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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기도·위로·러브레터 … 폭력의 시대 견디는 힘

중앙일보 2013.12.18 00:30 종합 30면 지면보기
이해인 수녀가 색연필로 곱게 사인한 책을 들어보이고 있다. 그가 요즘 가장 좋아하는 별칭은 모든 고민을 들어줄 수 있는 ‘국민이모’ 수녀님이다. [사진 문학사상]


“단 한 번도 제가 훌륭한 시인이라 여긴 적이 없어요. 그런데도 오랫동안 시를 쓰면서 이렇게 사랑받았잖아요. 몸과 마음이 아파도 더 희생하며 ‘위로 천사’ ‘기쁨 천사’가 되어야 겠다고 느껴요.”

시 전집 낸 이해인 수녀
"조금 더 참아줘, 살게 해줘"
항암치료 중 암세포와 대화



 수도자이면서 시인의 길을 걸어온 이해인(68) 수녀는 40년 문학인생을 한마디로 정리하며 맑게 웃어보였다. 17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이해인 시전집 1, 2』(문학사상) 출간 기자간담회서다. 시전집엔 지금껏 발표한 1000여 편의 시 중 800여 편을 묶었다. 그는 “바다 해(海)와 어질 인(仁)을 붙여 해인이란 필명으로 첫 투고를 했는데 지금은 본명 이명숙보다 더 많이 알려졌다”며 “사실 해인스님으로 착각하는 분도 있는데 불교적이면서 부드러운 이름인 것 같다”고 말했다.



 수녀는 1970년 가톨릭 잡지 ‘소년’에 동시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민들레의 영토』(1976) 등 9권의 시집과 기도시집·동시집·시선집·산문집 등을 펴냈다. 그의 책은 누적 판매부수 500만 권을 넘기며 국민적 사랑을 받았다. 특히 70~80년대엔 인기가 대단했다.



 “얼마나 기도했는지 몰라요. 책 좀 안 팔리게 해달라고. 더 좋은 시인도 많은데…. 거기에서 파생된 유명세도 있었고요. 이러다 수도생활을 망치면 어쩌나 걱정도 했어요. 베스트셀러가 어느 날 스테디셀러로 넘어가면서 마음에 평화가 왔지요.”(웃음)



 시작(詩作)의 원동력을 묻는 질문엔 “모태신앙이 낳아준 순결한 동심”이라고 답했다. 그는 아무리 바빠도 하루 한 페이지는 단상을 메모하며 문장 연습을 한다. 지난 5년간 대장암 투병을 하면서 더 많은 시상이 떠올랐다. “아픔을 직접 체험하니까 동시대인들의 아픔을 대신 아파하며 시를 써야겠다는 배려의 갈망이 생겼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자신이 수도자이면서 시를 쓰고, 단순하면서 공감 가는 시를 쓰기 때문에 사랑받는 것 같다고 했다.



 “인터넷에 들어가면 제가 쓰지 않은 시 앞에 제 이름이 붙어 있어요. 한 40여 편 되는 것 같아요.(웃음) 얼마나 시를 좋아하면 그럴까 다 용서하게 돼요.”



 수녀는 아직 완치 판정을 받지 못했다. 그동안 항암치료와 수십 차례의 방사선 치료를 받았고 몇 달 전엔 결장에 혹도 발견했다. 그는 “아프더라도 명랑하게 아프겠다”며 “암세포와 대화하면서 ‘조금 더 참아줘, 살게 해줘’ 기도를 한다”고 했다.



 최근엔 50년 지기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는 것을 보고 앞날을 대비해 유언장을 썼다. 인세가 들어오던 통장명도 수도원 재단법인으로 돌렸다. “수도자는 철저히 무소유의 삶이니까. 이제 마음이 더 홀가분해졌다”고 했다. 그러니까 수녀에겐 진정 구도와 시의 길만이 남았다.



 “장성택 전 북한 국방위 부위원장이 총살당했다는 뉴스를 보고 잠을 이루지 못했어요. 아버지가 어린 시절 북한으로 납치된 것도 떠오르고. 시베리아 같은 추위가 와서 못 잤어요. 이렇게 폭력이 난무하는 시대에 우리는 시를 읽어야 하지 않을까요. 시는 기도이고 위로이며 러브레터이니까요.”



김효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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