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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근영의 그림 속 얼굴] 올해의 얼굴

중앙일보 2013.12.12 00:18 종합 32면 지면보기
권근영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제비꽃 장식을 한 베르트 모리조’, 에두아르 마네(1832~83)가 정성 들여 그린 제수씨의 초상이다. 검은 옷으로 몸과 목, 머리까지 감싸고 있는데도 고혹적인 그녀, 그녀의 따스한 시선은 마네를 향하고 있었을 거다.



 인상파 운동의 일원이었던 모리조(1841∼95)는 당시로선 드문 여성 화가였다. 마네와 알게 된 것은 1868년, 초상화는 그로부터 4년 뒤 작품이다. 모리조가 31세, 마네가 40세의 일이다. 부인 쉬잔을 비롯해 마네의 그림에 자주 등장한 여인들 중 가장 아름답게 표현된 모리조를 두고 호사가들은 둘이 애틋한 사이였을 거라 짐작했다. 모리조는 1876년엔 마네의 동생 외젠과 결혼했다. 에두아르 마네와는 가장 가깝고도 먼 사이가 된 셈이다.



에두아르 마네, 제비꽃 장식을 한 베르트 모리조, 1872, 55×38㎝, 파리 오르세미술관 소장.
 내가 이 그림을 만난 것은 지난여름의 베니스, 현대 미술의 첨단이 쏟아져 나온 비엔날레 기간 중 열린 ‘마네, 베니스로의 귀환’전에서다. 옛 베니스 공화정의 중심이었던 팔라조 두칼레에서 연 전시였다. 마네 생전 두 차례의 베니스 방문에 초점을 맞추며 티치아노·지오르지오네 등 베니스 화파 거장들의 작품을 함께 걸었다. 도발적이리만큼 현대적 인물화인 ‘올랭피아’(1865)와 그에 영감을 준 티치아노의 고전 ‘우르비노의 비너스’(16세기)가 처음으로 나란히 걸렸다 해 화제를 모은 전시였다.



 전시된 명화들 중에서 사람들이 오래 머문 그림은 ‘제비꽃 장식을 한 베르트 모리조’, 이 크지 않은 초상화였다. “나는 마네의 작품 중 베르트 모리조의 초상화를 능가하는 그림이 없다고 생각한다…무엇보다 나를 사로잡은 것은 그림에 쓰인 마네 특유의 완전한 검은색이었다.” 후에 폴 발레리(1871∼1945)가 이런 찬사를 보냈을 만큼 신비로운 검은색 속에서 그녀는 한결 더 화사하게 피어났다.



 전시를 다 본 뒤 기념품점에서 그림이 찍힌 자석을 하나 샀다. 그렇게 해서 그녀는 서울의 내 책상 앞을 지키며 나의 희로애락을 지켜봤다. 실물을 자주 접하기 어려운 우리는 그렇게 명화를 만나지 않았나. 백과사전 속 원색 화보로 만난 렘브란트, 우리가 자랐던 옛 집에서 액자를 대신했던 달력 속 밀레, 장식용 접시 위 르누아르의 소녀들…. 일주일에 한 번씩 신문 속에 등장한 명화도 그러했길 바란다. 80번째 얼굴은 누구로 할까 하다가, 언젠간 쓰리라 했던 이 초상화를 소개한다. 해가 가기 전에 꼽는 나만의 ‘올해의 얼굴’이다. 1년 반 남짓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들께 감사드린다. 따뜻한 송년 되시길.



권근영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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