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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억 들인 통역 앱 두고 다른 앱 사는 지자체

중앙일보 2013.12.19 01:41 종합 2면 지면보기
지방자치단체와 공공기관이 세금을 들여 개발한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 상당수가 내용이 부실하고 작동이 안 되는 등의 문제점을 안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수십억원을 투입해 만들었으나 지자체들이 활용을 외면하고, 여러 공공기관이 똑같은 기능의 앱을 중복 개발한 사례도 확인됐다. 스마트폰 앱을 통해서도 세금이 새고 있는 것이다. 중앙일보가 주요 공공기관 개발 앱들을 직접 작동하고 비교해 본 결과다.


업체에 매년 3000만원꼴 사용료
지자체 "민간앱이 더 우수" 주장
글자 읽을 수 없거나 먹통 앱도
결국 세금 낭비 "정부가 조정을"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은 지난해 10월 통역 앱 ‘지니톡(Genie Talk)’을 선보였다. 한국어·영어·중국어·일본어 통역 앱이다. 한국어로 말을 하면 음성을 인식해서는 이에 해당하는 영어 문장을 화면에 띄워 보여주거나, 소리 내어 읽어 준다. 78억원을 들여 개발해 누구나 공짜로 이용할 수 있도록 앱 장터인 ‘구글 플레이’ 등에 올려놓았다.



 그러나 지자체는 관광진흥용으로 지니톡 대신 민간업체가 개발한 ‘통역비서’란 앱을 별도 구입해 쓰고 있다. 서울 강남구·중구와 제주, 충북 충주, 전남 순천 등이 매년 2000만~4000만원을 사용료로 지불하고 통역비서를 사용 중이다. 앱 장터에 올려 외국인 손님을 맞는 지역 상인 등이 공짜로 이용하게 해 놓았다. 국가 연구기관이 만든 공짜 앱을 놔두고 돈을 주면서 민간 앱을 사용하는 데 대해 김진석 제주도 산업경제국장은 “민간업체의 앱 성능이 더 우수해 쓰는 것”이라고 말했다. 구체적인 성능 시험 결과 등은 밝히지 않았다.



 119 신고를 하면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을 통해 신고자가 어디 있는지 자동 확인하는 ‘119신고’ 앱은 소방방재청과 광주소방본부가 중복 개발했다. 비슷한 기능을 하는 앱을 만드는 데 소방방재청은 2100만원, 광주소방본부는 1000만원을 각각 들였다. 직원이 자체 개발해 비용은 들지 않았다지만 강원소방본부 역시 별도의 119신고 앱을 갖고 있다. 소방방재청은 내년에 이렇게 제각각인 앱을 하나로 통합하는 작업을 할 예정이다. 각기 개발하느라 세금을 이중으로 쓰고, 통합하느라 한 번 더 세금을 쓰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지난해 5월 선보인 부산시 기장군 ‘공공예약’ 앱은 1년7개월째 작동이 되지 않고 있다. 470만원을 들여 시민들이 공공 체육시설과 생활강좌를 스마트폰으로 예약할 수 있게 만든 앱이다. 그러나 기장군은 정작 시설을 담당하는 기장군도시관리공단과 예약 제휴를 맺지 않아 앱이 제 기능을 못하는 상태다.



 경북농업기술원의 ‘손맛솜씨’ 앱은 해상도가 떨어져 글자를 읽을 수 없을 정도다. 경북도의 맛집들을 소개했으나 주소를 알아볼 수 없다. 단체장 치적 자랑용 앱도 있다. 부산 해운대구는 배덕광(65) 구청장 홍보 앱과 스마트폰으로 보기 전용 웹사이트 제작에 2100만원을 썼다. ‘해운대CEO’라는 앱으로, 구청장 활동 사진 등을 보여주는 앱이다.



 국민이 거의 쓰지 않는 앱에 수천만원을 들인 경우도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김미희(47·통합진보당) 의원이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식품의약품안전처가 7600만원을 투자한 ‘식품이력추적관리’ 앱은 올 1월 나온 뒤 9개월간 703회 내려받기에 그쳤다. 역시 식약처가 2000만원을 써 지난해 5월 내놓은 ‘잔류농약 완전정복’ 앱은 1년5개월 동안 다운로드 수가 472회에 불과했다.



 순천향대 최준혁(42·미디어콘텐츠학과) 교수는 “단순히 스마트폰 열풍이 분다는 이유로 공공기관들이 활용도를 고려하지 않고 앞다퉈 앱 경쟁을 벌이면서 중복 개발과 쓸모없는 앱 등의 문제가 생긴 것”이라며 “국민에게 필요한 공공 앱이라면 범정부 차원에서 공공기관들의 개발 계획을 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윤호·차상은 기자



◆12월 19일자 2면 ‘78억 들인 통역앱 두고 다른 앱 사는 지자체’ 기사에서 일부 지자체가 한국전자통신연구원(ERTI)이 개발한 무료 통역 앱 ‘지니 톡’ 대신 돈을 주고 민간 업체 제품을 쓴다고 보도했습니다. 이와 관련, ETRI는 “지자체가 쓰는 앱은 기업이 ETRI 원천기술을 이전받아 지역 특색에 맞게 개발한 것”이라고 알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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