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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북의 민낯을 봤다 … 한반도의 냉혹한 현실, 이젠 무엇을 할 것인가

중앙일보 2013.12.18 00:35 종합 35면 지면보기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얼마 전 AP통신은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 서거와 조문외교 소식을 전하면서 흥미로운 비사를 함께 타전했다. 소련이 무너지던 1980년대의 일이다. 레오니트 브레즈네프(1906~82) 소련공산당 서기장의 뒤를 이은 유리 안드로포프(1914~84)가 불과 14개월 만에 숨졌다. 중앙정보국(CIA) 국장 출신의 조지 H. W. 부시 미국 부통령은 의사를 조문사절로 데려갔다. 이 의사는 신임 소련 지도자 콘스탄틴 체르넨코(1911~85)와 인사하는 도중 그의 가슴에서 나는 특이한 쌕쌕거림을 포착했다. 분석 결과 폐기종 환자에게서 나는 소리로 판단됐다. 전문의들은 그 나이에 이 병을 앓으면 1년 정도밖에 살 수 없을 것으로 봤다. 미국은 이에 대비했다. 차기 지도자 후보가 어떤 인물이고 무슨 성향인지를 면밀히 살폈다. 예상대로 체르넨코는 11개월 뒤 숨졌고 개혁 성향의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뒤를 이었다. 미국은 미리 파악하고 준비해 충분히 대응할 수 있었다.



 이처럼 상대편 최고지도자나 2인자 등 권력 핵심에 대한 정보를 신속·정확하게 입수하는 일은 국정 운영에서 지극히 중요하다. 이번 한국 정보기관의 ‘장성택 숙청 특종’으로 정부는 물론 우방까지 좀 더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번 활약을 보고 안심할 수 있게 됐다는 사람이 적지 않다. 국민 신뢰도 덩달아 회복되는 조짐이다.



 이를 계기로 드러난 북의 민낯, 한반도의 냉혹한 현실만큼 한국 정보기관이 앞으로 가야 할 길을 잘 웅변하는 건 없을 것이다. 정보 수집·분석 업무를 잘 수행할 수 있는 방향으로 조직·예산을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는 의견을 말하는 사람이 주변에서 늘고 있다. 정보 전문가인 고려대 북한학과 남성욱 교수는 “절대 불평하지 말고, 절대 분명히 드러내지 말고, 절대 변명하지 말라(Never complain, never explain, never apologize)”는 정보기관 철칙을 소개했다. 정보기관은 단지 정보로 말할 뿐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007 영화 속 정보기관원인 제임스 본드(영국 대외정보기관 MI6 소속)는 액션으로 공을 세운다. 하지만 실제 정보 업무는 숨소리까지 놓치지 않는 세심한 관찰과 수많은 토막 정보를 활용한, 피 말리는 퍼즐 맞추기의 연속이라고 한다. 영국 로열더비병원 응급의학과 연구팀은 최근 “007이 실제 인물이라면 과도한 음주 습관 때문에 56세로 세상을 떠났을 것”이라는 내용의 의학논문을 브리티시 메디컬 저널(BMJ)에 실었다. 하지만 정작 007 후예의 수명을 갉아먹는 건 술이 아니라 정보 수집과 확인·분석 과정에서의 엄청난 스트레스가 아닐까. 안보가 곧 생명인 한반도에선 더욱 그럴 것이다.



채인택 논설위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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