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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가쟁명:임대희] 중국의 철도, 그리고 베트남

중앙일보 2013.12.10 09:52
필자가 1980년대 말 중국에 다니게 되었을 때, 지방에 갈 적에는 주로 항공편을 이용하였다. 1990년대 초에 이르러서야 조금씩 열차편을 이용하게 되었다. 음력설 무렵에 난징(南京)역에서 바라본 광경은 몹시 놀랄만하였다. 마침 눈이 굵직하게 내리기 시작하고 있었는데, 광장에서 열차표를 사려고 기다리던 군중들이 우왕좌왕하기 시작하였다. 역무원들이 4m 가까운 기다란 장대를 들고 오더니, 광장에 있는 군중들 앞에서 군중을 향해서 한번 씩 내리치더니 다시 옆으로 옮겨서 또 한번 내리치는 것이다.

이렇게 옮겨가며 한바탕 내리치고 나니, 광장에서 기다리던 군중들도 눈이 오는데도 불구하고, 질서정연하게 대오를 정렬하고 그대로 기다리게 되었다. 이러한 충격적인 상황은 그밖에도 여러 군데에서 발생하였지만, 필자에게는 철도역에서 있었던 이 장면이 몹시 충격적으로 느껴졌다. 당시 난징역은 그 범위는 지금과 거의 마찬가지였지만, 그 규모는 지금과는 크게 차이가 났었다. 지금의 난징역에서 가장 북쪽에 열차표를 파는 곳이 자그마하게 있었기에, 역무원들이 그렇게라도 질서를 잡았기에 우왕좌왕하는 사람들을 정렬시켰다고도 볼 수 있다.

1990년대 초기에는 상하이역에서 난징역까지의 265㎞ 좀 넘는 거리를 5시간 남짓 걸려서 도달하였다. 시속 50㎞로 달리는 셈이었는데, 다른 교통 수단이 그다지 없는 상황에서 열차표를 사는 것이 그다지 쉽지 않았다. 자연히 철도교통에 종사하는 직원들이 서비스업에 종사한다기 보다는 약간은 시혜를 베풀고 있다는 입장이 몸에 베기 쉬웠다. 그런데 익숙해진 필자로서는 올림픽 직전에 갑자기 유실물(遺失物)까지도 찾아주려고 애쓰는 철도직원들을 바라보면서, 천양지차(天壤之差)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사이에도 중국의 철도는 조금씩 변화하고 있었던 것을 지금에서야 깨닫게 된다.

룽하이선(?海線)은 롄윈강(連雲港)에서 란저우(蘭州)까지 1759㎞를 1905년부터 1952년까지 건설하여서 동서를 잇는 선으로 유명하다. 지금은 복선 전철화되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서쪽으로는 로테르담까지 연결되고 있으며, 또한 티베트의 라싸까지도 연결하고 있다. 징광선(京廣線)은 우한(武漢) 창장대교가 건설되면서, 본래 베이징에서 한커우(漢口)까지의 징한(京漢)선과 우창(武昌)에서 광저우(廣州)까지의 웨한(?漢)선이 연결되어서 생긴 것이다. 징광선은 2284㎞인데, 본래 40시간이 걸리던 거리를 1997년부터 속도 증가 노력으로 지금은 22시간 걸린다. 지금은 이 노선과 같은 구역에 고속철도를 모두 개통하였으므로 8시간이면 도달할 수 있게도 되었다.

1996년에 여러 노선을 연결하면서 북경에서 홍콩의 주룽(九龍)까지를 직통으로 연결하는 징주(京九)선은 그 의욕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커다란 놀라움을 주었다. 그런데, 그 사이에 대부분 고속도로를 이용하게 되었기 때문인지 지금은 징주선을 기차로 이용하는 것보다 차량으로 왕래하는 경우가 더 많은 모양이다. 징주(京九)선이 전구간 운행하는 것은 왕복 1차례 밖에 없다.

최근에는 푸젠성의 푸저우(福州)에서 핑탄(平潭)까지의 노선이 완공되어서, 기존 노선을 연결하면 결국은 푸저우에서 베이징까지 연결하는 노선[京福?路]을 완공된 셈이다. 저장성 동부지역과 푸젠성 동부지역은 각기 경제적으로는 여유가 있는 해안 지역이었음에도 내륙 지역과 교통이 불편했던 지역인데, 동차(動車) 노선을 빠르게 연결한 셈이며, 또한 이 지역은 고속전철 노선이 베이징에서 푸저우까지 연결되어 있다. 최근에는 광저우(廣州)에서 샤먼(厦門)까지 고속철도가 건설되었으며, 얼마 지나면 푸저우와 샤먼 사이의 고속철도도 건설될 것이므로, 중국의 고속철도는 사통팔달로 이어지는 셈이다.

여기에는 각지의 부도심(副都心)을 새로 만드는 방안과 연계되어 있으므로, 역시 자금이 있으니 여러 가지로 현안을 타개하는 방안이 되고 있는 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주룽지(朱?基)총리 이래로, 한편으로 정부기구를 민영화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중산계층을 육성하려는 정책으로서, 주택을 은행융자로 구입하도록 유도한 방향의 성공적인 모습이 이렇게 실현되고 있는 것이라고 보여진다.

중국의 현행 철도 노선도를 살펴보면서, 얼마 전까지는 없었던 노선이 하도 많아서, 이 분야에 비교적 관심이 많았던 필자로서도 크게 놀라게 된다. 물론 이들 노선은 객운(客運)인 경우도 많지만, 그 가운데에는 석탄을 운반하기 위한 노선도 있을 정도이므로, 한국과는 사정이 다르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중국에서 철도의 중요성을 잘 인지(認知)하고 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해야 할 것이다.

2013년에 중국은 47개 노선을 새로이 건설 중이며 그 신설노선 건설 예산이 4713억(億)위엔(元)이라고 한다. 한국돈으로 84조(兆)에 이르는 금액인데, 도대체 어디를 잇는 것인지 살펴보니, 충칭(重慶)에서 구이양(貴陽), 둔황(敦煌)에서 거얼무(格?木), 청두(成都)에서 구이양, 롄윈강(連雲港)에서 옌청(鹽城), 후허후터(呼和浩特)에서 준거얼(准格爾)을 거쳐서 어얼둬스(鄂爾多斯)(245㎞)등과 같이 산악지대이거나 사막지대인 경우가 많이 눈에 띄인다. 아마도, 아직은 노임(勞賃)이 값싼 점을 이용해서 언젠가는 있어야할 노선을 서둘러 건설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건설비용의 대부분이 인건비로 지출하게 되므로, 개개인의 소득증대로 연결된다고 간주하고 대대적인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도 보여진다.

한편으로는 위에서 예를 들었던 외곽지역의 철도 노선은 소수민족이 사는 곳이 많다는 점에서, 이러한 철도노선이 교통면에서의 필요성 이외에도 여러 가지 고려하는 요소가 있으리라는 짐작도 하게 된다. 예전에 들렀던 이닝(伊寧)의 철도역이 몹시 크기에 그 역에서 철도가 어디로 가느냐고 질문을 했더니, 지선(支線)이므로 그리 멀리 가지는 못 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우루무치에서 서쪽으로 간선 철도 건설 계획이 있다기에 이닝(伊寧)을 지나가느냐고 질문했더니, 산너머 북쪽에 몽고족들이 살고 있는 곳을 지나간다는 대답을 들었다. “철도노선도 선정할 때에도 소수민족 사이에 그 어떠한 배려가 있을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중에 지도를 보면서 생각해 보니, 몽고족의 선조(징기스칸 시대)들이 서쪽으로 고개 넘어가는 요충지를 믿을 수 있는 몽고족에게 경비를 맡겼을 것이고 그리하여 이곳에 자리 잡았기에 그 다음에도 거기에 살게 된 것일 뿐이었을 것이다.

지금에 철도를 놓으려고 하더라도, 중국의 국경을 넘어서 카자크스탄으로 넘어 가야하는 지점은 역시 산악이 가로막힌 지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역시 지형적인 특성을 배려할 수 밖에 없으므로 이와 같은 노선을 택할 수 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가 지형이 아닌 다른 요소를 생각했던 것은 공연한 오해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중국철로(中鐵)라는 경영체는 그 산하에 중철(中鐵)1국부터 중철(中鐵)11국까지의 기업체를 거느리고 있으며, 철교를 건설하는 중철대교국(中鐵大橋局)이나 전기나 턴널을 담당하는 중철전기화국급수도(中鐵電氣化局及隧道)등으로 중철건공집단(中鐵建工集團)이루고 있다. 그리고 그 자회사로 물류를 담당하는 중철쾌운공사(中鐵快運公司)등의 중철물류집단(中鐵物流集團)이 있는 것은 일리가 있다고 하겠다. 거기에 덧붙여서 부동산업도 역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1990년대부터 베이징(北京)、선전(深?)、상하이(上海)、광저우(廣州)、청두(成都)、선양(審陽)、구이양(貴陽)、우한(武漢) 등지에 부동산 개발업을 시작하여서, 흥륭국제화원(興隆國際花園)、동산국제신성(東山國際新城)、중철일도국제(中鐵逸都國際; 貴陽市. 건평230만㎡, 거주 호수 16000戶, 인구6萬名)、바이루이징중앙생활구(百瑞景中央生活區; 본래 武漢鍋爐廠原址. 건평52.7萬㎡, 1萬戶, 3萬名. 12년 국제교육시설 구비, 신규모 대형마트, 5천 상점형SSM 및 MAX영화관)등의 단지를 건설하였다. 2012년말까지 전국 18개성의 48개 도시에서 1962만㎡의 면적에 총건축면적이 3900만㎡을 세웠다고 한다.

이러한 바탕이 있었기에, 최근에 중국의 고속철도는 기존의 도시외곽에 고속철도역을 만들어서 철도역 주변을 새로운 부도심지로 건설하는 형태로 개발하게 되었다. 그 부도심지는 고속철도역이 들어섰을 때에는 한적한 벌판이었지만, 조금씩 시간이 지나면서 그곳으로 상권이 들어서게 되고, 결국은 토지가격이 올라가게 되는 점을 노린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에 이 새로 생긴 부도심지에 커다란 유명브랜드의 상점이 들어와서 자연히 사람들이 몰려오는 경우를 자주 보았다. 그리고, 중국철도에서 철도역이 무척 크다는 점이 특색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애초에는 이렇게 크지 않았는데, 아마도 1995년대부터 커지기 시작한 것 같다.

필자는 그 무렵에 일본이 주최한 일중한 3국의 중국 운하 조사에 참여하였었는데, 후이안(淮安)역이 인구수에 비해서 너무 크다고 느끼면서, 저우언라이(周恩來)씨의 고향이라고 우대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이후에 다른 역들도 모두 이렇게 크게 짓는 것을 보고 놀랐던 기억이 난다.

이번 여름에 대통령 베트남 국빈방문을 전후하여, 필자는 베트남 남부와 중부를 두 번에 걸쳐 다녀왔다. 필자가 대학생일 때에 남북 베트남이 통일이 되었기에 베트남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다. 우리가 베트남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정리하고 넘어가야 할 일들이 많지만, 국가적으로는 이제 어느 정도 정상적으로 되어있다고 생각된다.

한국 사람이라는 입장에서는 아직도 조금 더 배려할 일들이 없을까 살펴볼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필자가 베트남에 가면서, 한국의 디젤 기관차를 베트남에 싸게 넘겨주고, 한국의 철도는 모두 전기 기관차로 바꾸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졌다. 그런데, 현지에 가보니 철궤의 폭이 달라서 불가능한 것을 알게 되었다. 한국의 철궤의 폭은 1.435m인데 베트남은 1.0m였기 때문에 한국의 철도차량이 베트남에서는 달릴 수 없는 것이다.

베트남의 해안선 길이가 3000㎞인데, 호치민에서 하노이까지의 철도는 1,726㎞이다. 지금의 열차로는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29시간 내지는 33시간이 걸린다. 시속50㎞남짓의 속도로 달리는 셈이었다. 1990년대 초기에 중국에서도 그러했다는 생각을 하면서 크게 놀라지 않았으나, 실제로 부딪쳐 보니, 사태는 훨씬 심각하였다. 100년전 프랑스 통치시기에 건설한 이 철로는 단선철로였으며 마치 등산철도와 같았다. 중간중간에 마주 오는 열차를 피하기 위해서 열차대기 선로가 깔려있었다.

한국에서 1960년대에 청량리에서 경주까지를 연결하는 중앙선보다도 훨씬 불안한 노선이었다. 다낭에서 후에까지 100㎞도 안 되는 거리를 2시간동안, 또아리 굴따위는 아예 없이, 저 아래로 해안선을 바라보면서 산중턱을 헉헉거리면서 구불구불 돌아가는 열차 안에서 과연 사고없이 잘 도착할 수 있을지 몇 번이나 바깥을 내다볼 수 밖에 없었다. 애초에 다낭에서 열차를 탄다고 했을 때에, 버스를 타는 것이 훨씬 편리하다고 말리면서 열차는 돈없는 사람의 교통수단이라고 여러 사람들이 강조하던 의미를 잘 이해할 수 있는 경험이었다.

예전에 어딘가 소풍갈 때에 타고 다녔던 비둘기호를 탄 것 같다. 먼 곳에 간간히 보이는 바닷가의 정경을 보면서 등산철도처럼 구불구불한 철로에 바퀴가 부딪치면서 생겨나는 삑삑거리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태연히 앉아있을 수밖에 없다. 조금 더 올라가더니 한참동안이나 숨을 돌리기 위해서인지 정차하게 되었는데, 알고 보니 저쪽에서 오는 하행선의 차량을 보내기 위해서 머물고 있는 것이었다. 2000여㎞를 이렇게 단선철로로 연결되는 것은 프랑스 식민지배 시대 당시에 우선 급한대로 만들어 놓은 것이어서 하는 수 없었다고 한다.

창밖을 내다보니, 건너편 쪽에 열차대기 선로가 보인다. 양쪽 철궤(鐵軌)가운데 한쪽은 몹시 반짝거리고 다른 한쪽은 약간 녹이 슬어가는 형태였는데, 반짝거리는 쪽에만 개미가 열심히 줄지어간다. 가만 생각해보니, 반짝거리는 쪽은 마찰이 많아서 반짝거리는 만치 그 쪽으로 바퀴가 많이 닿게 되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그쪽 철궤로 다니면 개미들이 결국 압사하고 말텐데 왜 베트남의 개미는 바로 한발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그쪽으로만 몰려가는 것일까?

나중에 베트남의 친구에게 이 경험을 이야기하였더니, 웃으면서 좋은 경험을 하였다면서, 베트남의 문제점을 이렇게 빨리 간파할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견식이 있는 것이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그러면서, 인터넷의 (http://talkvietnam.com)을 한번 읽어보라고 권유하였다. 해당 웹사이트에는 “강남스타일”이라는 게시물도 있었는데, 거기에는 베트남의 아줌마들이 싸이(psy)스타일로 길거리에 모여서 춤을 추는 장면의 사진이 스무장 가량 올라와 있기도 했다.

베트남 친구가 알려준 게시물은 Tran Dinh Ba박사가 교통부의 Nguyen Ngoc Dong차관에게 시속 120㎞로 달리는 철도노선을 건설한다면 500만 달러를 지불할 것이며 그것을 실현하지 못 한다면 500만달러를 그에게 지불하라고 제안한 내용이었다. Tran Dinh Ba박사는 베트남 경제과학원의 일원이며, 2009년에 베트남항공이 하노이에서 호치민 사이의 직항편을 증편하고 노선을 단축하도록 주장하였으며, 교통부 장관에게 철도의 옛 노선을 철폐하고 새로운 복선철도를 건설하도록 요청하여 유명해진 인사이다.

그러한 연유가 있었기에, 그의 제안에 대해서 Nguyen Ngoc Dong차관은 교통신문에 해명서를 발표하였는데, 거기에 실린 내용은 현재의 베트남 철도의 현실과 개선책이 간결하게 열거된 셈이었다. 즉, 현재의 베트남 철도가 사고가 잦거나 연착이 많은 것은 굴곡이 많은 점 뿐 아니라, 일반도로와 교차하는 지점이 많으며, 연약한 교량이나 연약한 터널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나마도 100년전에 같은 거리를 70시간이 걸리던 것 보다는 많이 좋아진 것이라고 하였다. 옛날 노선을 그대로 살려서 2020년까지 협궤를 1.435m의 폭으로 개량하고 복선(複線)화 한다면 시속 80~90㎞로 운행하여 21시간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 경우에 19억달러(약2兆원)가 든다고 하였다. 그 가운데 대부분이 1.435m폭에 맞는 차량을 새로이 구입하는 대금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계획은 비용이 과다하며 비효율적이라는 이유로 국회에서 승인을 받지 못 하였다.

베트남 정부가 기존의 노선을 고집하는가 하면, 기존의 노선의 토지는 이미 철도공사가 소유하고 있기에 토지보상비가 들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신설 철도노선을 채택할 경우에는 엄청난 토지 보상비를 지불하여야 하기 때문에 엄두를 내지 못 하는 것이라고 한다. 사회주의 국가이므로 토지가 국유로 되어있지 않느냐고 질문하니, 소유는 국유로 되어있지만 이용권이 40년 내지 50년 동안으로 되어 있는데, 자식에게 물려주는 경우는 그 이용권 기한이 그대로 연장되게 되어있다고 한다. 토지대장이 홍색(紅色)과 분홍색(粉紅色)으로 나뉘어있지만, 이것은 토지만을 대상으로 하느냐, 가옥까지 포함되느냐를 구분할 뿐이므로 국가의 입장에서 이들 토지를 사용하려고 할 때에는 그다지 차이가 없이 보상비를 지불할 수 밖에 없다고 한다. 특히, 내륙지역에 살고 있는 소수민족은 토지에 대한 애착이 대단히 강력하여, 2001년에 닥락성과 자라이성에서는 토지 소유를 둘러싸고 소수 민족들이 커다란 소요사건을 벌여서 그 여파가 아직도 남아있다고 한다.

필자가 보기에는, 새로운 철도노선을 내륙 쪽으로 직선화(直線化)시키고, 기존의 노선은 화물 위주로 바꾼다면 훨씬 효용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존의 노선을 그대로 보수(補修)하여 폭의 넓이만 1.435m로 바꾼다면 5년이나 10년 뒤에는 다시 새로운 철도노선을 건설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내륙 쪽으로 직선화시키려면 많은 교량과 터널을 만들어야 하는 방식이 되겠으며, 베트남의 현재의 기술적인 역량으로는 해결하기 힘든다는 점도 부각될 것이다. 그러나, 직선화시켜서 이를 제대로 운영하는 과정을 통해서 베트남의 철도 기술도 훨씬 더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된다.

베트남의 하노이에서 호치민에 이르는 철도노선을 직선으로 새로 건설할 경우, 철도차량을 포함하면 그 비용이 20조(兆)원에 이를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 엄청난 비용을 몇 년에 걸쳐서 부담하는 것이 현재의 베트남의 사정으로 어려울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러한 신설 철도노선을 건설하여야만 여러 가지 물류 사정이 해결되기 때문에 마냥 늦추어서는 더 많은 애로 사항이 발생할 수도 있다. 또한 지금처럼 베트남의 인건비가 저렴할 때에 건설해야 전체적인 비용이 덜 들어갈 수도 있는 것이다. 앞에서 중국의 철도 건설 모습을 살펴보았기에 더욱 그러한 필요성을 강조할 수 있는 것이다. 부도심 건설을 통해서 주택문제도 해결될 것이며, 그밖의 여러 가지 사안이 동시에 해결될 수 있는 것이다.

베트남 철도의 형편이 외국의 협조를 필요로 하는 상황이므로, 한국국제협력단이난 일본의 JICA에서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일본은 베트남 중부의 다낭?후에의 산악지역을 관통하는 도로의 터널을 최근에 완공하였다. 하노이~하이퐁 사이의 고속도로는 한국업체도 참여하여 건설이 추진되고 있다. 베트남의 철도 문제에도 일본이 개입하려고 했으나 철도 부분은 여러 가지 사정으로 말미암아 지금은 흐지부지 되어버렸다.

중국과 베트남 사이에는 하노이?하이퐁 사이의 철도노선이나, 하노이?라오까이 사이의 철도노선의 신설이 합의되어 있다. 이는 베트남 철도공사 산하의 베트남 철도 자문 회사(TRICC)가 베트남 측의 자금으로 복선 전철화하는 방향으로 예비 타당성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중국이 이 부분에서 융통성을 보이고 있는데, 그 바람에 베트남 동쪽 바다에 있는 군도(群島)에 대해서 필리핀은 중국에게 강력한 반발을 하는데, 베트남은 유연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물론 일부 지역에서 시민들이 해상 지도를 전시하면서 그들 군도(群島)에 대한 영유권을 밝히고 있으나, 베트남의 정부 차원에서는 조용한 편이라고 보여진다. 혹시라도 중국이 싱가포르?쿠밍 철도 연결(SKRL)사업에서 베트남 구역의 건설비용을 아무런 조건없이 부담해 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면 나중에 후회할 수도 있을 것이다. 외부 세력이 흔드는 동전 주머니에서 들려오는 땡그랑 소리에 귀기우리며 지나친 기대를 가지고 기다리는 것보다는, 베트남의 국민들이 편리하도록 지금부터라도 조금씩 철도노선을 건설해 나갔으면 좋겠다.

정작 베트남의 철도 부설 건은 아세안―메콩강유역개발협력사업(AMBDC)이나 싱가포르?쿠밍 철도 연결(SKRL)사업등의 거대한 개발사업에 연관되기에 그 자금을 이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동남아시아국가연합이 메콩 분지를 협력하여 개발하자는 취지가, 이를 이용하여 무임승차(無賃乘車)할 수 있는 기회를 기다리는 경우가 생기므로, 오히려 자생적(自生的)인 노력을 가로 막고 있는 형편이 되어버렸다.

베트남이 싱가포르~쿤밍 철도 연결사업(SKRL)으로 외부의 자금을 공짜로 지원받아서 철도를 건설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착각일 것이다. 외국 세력이 아무런 반대급부 없이 자금지원을 할 리가 없다. 전체적인 아세안―메콩강유역개발협력사업(AMBDC) 사업의 경비를 누가 부담할지도 명확하게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마냥 기다리고 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베트남에서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아래에서도 한국 업체의 활약은 눈부시다. 가령, 베트남 측에서 교량 건설 등을 할 때에 교량의 골격은 한국에서 만들어서 그 무거운 교량골격을 큰배에 싣고 가서 현지에서는 조립만 하는 방식을 채택하였다. 더구나, 교량을 건설하여야 하는데 재원이 충분치 못하다고 하면, GS건설 등에서는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현금 지불 대신에 대토(代土)를 받는 방식으로 접근하였다. 그 대토(代土)에 신흥주택단지를 만들어 분양하여 대금을 회수하는 방식이 제대로 맞아들었다. 이 신흥주택단지들은 베트남에서 몹시 호평(好評)을 받고 있다. 베트남의 주택은 습기가 많은 까닭에 긴 복도 양쪽에 방 한칸을 만드는 방식이 전통적이었다.

그런데, 한국식의 주택단지는 대형 쇼핑센터나 교육시설까지 그 주택단지 속에 포함하고 있는 등, 여러 가지 생활하기에 훌륭한 조건을 갖추고 있으므로 인기가 높다. 지금은 베트남에서 자금 여유있는 사람들의 재산 증식에 유용한 대상이 되고 있다. 또한, 늪지대의 토지를 받은 경우에도 그곳에 커다란 호수를 만들기도 하며 적합한 설비시설을 갖추어서 그곳에 좋은 음식점 등이 다들 모여들 수 있게 만드는 솜씨를 보였다.

특히 호치민시의 7구(區)는 본래 늪지대에 가까웠는데, 이 지역을 대토(代土)로 받은 업체에서는 애써서 이를 일구었으며, 지금은 이러한 노력에 따라서 모두들 부러워하는 조건을 갖춘 주거 및 상업 지역이 되었다. 그러한 추세에 힘입어 애초에 공항 근처에 거주하던 한국인들도 이곳으로 옮겨와서 점차 한인(韓人)타운으로도 형성되고 있다.

베트남의 철도건설에 한국 기업이 좀 더 개입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그러려면, 두가지 조건이 갖추어져야 할 것 같다. 첫째, 베트남에서 오랜 세월 인적인 유대를 맺고 있는 김우중(金宇中)씨의 협조가 있어야 할 것 같다. 훌륭한 전투기 조종사를 양성하는데 드는 비용을 따지는 분이 있었는데, 지금의 김우중씨를 만들어 내는데, 한국에서 들인 비용은 엄청나게 크다고 생각한다. 좀 더 김씨가 가지고 있는 역량을 발휘하도록 기회를 제공하며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는 정의선씨의 적극적인 활약이 필요할 것이다. 지금 재벌 3세가 나름대로 주주(株主)들이나 국민들의 신뢰를 받으려면, 좀 더 훌륭한 경영 솜씨를 인정받아야 할 것이다.

최근에 경영력이 없는 몇몇 재벌3세들이 국민들의 지탄을 받은 경우가 많았다. 현대자동차 계열에는 현대건설이나 현대로템 등, 베트남의 철도건설과 관련된 회사들이 많다. 현대로템에서 한국의 철도청에서 노후 디젤형 열차차량을 구입하여 베트남에 싸게 팔고, 한국의 철도청에는 전기형 열차차량을 판매할 수 있는 방식도 있을 것이므로, 계약을 따오고 추진하는데 여러 가지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다. 워낙 큰 덩어리의 사업이므로 북부, 중부, 남부의 베트남으로 지역을 나누어서 단계적으로 진행하여야 할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기아자동차 공장을 베트남 중부 지역에 건설할 수도 있다는 점이 베트남의 입장에서는 호감을 가질 수 있는 요인이 될 것이다.

그런데, 베트남의 교통 분야 건설에 한국업체가 진출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다. 한국의 수출입은행이 주도하는 대외경제협력기금(EDCF)을 재원으로 하는 차관(借款)으로 건설해주면서도, 그 주도권을 베트남 정부에 넘기고 있다. 베트남 정부의 교통부(MOT; Ministry of Transport)는 경쟁 입찰을 통해서 건설업체를 선정하는 바람에 한국의 건설업체는 과당경쟁에 빠지게 된다.

결국 저가(低價)로 수주하는 바람에 손실을 입게 된다. 더구나, 물가변동분에 변동환율을 적용해 산출하면서 공사금에서 차이가 생기게 되어서, 건설에서는 손실이 없는 경우라도 환율 때문에 손실이 발생하는 경우도 생긴다. 그 때문에, 결국 건설업체는 자체적으로 자금을 조달해서 준공해야 하는 사태가 종종 발생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에는 입찰 참여 자격을 강화해 일본 건설업체에게 적정 이윤을 보장해 넘기고, 그들 일본 건설업체가 주도적으로 건설 프로젝트를 만들어 베트남 정부에 제안해서 공사를 따오도록 하여, 결과적으로 실속 있게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데, 이점은 한국에서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임대희 경북대학교 아시아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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