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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국·평천하 하면 수신 된다고 다들 착각

중앙일보 2013.12.18 00:31 종합 31면 지면보기
김우창 교수는 “정치는 재미없는 세상의 재미있는 흥분제지만, 가까이 할 필요가 없어야 좋다”고 말했다. [사진 나남]
과장이 아니었다. ‘무변광대(無邊廣大)’라는 수식어는 그에게 맞춤 같은 말이었다. 한국을 대표하는 인문학자인 김우창(77) 고려대 명예교수의 책 『체념의 조형』(나남)의 출간을 기념해 17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예인홀에서 열린 집담회(集談會)는 문학과 역사, 정치·철학·예술을 아우르는 인문학자의 면모를 다시금 확인하는 자리였다.


희수 맞아 『체념의 조형』 낸
인문학자 김우창 고려대 교수

전남 함평 출신으로 서울대에서 영문학을, 미 하버드대에서 문학·철학·경제사를 공부한 그는 이분법적 진영논리를 넘어선 문학비평과 사회평론을 해 왔다. 희수(喜壽)를 맞아 출간된 책은 그의 50여 년의 문학여정 중 정수만을 모은 문학선이다. 그는 원고지 320장 분량의 서문만 추가했다.



 책의 제목은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 ‘나무는 스스로에 금을 긋지 않으니, 그대의 체념의 조형(造形)에서 비로소 사실에 있는 나무가 되리니’에서 가져온 것이다.



 그는 “사물을 제대로 인지하고 인식하려면 주관적인 것을 체념하고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해야 한다. 주관을 체념하고 조형해야만 제대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문학에서 나타나는 주관의 과잉을 안타까워 했다. “요즘의 문학은 어떻게 하면 눈에 띄는 것, 기발한 것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듯 하다. 문학에서 이데올로기를 말하는 것을 싫어했는데 차라리 이데올로기적인 문학이 나은 것 같다.”



 문학의 역할과 관련해서는 “문학은 이념을 넘어 개인적 체험을 말하는 데서 시작해 공통의 가치를 재건하는 것이다. 문학은 고통과 행복 등 개인적 체험을 이야기하기 때문에 그것을 점검하며 정치가 제대로 돌아가는지도 말할 수 있다”고 말했다.



 거대 담론만이 난무하는 세태도 지적했다. “변화의 시대에 정치에 너무 많은 관심을 가지면 끌려가기 쉬워요. 우리는 정치로 인생을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치국(治國)과 평천하(平天下)하면 수신(修身)도 된다고 착각해 다들 굉장한 것부터 이야기하죠. 모두 대통령감이에요. 문학도, 수신까지는 아니라도 사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말하면서 평천하까지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하는데….”



 정치학과로 진학했다가 전공을 바꾼 그는 정치 지도자가 간과하기 쉬운 집단과 개인의 문제에 대해 예리하면서도 묵직한 대답을 내놨다. “정치를 움직이는 것은 집단적 관점의 생각이에요. 개인을 생각하면 정치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죠. 그러니 개인을 배제한 생각을 일단 수용해야 합니다. 하지만 집단적 사고방식을 당연하게 여겨서는 안돼요. 배제된 개인을 생각하는 ‘비극적 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전쟁에 참전해 희생자가 상대적으로 적었다고 잔치를 열 수는 없다는 것. 희생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는 절대적인 죽음인 만큼 그 비극적 요소를 염두에 둬야 한다는 설명이다.



 개인의 양심과 직업적 제약이 충돌하는 경우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특히 법정신을 넘어서 법관 개인의 양심에 기초한 판결을 하거나 교단을 정치의 장으로 만드는 경우에 대해서는 비판적 시각을 드러내며 “개인의 양심은 보편성과 개인적 편견 양쪽에 맞닿아 있는 만큼 자기 비판적인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현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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