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살아 있는 사진의 전설' 애니 레보비츠 인터뷰

중앙일보 2013.12.17 00:34 종합 24면 지면보기

#1. 1980년 12월 8일, 존 레넌은 자기 집 침대에서 옷을 모두 벗은 채 오노 요코 옆에 누워 몸을 동그랗게 말았다. 부인 요코는 온몸을 검은 옷으로 감싸고 있었다. 사진을 찍고 네 시간 뒤, 레넌은 집 앞에서 총격 사건으로 세상을 떠났다. 존 레넌 사후 ‘롤링 스톤’ 표지에 실린 이 사진은 ‘20세기의 피에타’가 됐다.


카메라 들면 겁날 게 없다 사람에서 역사를 보니까 …

#2. 91년 만삭의 데미 무어는 옷을 벗은 채 카메라 앞에 섰다. ‘베니티 페어’의 이 표지 사진은 유명인 만삭 사진의 시초가 됐다. 여성의 몸과 모성에 대한 논쟁도 일으켰다. 이 두 이미지는 지난 40년간 가장 유명한 커버 사진 1, 2위(2005년 미국 잡지편집인협회)에 각각 선정됐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포즈를 취한 서른한 살의 브래드 피트. 1994년 잡지 ‘베니티 페어’에 실렸다. 젊음의 아이콘처럼 통용되는 사진이다. [사진 애니 레보비츠]


이미지는 힘이 세다. 이 모든 이미지는 한 여성사진가의 손에서 나왔다. 애니 레보비츠(64)다. 미 의회도서관은 2009년 그를 ‘살아있는 전설’로 꼽았다. ‘애니 레보비츠: 사진가의 일생 1990∼2005’가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서 열리고 있다. 리어나도 디캐프리오·브래드 피트 등 할리우드 스타는 물론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 등 많은 이들이 그의 카메라 앞에 섰다. 전시를 여는 그를 전화로 만났다.



 13일 오전(현지시각) 뉴욕의 스튜디오에서 전화를 받은 그는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주중엔 LA로 당일치기 출장을 다녀왔고, 오늘은 종일 편집 작업을 해야 한다. 책 표지 사진, 할리우드 스타를 담은 잡지 커버 등등이다”라고 말했다. 현장을 장악하는 사진가다운 또박또박한 말투였다. “주말엔 세 딸(12살, 8살 쌍둥이)의 엄마로서 또 다른 일이 시작된다. 그리고 일요일 밤엔 런던으로 날아가 팀 버튼 감독과 작업해야 한다”며 근황을 전했다.



 이번 전시는 그의 아시아 첫 개인전이다. “전시기간 중 방한할 수 있다면, 그곳의 사람들을 찍고 싶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 그에 대해 많이 들었다. 매우 남다른(extraordinary) 경험을 가진 사람 아닌가”라고 말했다.



애니 레보비츠
 -인물 사진에서 중시하는 것은.



 “내가 찍는 이들을 존경한다. 그건 명예나 명성의 문제가 아니다. 그들이 누구이며,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대상을 제대로 이해하려 노력한다. 그런 면에서 나는 사람들을 근접 촬영하기보다 그의 주변을 함께 담는 편이다. 그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데 그 점이 주효하다.”



 이 밖에 전시에선 90년대 초 사라예보 포위전, 9·11 테러 현장, 그리고 아버지나 ‘연인’ 수잔 손택 등 가까운 이들의 죽음을 담은 작품 등 196점이 나온다.



 -당신에게도 두려움이 있나.



 “인생은 두려움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사진을 찍을 땐 거기 집중하느라 두려움을 잊게 된다. 카메라가 보호막 역할을 해 준다. 나이가 드니 때론 긴장해도 된다는 걸 알게 됐다. 실패해도 괜찮다는 것도 배우게 됐다. 사진을 찍으면 몇 장은 건질 수 있지만 대부분은 별로일 수도 있다는 점 또한 깨닫게 됐다.”



 6남매 중 셋째로 자란 그는 공군인 아버지의 임지를 따라 이곳저곳으로 떠돌았던 어린 시절에 대해 “차에서 자랐다”고 돌아봤다. “차에서 자라면 예술가가 되기 쉽다. 차창이 일종의 프레임이 되는 거다. 그게 세상을 보는 방식이다.”(다큐멘터리, 애니 레보비츠: 렌즈를 통해 들여다 본 삶, 2009)



데미 무어의 만삭 사진을 표지에 실은 ‘베니티 페어’ 1991년 8월호.
 -50년 가까이 사진가로 살아왔다.



 “사진은 내 인생에 가족 다음으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온 대상이다. 사진은 내게 역사이고, 거울이고, 반영이었다. 무엇보다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줬다. 휴대전화로 누구나 찍을 수 있는 세상, 사진은 이제 하나의 언어다. 그러나 점점 더 흥미롭고 힘있는 언어가 될 거다. 모든 것들이 이토록 빨리 변하며, 영상물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멈춰 있는 이미지를 보여준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당신이 찍은 이들 중 몇몇은 이미 저 세상으로 갔다. 당신도 언젠가는 사라지겠지만, 사진은 남을 거다. 어떤 사진가로 남고 싶은가.



 “역사적 센스가 있는 사진을 찍은 이로 기억되고 싶다. 당대를 살아갔던 사람들, 그들의 내면을 관찰함으로써 보는 이들 또한 스스로에게 내가 누구이며 이 사회가 어떤 곳이었는지 자문하게 하는 사진 말이다.”



권근영 기자



◆애니 레보비츠(Annie Leibovitz)=1949년 미국 코네티컷주 워터베리 태생. 미공군 장교였던 아버지를 따라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군사기지에서 보냈다. 샌프란시스코 아트 인스티튜트에서 사진을 공부했다. 1970년 잡지사 ‘롤링 스톤(Rolling Stone)’을 시작으로 ‘베니티 페어(VanityFair)’ ‘보그(Vogue)’ 등에서 일했다. 2006년 프랑스 문화예술공로훈장 기사장, 2012년 로스앤젤레스 현대미술관상 등 수상.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