다.



▶오페라 ‘파르지팔’ 국내 초연(10월 1일)=국립오페라단이 베이스 연광철(48·서울대 음대 교수)을 디딤돌 삼아 바그너 최후의 음악극 ‘파르지팔’을 드디어 한국 무대에 올렸다. 연 교수를 뺀 주역과 연출·지휘가 외국 전문가들이라 절반의 성공이라 할 수 있지만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준 사건이었다. 독일에서 활동하는 작곡가 진은숙씨는 “이제야 ‘파르지팔’을 공연했다는 게 오히려 사건”이라고 토를 달았다.



▶연극 ‘단테의 신곡’ 전회 매진(11월 2일)=난해하기로 유명한 이탈리아 작가 단테(1265~1321)의 『신곡』. 인간의 구원을 다룬 이 대서사시를 연극 무대에 올리면 과연 몇 명이나 찾아올까.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개막 당일에 이미 7회분이 다 팔려나갔다. 관객의 뜨거운 요청에 3층 유보석까지 내놓아야 했다. 국립극장의 기획력, 연출가 한태숙에 대한 신뢰, 인문학 열풍 등이 빚어낸 이변이었다. 국립극장 레퍼토리 시즌제가 출범 2년째 만에 뿌리내렸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최민우·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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