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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요염한 수, 성공하다

중앙일보 2013.12.18 00:11 경제 11면 지면보기
<본선 16강전> ○·구리 9단 ●·안성준 5단



제6보(68~77)=전보 흑▲라는 기상천외의 한 수를 두고 프로들의 반응이 엇갈립니다. 젊은 기사들은 “까시다”고 했는데 아마도 ‘가시’에서 파생된 말 같습니다. 조금 나이 든 기사들은 “섹시하다”고 하는군요. 고차원의 수는 아니지만 재미있고 볼 만하다는 뜻 같습니다.



 이미 밝힌 것처럼 흑▲는 축머리를 노린 수입니다. ‘참고도1’ 백1로 응수하면 곧장 흑2로 끊어버리겠다는 뜻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수(手)에도 미추가 있는데요, 고수들은 노골적인 수를 그리 아름답게 여지지 않습니다. 뭔가 은은하고 안개에 가린 듯한 수를 높이 쳐줍니다. 그러므로 흑▲는 요염한 정도의 수라는 겁니다.



 한데 이 수에 구리 9단이 맞장구를 치고 있습니다. 68부터의 응수가 그건데요, 축이 안 되도록 신경쓰면서 응수를 하자니 힘만 잔뜩 들고 피곤합니다. 시간도 무척 까먹고 있습니다. 그러고도 77을 당하니 괴롭네요. 흑▲라는 요염한 수가 예상보다 근사한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백은 어떻게 두어야 했을까요. “상대를 안 해주는 게 최선이었다”고 박영훈 9단은 말하는군요. ‘참고도2’에서 보듯 백1, 3으로 파고들어 아예 딴살림을 차리는 게 좋았다는 것이지요. 흑▲는 가만 놔둬도 크게 당할 일은 없다는 겁니다. 바둑이란 이런 대목이 어려운 거죠. 사고의 관성이랄까, 구리 9단 같은 고수도 응수를 해야 한다는 강박에 빠져 바둑을 그르치고 말았습니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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