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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라시아 차르 노리는 푸틴, 옛 소련권 EU행 봉쇄

중앙일보 2013.12.19 00:54 종합 23면 지면보기
러시아를 방문한 야누코비치 우크라이나 대통령(왼쪽)이 17일 조약 체결 도중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윙크하고 있다. 푸틴은 우크라이나가 친EU 정책을 포기하자 천연가스 공급가격 대폭 인하와 150억 달러어치의 우크라이나 국채 매입을 약속했다. [모스크바 로이터=뉴스1]


‘21세기 차르(황제)’라 불리는 블라디미르 푸틴(61) 러시아 대통령의 광폭행보가 가속페달을 밟고 있다. 푸틴은 올 들어 미국 국가안보국(NSA)의 전 세계 도청 스캔들을 폭로한 에드워드 스노든의 러시아 망명 수용과 시리아 화학무기 폐기, 이란 핵협상 합의에서의 핵심 역할 등 굵직굵직한 외교전에서 잇따라 승전보를 울렸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제치고 포브스가 선정한 올해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위에 오른 기세를 몰아 푸틴은 신유라시아 제국 건설에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유라시아경제연합(EEU) 목표 … 자본력 무기로 전방위 압박



스노든·시리아 등 외교전 승리에 자신감



 옛 소련권 국가들이 친서방화하는 것을 힘으로 막고 이들을 다시 러시아 영향권에 단단히 묶어 두겠다는 의지와 행동을 그 어느 때보다 강력히 보여주고 있다. 유럽연합(EU)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동방 확장을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서방 세계와의 일전을 불사하겠다는 러시아가 신냉전주의 시대를 여는 것이 아닌가 하는 관측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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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틴은 이들 국가를 위협하거나 때로는 인질로 삼아 러시아의 영향력을 극대화하려 했다. 실제로 그는 냉철하면서도 가차없이, 그러면서도 성공적으로 이 과업을 수행하고 있다고 독일 주간 슈피겔 최신호는 전했다. 푸틴의 러시아는 2010년 벨라루스·카자흐스탄과 결성한 관세동맹(단일경제공동체)을 바탕으로 옛 소련 국가들의 경제통합을 강력히 추진하고 있다. 2015년까지는 EU와 비슷한 성격의 유라시아경제연합(EEU)을 만드는 것이 푸틴 집권 3기의 지상목표다.



 EU와 러시아 사이에 끼어 있는 ‘경계국가’ 우크라이나는 푸틴의 유라시아 전략에서 가장 중요한 나라다. 우크라이나를 붙잡아 놓기 위한 러시아의 ‘당근과 채찍’이 그 어느 나라에 대해서보다 크고 매서울 수밖에 없다.



 우크라이나가 EU와의 자유무역협정(FTA) 성격을 띤 연합협정을 체결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가혹한 채찍을 내리쳤다. 지난 10월엔 러시아가 느닷없이 새 통관규칙을 적용하는 바람에 국경에는 우크라이나 화물차들이 하염없이 대기하는 장면이 연출됐다. 러시아 국영 가스프롬은 우크라이나 정부에 13억 달러의 부채를 갚으라고 몰아붙였다. 파이프·축산물·열차 등의 러시아 수출도 막았다.



 푸틴의 경제자문관 세르게이 글라스예프는 우크라이나에 최후통첩 성격의 압력을 전달했다. 그는 키예프를 방문해 우크라이나가 EU와의 연합협정에 서명하려면 최소 1300억 달러가 필요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럴 경우 우크라이나 화폐가치가 떨어져 외채를 못 갚는 상황이 되고 결국 국가부도 사태에 처할 것이라고 전했다고 한다.



 우크라이나는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선물 보따리가 이어졌다. 푸틴은 17일(현지시간) 빅토르 야누코비치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모스크바에서 정상회담을 한 뒤 천연가스 공급가를 1000㎥당 404달러에서 268달러로 대폭 인하하고 우크라이나 국채 150억 달러를 매입해 주기로 약속했다. “우크라이나의 관세동맹 가입 문제는 논의하지 않았다”고 밝혀 지원의 순수성을 강조했지만 EU와의 FTA를 포기한 대가가 분명했다.



당근·채찍 동원 우크라이나 등 이탈 저지



 크렘린은 우크라이나와 함께 EU 연합협정에 서명하려 했던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조지아·몰도바·벨라루스에 대해서도 전방위로 압박을 가했다. 아르메니아의 협정 서명은 9월 초까지만 해도 거의 기정사실화됐다. 하지만 세르지 사르키샨 대통령이 모스크바를 방문한 이후 아르메니아는 180도 돌아서 러시아가 주도하는 관세동맹에 들어가겠다고 밝혔다. 장차 EEU에도 참여하겠다고 밝혔다. 러시아는 아르메니아의 EU행에 제동을 걸기 위해 가스 공급가격을 올리고 적대국인 아제르바이잔에 무기를 판매하겠다고 위협했다고 전해진다. 아르메니아가 돌아서자 크렘린은 철도·원자력발전소 건설, 정보통신인프라 구축 등을 지원하기로 약속했다.



 몰도바에 대해선 지난 9월 갑작스럽게 주요 수출상품인 와인의 판로를 막았다. 러시아는 자국에 불법 체류하는 수십만 명의 몰도바인을 상대로 입국경위 등을 조사하겠다고 위협하기도 했다. 크렘린은 1992년 내전으로 몰도바에서 분리된 상태인 트란스드네스트르를 조종해 중앙정부를 견제하고 있다.



 캅카스 지역 조지아에서도 사정은 비슷하다. 크렘린은 2008년 조지아 내전에서 떨어져 나온 압하지야와 남오세티야를 친서방 성향의 조지아 정부를 압박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조지아산 와인·광천수 수입금지 조치는 2006년 이미 내려졌다. 친미 미하일 사카슈빌리 당시 대통령이 조지아에 주둔하는 러시아 군대의 철수를 밀어붙인 데 대한 보복 성격이었다. 몰도바와 조지아는 크렘린의 회유와 협박에도 불구하고 끝내 EU와의 연합협정에 가조인했다.



 옛 소련에 속해 있던 리투아니아는 이미 EU에 가입한 국가지만 여전히 러시아의 압력을 느끼고 있다. 크렘린은 지난달 리투아니아에서 EU 동부 파트너십 정상회담이 열리기 직전 이 나라의 유제품 수입을 금지했다.



 “세계정치의 심판관”을 자처하는 푸틴은 국제무대에서 성취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한때 같은 소련에 속해 있던 나라들에 대한 압박강도를 갈수록 높여갈 것으로 예상된다. 5000억 달러가 넘는 외환보유액과 국내총생산(GDP)의 14%에 불과한 국가부채, 균형예산 달성은 힘의 원천이다. 국제사회에서의 미국의 영향력 퇴조는 러시아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국제사회 미국 영향력 줄어 절호의 기회



 하지만 승승장구하는 푸틴에게도 불안요인이 없진 않다. 러시아의 재부흥을 이끌었던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 선을 유지하지 못할 경우 경제성장을 지속하기는 쉽지 않다. 실제로 올해 경제성장률은 1%대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친서방 논조를 가진 리아 노보스티 통신을 통폐합하고 북극군을 창설하는 등 국내외의 상대방을 의식하지 않는 듯한 푸틴의 독주도 언젠간 부담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 러시아 소치 겨울올림픽 개막식에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 요아힘 가우크 독일 대통령 등이 참석하지 않겠다고 보이콧을 선언한 것은 그 한 예다. 신유라시아 대제국 건설을 위해서는 EU와의 경쟁, 우크라이나 등 옛 소련권 국가 내부에서의 강력한 저항 등 뛰어넘어야 할 산이 여전히 많다.



한경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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