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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날리고 구르고 6시간 … 골키퍼가 다시 보였다

중앙일보 2013.12.16 00:31 종합 33면 지면보기

축구에서 유일하게 손을 쓸 수 있는 골키퍼는 특수한 포지션이다. 훈련 방식도 필드 플레이어와 전혀 다르다. 전담 코치가 필요하지만 학교나 클럽 팀에서는 재정적인 문제 등으로 체계적 교육이 잘 이뤄지지 않는다. 최인영(51·전 전북 현대 코치), 김범수(45·여자 대표팀 코치), 김성수(50·전 울산 현대 코치) 등 1급 골키퍼 지도자 자격증을 보유한 코치들이 지난 12~14일 수원 월드컵경기장에서 초·중·고 엘리트 골키퍼 40명을 대상으로 GK 클리닉을 개최했다.



박린 기자(왼쪽)가 13일 수원월드컵경기장 보조구장에서 열린 골키퍼 클리닉에서 김범수 여자대표팀 코치로부터 기본기를 배우고 있다. [수원=정시종 기자]

초·중·고 GK 클리닉, 기자 체험
무릎 굽혀 서는 기본자세도 난감
펀칭에 손목 얼얼 … 부러질 수도

기자도 골키퍼다. 지난해 기자단 축구대회에서 생애 처음 GK 장갑을 끼어봤다. 승부차기를 승리로 이끌어 잠시 으쓱했지만, 2회전에서 두 골을 내줬다. 한낮에도 기온이 영하 5~6도를 맴돌았던 지난 13일 세 번째 골키퍼 장갑을 끼었다. 브라질 월드컵 한국 대표팀에서 가장 경쟁이 치열한 포지션은 정성룡(28·수원)과 김승규(23·울산)가 경합하는 골키퍼다. 더 좋은 기사를 쓰기 위해 골키퍼의 세계를 경험하고 싶었다.



 김범수 코치는 기자가 볼 다루는 걸 슬쩍 살피더니 “초등부로 가라”고 훈련 조를 배정했다. 스무 살 차이 나는 조카뻘들과 함께 훈련하는 게 처음엔 민망했지만, 나중엔 실력 때문에 부끄러웠다.



 무게중심을 앞에 두고, 두 발을 나란히 하고, 무릎을 살짝 굽히는 골키퍼 기본 자세는 생각보다 훨씬 어려웠다. 김 코치는 “자세가 좋은 게 기량의 절반 이상”이라고 강조했다. 기본 자세를 유지하고 있자니 복근과 다리 근육에 묵직하게 힘이 실리고 땀방울이 맺혔다. 공을 잡는 방법도 땅볼과 가슴높이 공, 공중볼이 모두 달랐다. 특히 공중볼은 나란히 모은 양손 엄지와 검지로 W자를 만드는 게 중요했다.



 김 코치가 올린 크로스를 처리하면서 펀칭을 했다. 손목이 얼얼했다. 스핀이 잔뜩 걸린 전문가의 크로스를 펀칭하는 건 돌덩이를 쳐내는 듯했다. 김 코치는 “펀칭은 꼭 필요할 때만 해야 한다. 잘못하면 손목이 부러질 수도 있다”고 주의를 줬다.



 오전 10시에 시작한 훈련은 점심시간을 지나 오후 4시까지 이어졌다. 골키퍼 수업은 ‘맨땅에 헤딩’이 아니라 ‘언땅에 헤딩’이었다. 넘어지는 데도 요령이 있다. 팔꿈치같이 뼈가 다칠 수 있는 부위를 보호하면서, 살이 많은 엉덩이 쪽으로 넘어지며 충격을 완화해야 한다. 좌우로 50번가량 넘어지고 나니 차가운 겨울바람 속에도 온몸이 후끈 달아올랐다. ▶일대일 상황에서는 각을 좁히되 넘어져서는 안 되며 ▶수비 조율을 위해 목이 쉴 만큼 소리를 질러대야 하며 ▶승부차기는 5개 중에서 1개만 막아도 된다고 생각하고 키커의 슈팅보다 늦게 움직이라는 가르침을 받았다.



훈련장을 찾은 정성룡(왼쪽)이 차상광(가운데)·김범수 코치와 담소하고 있다. [수원=정시종 기자]
 김 코치는 “필드 플레이어가 한 경기를 뛰고 나면 2~3㎏ 정도 빠진다. 골키퍼는 어느 정도일 것 같은가”라고 물었다. “500g 정도나 빠질까요”라고 답했는데 정답은 “필드 플레이어와 똑같다”였다. 훈련을 마치고 나니 실감이 났다.



 정성룡도 이날 클리닉을 찾았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 직전 이운재를 제치고 대표팀 주전 골키퍼가 된 정성룡은 최근 후배 김승규의 거센 도전을 받고 있다. 최근에는 자신감마저 잃었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최인영 코치는 정성룡을 보자 대뜸 “골키퍼는 뭐 하는 직업이냐”고 물었다. “막는 거죠”라는 정성룡의 답변에 최 코치는 고개를 저으며 “골키퍼는 막는 게 아니라 먹는 게 직업”이라고 했다. 그는 “다 막으면 축구가 되겠나. 2006년에 전북 신인 권순태도 한 골을 먹고 나면 세상을 다 잃은 듯 좌절했지만 결국은 이겨냈다”며 후배를 격려했다. 정성룡은 “예전에 하루 네 번씩 훈련했다. 연습만이 살길”이라며 선배의 조언을 가슴에 새겼다. 김성수 코치는 “밤늦게 클럽하우스 운동장에 불이 켜져 있으면 십중팔구 김승규였다”며 “아직은 경험 많고 우직한 정성룡이 앞서지만 앞으로는 경쟁이 정말 볼 만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불과 하루 훈련했을 뿐인데 온몸이 쑤신다. 통증은 몇 가지 깨달음과 함께 왔다. 정성룡과 김승규는 정말 훌륭한 골키퍼라는 것. 실수했다고 골키퍼를 함부로 비난하면 곤란하다는 것. 둘 사이의 전쟁 같은 주전 다툼은 누가 더 많은 땀을 흘렸는지를 재는 아름다운 경쟁이라는 것.



수원=박린 기자

사진=정시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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