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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없지만, 큰 꿈 있지요 … 세진이의 설레는 AG

중앙일보 2013.12.18 00:28 종합 28면 지면보기
지난 9월 뉴욕 허드슨강에서 펼쳐진 ‘리틀 레드라잇 하우스’ 수영대회에 참가한 김세진이 어머니 양정숙씨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시스]
수영선수 김세진(17·성균관대)은 19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어바인으로 전지훈련을 떠난다. 선천성무형성장애를 가지고 태어나 두 다리와 세 손가락이 없는 그는 티타늄 의족을 착용하고 있다. 장애를 극복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공부도 운동도 최고가 되고 싶어 한다. 힘들 지만 세진이는 늘 씩씩하다. “아시안게임에 나가려면 열심히 해야죠.”


내년 인천장애인대회 준비하는 17세
어머니, 전세금 빼 전지훈련 비용 대
세계장애인수영선수권서 3관왕
"놀고 싶지만 목표 있으니 참아요"

 의족 교정을 위해 17일 서울 신촌동 세브란스병원을 찾은 세진이를 만났다. 그의 키는 의족을 착용하면 1m81㎝인데 1m90㎝까지 자랄 것으로 병원이 예측했다고 한다. “2개월 동안 아주 힘들겠지만 많이 설레요”라는 세진이의 꿈은 키보다 더 크게 자라나고 있다.



 세진이는 열두 살이었던 2009년 영국 런던에서 열린 세계장애인수영선수권대회(19세 미만)에서 50m 접영과 150m 자유형, 200m 혼영에서 3관왕을 차지했다. 내년엔 인천 장애인 아시안게임에서 성인 선수들과 경쟁하기 위해 전지훈련을 떠나는 것이다. “국가대표 선수가 되려면 기준기록을 통과해야 되거든요. 동계 훈련이 굉장히 중요해요.”



 다섯 살 때 수영을 시작한 세진이는 대부분의 시간을 코치 없이 어머니 양정숙(45)씨와 둘이서 훈련했다. 수영은 세진이가 세상과 소통하는 몸짓이다. 세진이는 수영을 시작하면서 불편한 자신의 몸을 사랑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성실하고 영리한 세진이는 공부도 잘한다. 7개월 만에 검정고시로 중학교와 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올해 성균관대 스포츠과학부에 최연소 기록으로 합격했다. 그러나 학교에는 세진이가 훈련할 수 있는 수영장이나 훈련시설이 없다. 장애인이 수영하는 걸 많은 사람이 불편하게 보기 때문이다. 하루 2시간씩 집 근처 수영장에서 훈련하는 게 전부였다. 고민 끝에 양씨는 미국 국가대표 수영팀 코치에게 e메일을 띄웠고, 자신의 클럽에서 함께 훈련해도 좋다는 답신을 받았다. 양씨는 “대원학원(이사장 이영구)에서 항공권을 지원해주셨다. 나머지 훈련 비용은 전세금을 빼서 마련했다. 아들이 하고 싶은 일이라면 어떻게든 해주고 싶은 게 엄마의 마음”이라고 말했다. 1988년 보호시설에 있던 세진이를 입양한 양씨는 24시간 아들 곁을 떠나지 않는다.



 세진이에겐 친구도 많이 생겼다. 고혜림 작가가 2009년 ‘로봇다리 세진이’라는 제목의 책을 썼고, 작가의 딸 진은서(17·대원외고)도 든든한 응원군이 됐다. 세진이가 국제대회에 참가할 때마다 영어 통역을 맡고 있는 은서는 “처음엔 세진이 몸이 불편해서 내가 먼저 배려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의젓한 세진이는 남자답게 날 위해 문도 먼저 열어준다. 이젠 세진이 몸이 불편하다는 느낌을 전혀 받지 않는다”고 말했다.



 은서는 올해 초 대원외고 입학식에서 친구를 다시 만났다. 대원학원의 초청으로 강단에 선 세진이가 마이크를 잡고 또래들에게 말했다. “세상에 뭔가를 기대하는 사람이 아닌, 세상이 기대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몇 분 되지 않는 짧은 말에 감동 받은 수백 명 학생들은 눈물을 펑펑 흘렸다. 올겨울 은서는 다른 세 친구들과 함께 『로봇다리 세진이』를 영어로 번역해 출간할 예정이다. 세진이의 이야기를 더 많은 사람에게 전하고 싶어서다.



 세진이의 더 큰 목표는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 출전해 비장애인들과 기량을 겨루는 것이다. 그의 주종목은 실내 400m이지만 9월 미국 뉴욕 허드슨강에서 열린 ‘리틀 레드 라잇 하우스’ 대회에서 일반인들과 경쟁한 적이 있다. 10㎞ 코스를 1시간50분27초의 기록으로 역영, 참가 선수 280명 중 21위를 차지했다. 18세 이하 선수 중 1위였다.



 인터뷰가 끝나고 세진이는 기말고사 준비를 하러 갔다. 늘 시간이 모자라 하루 4~5시간밖에 자지 못한다. 훗날 스포츠마케팅이나 심리학 교수가 되고 싶단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도 꿈꾸는 세진이는 씩씩하게 말했다.



 “공부와 운동을 다 하는 게 힘들지 않으냐고들 물어보세요. 물론 저도 놀고 싶을 때가 있지만 꿈이 있으니까 참아요. 저를 보면서 누군가 힘을 얻을 수도 있잖아요.”



김식·김효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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