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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구정 구현대아파트 고양이 사건의 진실은

중앙일보 2013.12.18 00:05 강남통신 4면 지면보기
11일 압구정동 구현대아파트 74동 지하실 파이프 사이에 길고양이가 몸을 숨기고 있다. 고양이가 다니는 지하실 문 개폐를 놓고 주민과 동물보호단체 간 갈등이 심하다.


이달 초 트위터에 올라온 사진 한 장 때문에 조용했던 압구정동 구현대아파트 74동이 또 다시 시끌시끌하다. 문제의 사진은 이 동 지하에서 발견했다는 고양이 사체를 찍은 거다. 올봄 찍은 이 사진이 다시 논란이 된 건 일부 트위터리안이 사진과 함께 “반년 전 같은 곳에서 길냥이(※길고양이) 집단 학살이 있었고 지금 현재 감금된 길냥이들이 있다”거나 “길냥이들이 추위를 피해 아파트 지하실로 들어가니까 문을 모조리 잠가 고양이들이 못 나오게 만들었다”는 다소 선정적인 주장을 올리면서다. 소프라노 조수미씨 등 유명인들이 이를 리트윗하며 한동안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달궜다. 동물애호가 수십 명은 현대아파트에 모여 지난 7일엔 ‘학살을 멈춰라(Stop the Slaughter)’ ‘동물학대를 멈춰라(Stop Animal Abuse)’ 등의 피켓을 들고 침묵시위를 벌였고, 촛불시위까지 했다.

1년 전부터 주민·보호단체 갈등
캣맘, 겨울 앞두고 SNS상 여론몰이
"길고양이 추위 피할 공간 마련해줘야"
주민 "무턱대고 사료 줘 개체수 늘어나 불편"



진실은 뭘까. 74동 주민들은 정말 이들 주장대로 끔찍한 ‘학살’이라도 저지른 걸까. 또 한 가지 궁금한 건 다른 아파트 단지, 아니 같은 단지 내의 다른 동에서조차 아무 문제가 없는데 왜 유독 74동만 시끄러울까.



길고양이를 둘러싼 소란은 지난 겨울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양이들이 추위를 피해 아파트 지하실에 들어간 사이 출입문을 잠가 버려 고양이들을 일부러 굶겨 죽였다는 게 캣맘(※길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는 보호 활동가)들 주장이다. 4월 말 악취를 호소하는 주민 민원을 받고 관리사무소 측이 청소 도우미 30여 명을 동원해 이 아파트 지하실을 대대적으로 청소하기도 했다. 그 다음 달 몇몇 캣맘이 자발적으로 또 청소를 했는데 이때 고양이 사체 네마리를 발견했다. 캣맘들은 “관리사무소 측이 제대로 밝히지 않고 있지만 4월에 청소할 때 고양이 사체가 더 많이 나왔을 것”이라며 “고양이가 안에 있다는 걸 알면서도 고의로 문을 닫은 게 문제”라고 주장했다.



관리사무소 측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지하실엔 각종 배관이 있기 때문에 겨울이면 동파를 우려해 문을 닫는다”며 “74동뿐 아니라 모든 동이 다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3년째 74동 경비를 맡고 있는 이모(63)씨도 “고양이는 병에 걸리거나 나이가 들면 사람 손이 닿지 않는 구석을 찾아 죽는다”며 “지하실에선 경비·청소원이 옷을 갈아입거나 간단히 세면을 하기 때문에 겨울이나 특별한 주민 요청이 아니면 출입문을 막아 놓지 않는다”고 말했다.



1 길고양이가 지나다니는 지하실 문.
2 지하실 문에 뚫려있던 고양이 통로를 폐쇄한다는 아파트 입주자대표회 공고문.
동물사랑실천협회 박소연 활동가는 “사실 현대아파트는 우리 얘기를 잘 들어주는 편”이라며 “다른 곳에선 캣맘을 아예 범죄자 취급을 하거나 모멸감을 주는 경우도 흔하다”고 말했다. 그런데 왜 유독 현대아파트, 그중에서도 74동이 문제가 된 걸까. 일부에선 “압구정동 현대아파트라는 장소가 세인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좋아 캣맘들이 전략적으로 장소를 고른 것”이라는 주장도 한다. 하지만 그보다는 일부 주민의 강경한 대응과 일부 캣맘의 무책임한 고양이 사랑 등이 얽혀 문제를 키운 측면이 있다. 이 동의 한 주민은 “지난 여름께 지하실 청소를 하러 온 캣맘들에게 몇몇 주민이 욕설을 하는 등 한바탕 난리가 났다”고 말했다. 지난 겨울 캣맘을 자처하는 외지인이 찾아와 지하실 안 고양이들에게 사료를 주거나 올 6월 74동 뒤 잔디밭에 고양이집을 세우면서 일부 주민과 갈등이 커졌다는 얘기다. 이로 인해 고양이가 몰려 74동에만 길고양이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캣맘들은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들이 고양이 쉴 자리 하나 내놓지 못하느냐”는 입장이지만 사실 무분별하게 길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는 건 문제가 있다. 만약 먹이를 주더라도 중성화수술이 전제되지 않으면 서식지 환경을 아예 바꿔버리는 심각한 사태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강남구 내 길고양이의 중성화수술을 담당하는 김상윤 강남25시동물병원장은 “강남구는 7년 전부터 중성화수술사업을 해왔는데 압구정 현대아파트에서 활동하는 일부 캣맘이 인식 부족으로 중성화수술을 위한 고양이 포획을 반대해 이곳에서만 제대로 하지 못했다”며 “개체 수가 늘어난 게 지금 같은 문제로 번진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현대아파트는 지난 6월에야 중성화수술을 시작했다. 김 원장은 또 “고양이는 영역동물이기 때문에 개체 수를 일정하게 유지한다”며 “그런데 사람이 먹이를 주기 시작하면 고양이가 몰려들어 다섯마리가 살던 영역에 수십 마리가 생겨난다”고 말했다. 또 한 영역 안의 고양이 다섯마리에게 꾸준히 먹이를 주면 번식해 2년 내에 200마리까지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원장은 74동엔 최소 30마리 이상의 길고양이가 살고 있다고 추정했다.



길고양이를 둘러싼 74동 주민과 캣맘의 갈등은 인터넷과 SNS가 키운 측면도 있다. 현대아파트 주민이자 캣맘인 박영주(53)씨는 “(74동 주민 입장에선)고양이 서식으로 인한 악취 등 필요에 의해 지하실 문을 닫았을 뿐인데 외지 사람들이 인터넷상에 이들을 동물학대범으로 몰았으니 감정이 좋을 리 없다”고 말했다.



정제택 입주자대표회장은 “주민과 길고양이가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방안을 구청과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김청호 강남구 지역경제과장은 “법적으로 길고양이는 휴식, 치료, 물·사료를 주도록 노력해야 하는 ‘구조·보호조치’ 대상에서는 제외된다”며 “다만 동물보호법에 의한 법적 보호 동물인 만큼 동물 학대가 확인되거나 의심될 경우 행정조치를 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글=조한대 기자

사진=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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