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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추적] '팻 핑거'의 저주 … 462억 허공에

중앙일보 2013.12.18 00:04 경제 4면 지면보기
팻 핑거(Fat finger)’. 주식·채권 중개인들에겐 공포의 단어다. 뚱뚱한 손가락 탓에 자판을 잘못 눌러 생긴 오타(誤打)를 말하지만, 주문 실수란 뜻의 은어로 더 널리 쓰인다. 한맥투자증권을 파산으로 몰고 간 이번 사건도 주문 오류가 불러온 재앙이었다.


침몰 위기 한맥증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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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면 한맥증권 직원의 ‘팻 핑거’ 덕분에 400억원대 ‘횡재’를 한 거래 상대방들은 이 돈을 돌려줘야 할까. 침몰 위기에 몰린 한맥증권이 회생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는 단초가 마련됐다. 한맥증권과 당일 거래했던 국내 증권사 7곳이 해당 거래를 무효화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한맥증권 고위 관계자는 17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현대·미래에셋·유진·한화·NH농협·아이엠·토러스증권 측과 당사 주문 실수로 취한 이익 전액을 원상 복구하기로 합의했다”고 말했다. 한맥증권의 주문이 명백한 ‘착오에 의한 의사표시’였던 만큼 수익을 돌려주기로 한 것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12일 한맥증권은 총 584억원 규모의 거래를 체결했다. 이 중 주문 실수로 인해 체결된 거래 규모는 462억원이다. 정상 거래로 발생한 대금 122억원은 한맥투자증권이 납입한 상태다. 주문 사고로 인한 결제대금 중 13억원도 납입했다. 한맥증권 측은 “거래 당일 일부 증권사로부터 주문 실수로 인한 이익금을 돌려받아 납입했다”고 말했다. 미납금 449억원은 거래소가 일단 결제적립금을 활용해 거래 상대방에게 지급을 완료했다. 자기자본 268억원인 한맥증권이 449억원을 거래소에 돌려주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한맥증권 관계자는 “회사가 파산을 면하려면 유일한 길이 거래 상대방으로부터 이익금을 돌려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문제는 이번 합의가 증권사가 자기자본으로 매매한 거래에 한해 효력이 있다는 점이다. 증권사 창구를 통해 거래가 이뤄졌더라도 주문을 낸 고객이 따로 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이번 합의를 통해 보전받을 수 있는 금액은 8억원 수준이다. 한맥증권 측은 “손실금액 중 400억원 이상의 거래 상대는 외국인 기관투자가 3곳으로 파악됐다”며 “이들과도 여러 경로를 통해 접촉을 시도 중”이라고 말했다.



 금융계 일각에서는 과거 선례를 볼 때 소송을 통해 이익금을 돌려받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한다. 2010년 미래에셋증권은 달러 선물시장에서 매수가격을 100배 비싸게 입력한 주문 사고를 냈다. 당시 거래 당사자였던 증권사 2곳은 미래에셋에 피해금액을 돌려줬다. 그러지 않은 동양증권에 대해선 미래에셋이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1·2심 재판에서 미래에셋의 손을 들어줬다. 물론 재판에서 한맥증권 측에 중대한 실수가 있었거나, 외국인 투자자가 착오에 의한 주문임을 인지하지 못했을 경우엔 승소하지 못할 수도 있다.



 월가에서도 오래전부터 팻 핑거로 골머리를 앓았다. 2010년 5월 6일 미국 뉴욕 증시를 강타한 일명 ‘플래시 크래시’ 사건이 대표적이다. 한 투자은행 직원이 주식을 팔겠다고 주문을 하면서 거래 단위로 ‘m(million·100만)’ 대신 ‘b(billion·10억)’ 버튼을 누른 게 발단이었다. 주식시장에서 여러 자동매매 프로그램이 연쇄반응을 일으켰고 불과 15분 새 다우지수는 998.5포인트(9.2%) 주저앉았다.



 금융파생상품 시장이 커지고 극초단타매매(HFT) 거래 비중이 늘어나면서 ‘팻 핑거의 저주’는 더 빈번해졌다. 나이트캐피털은 지난해 8월 주문 오류 사고로 입은 손실 때문에 다른 회사로 넘어가는 신세가 됐다. 올 8월 미국의 골드먼삭스, 9월 중국의 광다(光大)증권도 비슷한 사고를 쳤다.



정선언·조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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