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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만에 국가대표, 깜짝 썰매 윤성빈

중앙일보 2013.12.20 01:26 종합 30면 지면보기
윤성빈이 지난 3월 11일(한국시간) 미국 레이크 플래시드 봅슬레이-루지 콤플렉스에서 열린 아메리카컵 9차 대회에서 가속을 붙이기 위해 썰매를 밀며 힘차게 달리고 있다. [사진 대한봅슬레이스켈레톤경기연맹]


2014 소치 겨울올림픽 개막(한국시간 2월 8일 오전 1시14분)이 50일 앞으로 다가왔다. 한국은 빙상에서 많은 메달을 바라보고 있지만 썰매에서도 메달 못지않은 값진 선전을 기대하고 있다. 과거 겨울올림픽에서 한국의 썰매 종목은 불모지였다. 하지만 2018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를 계기로 썰매장에도 햇살이 들고 있다. 생각지도 않았던 유망주들도 툭툭 튀어나온다. 소치 올림픽이 기다려지는 이유다.

소치 겨울올림픽 D-50
스켈레톤 국제대회 잇따라 은 딴 19세





윤성빈
스켈레톤 남자대표팀 막내 윤성빈(19·한국체대·사진)은 한국 썰매에 혜성같이 등장한 에이스다. 윤성빈은 지난달 열린 아메리카컵 3~5차 대회에서 은메달 1개, 동메달 2개를 따내더니 지난 6, 7일 오스트리아 이글스에서 열린 2013~2014 대륙간컵 1, 2차 대회에서는 잇따라 2위에 올랐다. 1220m 트랙을 53초15(1차), 53초18(2차)에 주파했다. 월드컵 다음으로 권위 있는 대륙간컵에서 한국 선수가 메달을 따낸 것은 처음이다. 그는 세계랭킹 22위까지 올라 상위 26명에게 주어지는 소치 올림픽 출전권 획득도 유력하다.



 하지만 이 선수의 이력을 들여다보면 더 놀랍다. 그는 지난해 여름까지만 해도 평범한 고3 수험생이었다. 스켈레톤이 뭔지도 모르는 문외한이었다. 그저 체육시간에 공 차는 것을 좋아하는 정도였다. 고등학교(신림고) 체육교사의 권고로 지난해 7월 처음 썰매를 접했을 때도 윤성빈은 큰 흥미를 느끼지 않았다. 그는 “스켈레톤을 처음 탔을 때 ‘이건 내 종목이 아니다’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학에 가려면 남들이 안 하는 종목에 승부를 걸어야 했다.



 윤성빈은 “썰매를 타는 요령을 하나둘씩 터득하면서 스켈레톤이 알면 알수록 더 많은 게 있는 종목이라는 걸 느꼈다. 그러면서 내 종목이라는 확신이 생겼다”고 말했다. 윤성빈은 입문 3개월 만인 지난해 9월 제1회 스타트 챔피언대회에서 1위에 올라 국가대표에 뽑혔다. 국내에는 아직 스켈레톤 경기장이 없어 100m 길이의 경사진 빙판에서 스타트 속도를 겨루는 게 이 대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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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대표가 된 뒤 윤성빈은 75㎏이던 몸무게를 늘리기 위해 1년 동안 하루에 8끼씩 먹었다. 30~40㎏의 썰매에 엎드려 시속 140㎞가 넘는 속도를 견뎌내기 위해서는 80㎏대 중후반의 몸무게를 유지해야 한다. 윤성빈은 “살면서 제일 힘든 순간이었다. 이렇게까지 먹어야 하나 싶을 정도로 먹었다. 그래도 나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견뎌냈다”고 말했다. 1m78㎝의 키에 몸무게가 88㎏까지 늘어난 윤성빈은 근육을 키우기 위해 하는 스쿼트(역기를 들고 앉았다 일어나는 운동) 무게도 130㎏에서 1년 새 200㎏까지 늘렸다.



 새로운 기술과 전략을 배우기 위해 코치에게 시도 때도 없이 질문을 했다. 조인호(35) 스켈레톤대표팀 코치는 “입문한 지 얼마 안 되는 선수들은 어떻게 운동해야 할지 몰라 지도자들의 지시를 기다린다. 그러나 윤성빈은 먼저 묻고 스스로 찾아서 훈련한다. 자신이 한 말을 그대로 지키는 선수”라고 말했다. 윤성빈은 “스켈레톤은 타고난 운동신경으로 하는 게 아니라 선수 스스로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달렸다고 믿었다”고 말했다.



 짧은 기간이지만 신중하면서도 혹독하게 자기관리를 한 윤성빈은 1년 새 몰라보게 달라졌다. 두 달 가까이 미국·캐나다·유럽 등지를 도는 강행군에도 전혀 지치지 않았다. 실력 있는 선수들이 대거 출전했던 대륙간컵에서도 주눅들지 않았다. 이번 대륙간컵 1, 2차 대회에는 2010 밴쿠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존 몽고메리(캐나다)도 참가했지만 10, 13위에 그쳤다. 거침없이 달리는 동양 선수를 향해 경쟁국 선수, 코칭스태프들은 ‘호스(Horse·말)’라는 별칭을 붙여줬다. 조 코치는 “대륙간컵 은메달을 따고 여기저기서 ‘어메이징(Amazing·놀랍다)’이라는 축하 인사를 받았다. 출전할 때만 해도 거들떠보지 않던 유럽·북중미 선수들의 시선이 달라졌다”며 활짝 웃었다.



 별다른 장래 희망도 없던 평범한 학생에서 스켈레톤을 통해 새로운 꿈이 생긴 윤성빈. 그는 당장의 성과보다 차근차근 성장하는 선수가 되기를 원한다. 윤성빈은 국제대회에서 잇따라 좋은 성적을 냈어도 “잘한 것보다는 부족한 게 더 많다는 걸 느낀다”며 겸손해했다. 그는 “스켈레톤은 이제 내 몸의 일부다. 아직 더 보여줄 게 많다. 한 단계씩 천천히 올라가면서 나중에 더 큰일을 저질러 보겠다”며 당차게 말했다.



김지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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