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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천의 시시각각] 기성세대는 과연 안녕한가

중앙일보 2013.12.18 00:34 종합 34면 지면보기
권석천
논설위원
솔직해지자. 중년인 우리가 두려워하는 건 아들 딸이 비정규직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가령, 마트에 갔다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OO야. 너 공부 안 하면 저렇게 돼.”



 중학생쯤 돼 보이는 아들과 카트를 밀던 40대의 눈길이 머문 곳은 시식코너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요리하는 젊은이였다. 고백하건대 나도 그런 생각을 품은 때가 있었다. 그는, 나는 얼마나 저열한가. 우린 아이들에게 경쟁과 위선의 체제에 순응하라고 가르쳐 왔다. 얼마 전 논술학원 설명회에서 강사는 이렇게 말했다.



 “의대 마치고 평생 봉사하며 살다가 제3세계에서 죽는다. 자기소개서에 이렇게 장래 희망을 쓰는 학생들이 많아요. 처음엔 참신했는데 더 이상 먹혀들지가….”



 미래를, 자신을 속이라고 해놓고 그들에게 진실함을 요구할 수 있을까. 그렇게 해서 이룩된 안온한 삶이 행복할지 나는 자신할 수 없다. 지난해였다. 우연한 기회에 수도권 대학에 갔다가 학생들이 유난히 순하고 착하다는 걸 깨달았다. ‘인(in) 서울’ 대학이 아니면 더 악착같아야 취업 전선에서 살아남을 텐데…. 친구는 내 얘기를 듣고 고개를 저었다.



 “그러니까 SKY(서울·고려·연세대)에 못 갔지. 예전에도 그랬겠지만 요즘은 나밖에 모르는 아이, 한 문제라도 틀리면 잠 못 자는 아이, 독한 아이가 공부도 잘하는 거야.”



 귀갓길 발걸음을 무겁게 만든 건 착잡함이었다. 그렇게 자기중심적인 아이들이 성장해 나라를 이끈다면 어떻게 될까. 공감과 소통은 더 어려워지지 않을까. 법조계 한 켠에서 자조처럼 떠도는 단어가 있다. ‘반장 콤플렉스’. 공부 잘한다는 이유로 뽑힌 반장들은 대개 같은 반 친구보다 교사들에게 인정받으려 한다. 그 반장들이 지금은 판사요, 검사다.



 많은 이가 ‘반장’이 되기 위해 담임교사인 검사장, 검찰총장, 법원장, 대법원장, 대통령을 바라본다. 어디 법조계뿐이랴. 정치권도, 재계도 다르지 않다. 옆과 아래는 외면하고 위만 쳐다보는 사람이 한 발 더 출세할 수 있다.



그 점에서 지난주 고려대에 붙은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의 물음은 신선했다. 대자보는 옆으로 눈을 돌리자고 말한다. 중요한 건 대자보를 쓴 학생이 노동당 당원이란 게 아니다. 그 대자보가 청년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내겐 “침묵하길, 무관심하길 강요 받은 것이 우리 세대 아니었나요?”라는 대목이 가슴에 다가왔다.



 물론 대자보 몇 십 장 붙는다고 세상이 달라지진 않는다. ‘나’가 아닌 ‘우리’의 현실에 죄책감을 갖는 건 사회의식으로 나아가는 초보적 단계일 뿐이다. 감정마저 사고 파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죄책감도, 분노도 소비재다. ‘아프니까 청춘이다’에서 ‘응답하라…’로, 다시 ‘안녕들 하십니까’로 갔다가 언제든 ‘아프니까…’로 되돌아갈 수 있다. 감성의 유통기한은 갈수록 짧아지고 있다.



 대학생들이 보다 본질적인 접근을 해주길 기대하는 건 그래서다. 국가기관 선거개입 의혹이 왜 문제인지, 철도 파업이 무슨 내용인지를 차분하고 깊게 생각해야 한다. 그래야 “꼭두각시는 자기를 조종하는 줄을 사랑하는 한 자유롭다”(미국 과학자 샘 해리스)는 힐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 지속적인 관심과 고민이 전제된다면 결론은 어느 쪽이든 좋다. 그것은 곧 생각하는 보수, 생각하는 진보의 출현을 뜻하기 때문이다. 한 대학 교수의 말이다.



 “리포트, 아니 e메일만 봐도 학생들 사고력과 표현력이 현저히 떨어지고 있어요. 한국 민주주의의 앞날이 불안할 정도예요. 이번 기회에 ‘읽고 생각하는 문화’가 자리 잡길….”



 섣불리 대자보에 이념딱지를 붙이려 해서도, 그 바람에 편승하려 해서도 안 된다. 팩트가 틀렸다고? 팩트는 토론 속에 바로잡힐 것이다. 어쩌면 문제는 기성세대다. 이젠 젊은 그들에게 “뒤처지면 죽는다”고 독려해 온 우리 자신을 향해 안부를 물을 차례 아닌가.



권석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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