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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근영의 그림 속 얼굴] 신이 지금 나타난다면

중앙일보 2013.12.19 00:22 종합 32면 지면보기
제임스 앙소르, 1889년 브뤼셀에 입성하는 그리스도, 1888, 캔버스에 유채, 252×431㎝, 미국 로스앤젤레스 게티미술관 소장.


권근영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앞줄의 가면 쓴 사람들이 사뭇 그로테스크하다. 카니발의 행렬 같은 이들 뒤로 군악대가 행진한다. 누가 이 많은 군중을 모이게 했을까. 악대 뒤 후광 있는 남자일까. 당나귀를 탄 꾀죄죄한 이 남자는 군중 틈바구니에서 겉돌 뿐이다. 아니면 오른쪽 연단 위 정치인일까. 그러나 히스테리컬해 보이는 군중은 그 누구도 아닌 각자의 문제에만 골몰해 있는 듯하다. 종교도 이념도 구원이 될 수 없는 난장 속에서 함께 있되 혼자인 이들, 그래서 더 위협적인 군중이다.



 저 위의 붉은 현수막엔 이렇게 적혀 있다. ‘사회주의 만세’. 눈에는 잘 안 띄지만 이런 작은 슬로건도 있다. ‘브뤼셀의 왕, 그리스도 만세’. 벨기에 화가 제임스 앙소르(1860~1949)의 ‘1889년 브뤼셀에 입성하는 그리스도’다. 1888년에 그렸으니 부제는 ‘내년에 그리스도가 온다면’쯤이 되겠다.



 앙소르는 벨기에 오스텐드에서 태어났다. 외딴 어촌에서 해안 피서지로 발전한 곳이다. 갑자기 붐비게 된 마을에서 어머니는 카니발용 가면 따위를 파는 기념품점을 운영했다. 손님들은 껄렁한 가면을 쓰면 껄렁껄렁해졌고, 비열한 가면을 쓰면 비열해 보였다. 인간의 본성이란 층층의 서랍 속에서 꺼내듯 다면적인 것인가. 얼굴을 바꾸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거기 있었다. 앙소르의 그림에 가면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다.



 세기말의 불확실성, 계층 간 갈등, 당시에도 그랬다 한다. 과학의 성취로 삶의 질이 개선됐고, 생명이 연장됐다. 인구가 늘어 식량 부족, 도시의 과밀화가 문제로 떠올랐다. 브뤼셀에선 파업과 폭동이 줄을 이었고, 자유주의 정부가 교회와 힘겨루기를 하며 학교에서 종교 교육을 금지해 한바탕 소동을 빚기도 했다. 스물여덟 젊은 화가는 이 무렵 가로 4m가 넘는 화폭에 여백 없이 빽빽하게 얼굴이 들어찬 야심만만한 대작을 그렸다. 그러나 이 그림은 과격하다 하여 전시가 거부됐다. 40년 뒤인 1929년에야 공개됐다. 만년에야 겨우 빛을 본 가면의 화가, 그 자신도 지극히 고독한 개인이었던 셈이다.



 지금이라고 다를까. 준비 안 된 장수는 두렵고, 사람들은 아이를 낳지 않는다. 시대의 지표가 될 만한 어른은 없고, 정직과 인내, 배려와 양보 같은 가치는 빛을 잃었다. 지금 예수가 온다면, 종려나무 가지 흔들며 환영할 군중이 있을까. 신이 존재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있더라도 알아볼 수가 없어서, 혹은 신을 필요로 하지 않아서 비극적인 세태. 그래서 앙소르의 그림이 후에 더욱 각광받았던 모양이다. 성탄절이 다가온다. 



권근영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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