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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파독 근로자들의 땀을 기억하나요

중앙일보 2013.12.20 01:10 종합 33면 지면보기
안효성
사회부문 기자
유종환(76)씨는 1966년 8월 파독광부로 선발돼 독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유씨는 독일 함본 광산 지하 1000m 막장에서 하루 7시간씩 석탄을 캤다. 한번 일하고 나면 온몸이 땀과 석탄으로 범벅이 됐다. 유씨의 월급은 700마르크. 당시 한국 직장인 월급의 8배나 되는 거금이었다. 하지만 매달 유씨의 손에 남은 돈은 100마르크가 채 되지 않았다. 유씨는 “최소한의 용돈만 남기고 한국의 가족들에게 월급을 고스란히 보냈다”고 말했다.



 1960년대 독일로 간 광부와 간호사들 대부분은 유씨처럼 월급을 고국으로 보냈다. 가족들에게 한 푼이라도 더 보내기 위해 쉬는 날에도 주택철거 등 온갖 잡일을 맡아 했다. 이들이 66~76년 송금한 돈만 1억1530만 달러, 같은 기간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의 2%에 달했다.



 18일 서울도서관 1층 기획전시실. 광부·간호사 파독 50주년을 맞아 특별전시회가 개막됐다. 유정복 안전행정부 장관, 박원순 서울시장 등 내외빈들로 전시회는 북적거렸다. 그러나 공식행사가 끝나자 전시회장은 금세 적막해졌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파독광부·간호사들만 남아 옛 추억에 잠겼다. 전시회의 규모가 작은 데다 홍보도 제대로 안 된 탓이었다.



 한 파독광부는 “국가에서 전시회를 열어주는 건 감개무량하지만 전시물품이 별로 없어 허전하다”며 섭섭함을 드러냈다.



 파독광부들끼리 서로 안부를 묻자 도서관 직원은 “바로 옆이 열람실이니 목소리를 좀 줄여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전시회장에서 만난 파독광부·간호사들의 바람은 한결같았다. “우리를 잊지 말아달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바람과 달리 파독광부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무심하기 그지없다. 서울 양재동에 위치한 파독근로자기념관은 정부 지원이 끊겨 한 달 500만원의 운영비를 마련하는 것도 빠듯하다고 한다. 파독협회 관계자는 “파독 50주년을 맞아 독일대사관 등 각종 단체에서 행사를 하고 있지만 정부 차원의 행사나 지원은 없다”며 “75세가 넘는 회원들의 회비로 근근이 꾸려가고 있다”고 섭섭함을 털어놨다.



 “파독 근로자들이 보낸 돈은 1달러의 외화도 소중했던 1960년대 한국의 경제성장에 상당한 기여를 했다.” 진실화해위원회가 2008년 펴낸 보고서 내용이다. 60년대 파독 광부·간호사, 70 년대 중동 건설근로자들은 우리가 누리는 현재의 번영을 가능케 한 국가 유공자들이다. 이들에게 보상을 하라는 취지가 아니다. 아무것도 없었던 척박한 상황에서 가족과 조국을 위해 치열하게 일했던 땀과 노고를 잊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안효성 사회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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