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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부·간호사 파독 50년 … 서울도서관서 희귀기록 전시회

중앙일보 2013.12.19 01:14 종합 13면 지면보기
독일로 파견된 한국 광부들은 실제 작업에 앞서 교육용 탄광 시설에서 실습을 했다(1966년). 아래 사진에선 파독 간호사 등으로 추정되는 광부 가족들이 ‘한국의 밤’ 행사에서 공연을 하고 있다(1976년). [사진 국가기록원·독일광산기록보존소]
18일 오후 서울 중구의 서울도서관(옛 서울시청 건물) 1층 전시실에선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인 3명이 영상물을 유심히 보고 있었다. 광부와 간호사의 독일 파견 50주년을 맞아 열린 ‘반세기 만에 다시 울려퍼진 독일 아리랑’이란 주제의 전시회에서다. 영상은 1963년 독일로 파견되는 광부들의 모습과 작업 장면, 박정희 대통령이 독일 광산으로 위문을 간 장면(64년) 등이었다.


한국 정부 "일본인과 같은 대우로 채용을"
파독 광부들 국내 직장인 보수 8배 받았다
간호사들 독일어 서툴러 초기엔 시신 닦는 허드렛일

 파독 광부 출신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심모(75·서울 강남구 삼성동)씨는 “나도 저기에 있었는데 박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를 보고 사람들이 다 울었다”고 말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김오식(71)씨와 이윤규(65)씨가 “파독 선배님이시네요”라고 인사를 건넸다. 세 사람은 옆에 놓인 독일 지도에서 자신이 근무했던 지역을 짚어가며 당시를 회상했다. 이씨는 “가장 힘든 막장일을 했는데 당시 월급이 한국 돈으로 20만원 가까이 됐다”며 “쉬는 날에도 주택 철거일을 하며 돈을 모아 한국으로 보냈다”고 말했다. 김씨는 “우리들이 보낸 돈으로 국가기반시설을 세웠다”며 “파독 광부와 간호사를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29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회엔 국가기록원이 지난 2년간 독일광산기록보존소와 독일병원협회 등에서 수집한 희귀자료 150점이 공개됐다. 처음 공개된 문서 중엔 63년 4월 독일 주재 한국대사관의 노무관이 독일 주요 탄광회사에 보낸 편지가 있다. 57년부터 일본인 광부를 채용했던 독일 탄광회사들이 더 이상 이들을 고용할 수 없게 된 사실을 알고, 일본인과 같은 조건으로 한국인 광부를 채용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이 편지에 독일 탄광회사 측이 “동등한 조건으로 고용하겠다”는 답변을 보내면서 광부들의 독일행이 결정됐다. 이에 따라 63년 12월 21일 서울 김포공항에서 광부 123명이 미국 앵커리지를 거쳐 독일 뒤셀도르프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파독 광부 1진이었다. 이후 77년까지 총 7936명의 광부들이 독일 탄광에서 일했다. 간호사들은 66년을 시작으로 76년까지 총 1만1057명이 파견됐다.



 함께 전시된 기록 중엔 우리 광부들이 근무 시 지켜야 할 수칙 안내문, 작업복 제공 및 세탁 안내문, 임금 지급 기록 등이 있다. 광부들이 받았던 월급은 650~950마르크(당시 원화가치 13만~19만원)로 국내 직장인 월급의 8배나 됐다. 국가기록원 특수기록관리과 이강수 연구관은 “독일 기록에 따르면 당시 독일 탄광회사는 광부의 임금을 1~11등급(높을 수록 많음)으로 나눴는데 우리 광부들은 3~5등급을 받았다”며 “당시 파독 광부의 인기가 높아 광부가 아닌 사람들의 지원이 많다 보니 독일 입장에선 우리 광부의 숙련도가 떨어지는 것으로 판단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초기엔 독일어가 서툴러 시체 닦기 등 허드렛일을 해야 했던 간호사들은 한 달에 약 800마르크(약 16만원)를 받았다. 국가기록원에 따르면 독일로 간 광부와 간호사들이 66~76년 한국으로 송금한 돈은 1억1530만 달러에 이른다. 이 돈이 한국 경제 발전의 밑거름이 됐다는 설명이다.



김원배·안효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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