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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한·중 간 마음의 거리는 얼마나 될까

중앙일보 2013.12.18 00:32 종합 32면 지면보기
[일러스트=강일구]


유상철
중국전문기자
서울에서 베이징까지의 항공거리는 940㎞다. 반면 중국의 정치수도 베이징에서 경제중심 상하이까지의 거리는 1088㎞. 한국에서 중국으로 가는 게 경우에 따라선 중국 내 이동보다 빠르다. 한·중 간 거리는 그만큼 가깝다. 그런 까닭에 ‘백령도에서 닭이 울면 중국 산둥(山東)성 룽청(榮成)시의 청산터우(成山頭)에까지 들린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실제 두 곳의 직선거리는 약 174㎞에 불과하다.



 서해는 한·중이 공유하는 내해(內海)와도 같다. 박근혜 대통령은 6월 방중 시 칭화(淸華)대학에서의 연설에서 “중국의 강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한국의 강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흘러 서해 바다에서 만나 하나가 된다”고 말했다. 중국이 서고동저(西高東低), 한국이 동고서저(東高西低)의 지형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북쪽으론 산과 물이 연결돼 있고(山水相連) 서쪽으론 바다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는(隔海相望) 게 중국과의 관계다. 펑위중(馮玉忠) 전 랴오닝(遼寧)대 총장은 한·중 관계는 역사와 문화·지리·감정 등 네 가지가 가깝다는 ‘사근(四近)론’을 펼치기도 했다.



 두 나라 국민의 마음은 얼마나 가까울까. 이명박정부 때엔 1992년 수교 이래 양국 관계가 가장 멀었다는 평을 들었다. 그렇다면 박근혜정부의 첫해인 올 한 해는 어땠을까.



 김지윤 아산정책연구원 여론연구센터장은 정기적으로 국가 호감도 조사를 실시한다. 결과가 흥미롭다. 박 대통령의 취임 전인 1월 초 우리 국민의 중국에 대한 호감도는 10점 만점에 4.45점을 기록했다(미국 5.70, 일본 3.31). 박 대통령 방중 이후 실시된 7월 초 조사에선 호감도가 4.92점으로 치솟았다. 연중 최고치였다. 이후로는 하락세다. 9월 4.66점에 이어 이달 초엔 4.37점으로 떨어졌다. 취임 전보다도 못한 셈이다.



 이 기간 서해에선 우리 해경과 불법 조업 중인 중국 어선이 충돌해 6명의 부상자가 발생했고 중국 윈난(雲南)성에선 탈북자 15명이 중국 공안에 체포됐다. 특히 지난달 말 중국이 이어도 상공을 포함시킨 방공식별구역을 선포하면서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의 내실화’를 부르짖던 양국 관계가 애매해졌다. 한반도를 뒤덮은 중국발 스모그는 우리 마음을 한층 어둡게 만들고 있다. 차이나 스모그는 소설가 복거일이 중국 위협론을 강조하며 쓴 『한반도에 드리운 중국의 그림자』를 떠올리게 한다.



 정재호 서울대 교수는 한·중 간의 일곱 가지 장애물을 다룬 책 『중국을 고민하다』에서 ‘한·중 관계에 꽂혀 있는 가장 거칠고 굵은 가시는 바로 북한’이라고 말했다. 북한 문제와 관련해 한·중 간의 거리는 얼마나 될까. 이달 초 상하이에선 중국 푸단(復旦)대학과 우리 상하이총영사관(총영사 구상찬)이 ‘북핵문제와 한중협력’이란 주제의 세미나를 공동 개최해 그 거리를 가늠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됐다. 결론적으로 말해 아직도 가야 할 길은 멀었다.



 우리 측에선 북한의 거듭되는 핵 도발에 대해 이제는 분명한 ‘레드 라인’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북한이 4차 핵실험을 하면 어떤 벌이 가해질 것인가를 국제사회가 합의를 통해 정해 놓고 이를 엄격하게 시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 학자들의 주장은 북한의 2차 핵실험 직후인 2009년 가을에 정해진 중국의 방침에서 달라진 게 없었다. 북핵과 북한 문제를 분리해 처리한다는 것이다. 북핵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 그런 문제를 발생시킨 북한 문제를 함께 봐야 한다는 게 중국의 논리다.



 한·미·일이 북핵 제거라는 점(點)적인 접근을 한다면, 중국은 북핵과 북한 문제 전체를 아우르는 포괄적 접근을 한다는 이야기다. 여기엔 북한이 개혁·개방을 해 경제건설에 나서고 이에 따라 국제사회에 편입하게 된다면 굳이 핵 개발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것이란 믿음이 깔려 있다. 이에 따라 중국은 과거 북한에 개혁·개방을 권유하던 수준에서 벗어나 이제는 북한과의 실질적인 경제협력을 대폭 늘려 북한이 개혁·개방을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정책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2000년 4억8000만 달러였던 북·중 교역액은 지난해 59억 달러로 급증했다. 장성택 처형 후에도 이런 추세는 계속 유지될 전망이다.



 중국 학자들의 발언은 대동소이하다. 이미 정해진 중국 정부의 방침을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논리적으로 뒷받침하는 수준이다. 간혹 국내 언론에 ‘북한을 포기해야 한다’ 등과 같이 중국 학자의 튀는 발언이 소개되곤 하지만 이는 결코 중국의 주류 목소리는 아니다. 한·중 간 마음의 거리는 아직 가깝지 않다. 김지윤 박사의 조사 중엔 우리 국민을 대상으로 ‘통일 후 누가 가장 큰 위협인가’를 묻는 항목이 있었다. 1위는 단연 ‘중국’이었다. 지난해 61%(2위 일본은 26%)에서 올해 47%(일본은 38%)로 떨어지긴 했지만. 중국 학자들은 놀라고 또 불편해하는 표정이었다.



 결국 한·중이 함께 가야 할 길은 여전히 멀다는 이야기다. 대통령의 방중 한 번으로 한·중 관계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 천 리 길을 가려는 자는 신발끈부터 조인다는 말이 있다. 한·중은 영원한 이웃으로 뗄 수 없는 관계다. 그렇다면 양국 모두 서두르지 말고 기초에 해당하는 신발끈부터 단단히 조여야 할 것이다. 신뢰는 말보다 행동을 통해 쌓인다는 점을 상기하면서.



유상철 중국전문기자

일러스트=강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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