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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락 "국민투표" … 혼돈의 태국 수싸움

중앙일보 2013.12.09 00:56 종합 8면 지면보기
8일 태국 방콕의 민주기념탑 인근에서 차량에 탄 반정부 시위대가 국기를 흔들며 이동하고 있다. 수텝 트악수반 전 부총리는 9일을 ‘결전의 날’로 선포했다. [방콕 AP=뉴시스]


잉락 총리(左), 수텝 전 부총리(右)
국왕 생일을 맞아 잠시 휴전기를 가졌던 태국 반정부 시위 사태가 다시 요동치고 있다. 시위대를 이끄는 보수 야권 측은 의원직 사퇴에다 ‘지도자 투항’이라는 배수진을 쳤다. 이에 맞서 총리는 야당 측 의회 구성안을 국민투표에 부치자고 강수를 날렸다. 어느 쪽이든 머리 수를 통한 세 대결에 명운을 거는 형국이다. 정치 개혁과 사회 통합이라는 근본 처방 없이 반목과 불신의 골만 깊어지고 있다.

"야당 제안 찬반 묻겠다" 맞불
시위 주도 수텝 전 부총리는
"9일 100만 안 모이면 투항"
야당 “의원직 사퇴, 시위 동참



 잉락 친나왓 총리는 8일 TV 성명에서 “(야권이 제안한) 국민회의(People Council) 구성안과 관련해 국민이 투표로 결정하게 하자”고 제안했다. ‘국민회의’는 반정부 시위를 이끄는 수텝 트악수반 전 부총리가 요구해 온 것으로 비선출 합의기구 성격이다. 잉락 총리는 “나는 자리에 연연하는 사람이 아니다”면서 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자신이 사퇴하고 의회를 해산할 용의가 있다고 거듭 밝혔다. 단, 주요 정당이 동의할 때만 국민투표가 가능할 것이라며 반정부 시위대와 정당이 선거 결과에 승복할 것을 전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잉락의 돌발 제안은 수텝 전 부총리가 선포한 ‘결전의 날’에 대한 맞불 차원으로 보인다. 수텝 전 부총리는 6일 밤 집회에서 “9일 오전 9시39분에 정권 타도의 최후 결전을 벌이자”고 독려했다. 그는 이날 시위자가 100만 명에 도달하면 승리를 선언하고 국민회의를 설립하겠다고 공언했다. 결전의 순간을 9가 세 번 겹치는 때로 잡은 것은 태국 숫자 9(까오)가 ‘나아가다’ ‘발전하다’의 의미인 ‘까오나’와 발음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9일 시위에 수백만 명이 호응하지 않는다면 “패배를 인정하고 내 발로 경찰에 자수하겠다”고도 했다. 제1야당인 민주당 의원직을 사퇴하고 시위를 이끌고 있는 그는 폭동을 일으킨 혐의를 받고 있다.



 앞서 수텝 전 부총리는 지난달 24일과 지난 1일에도 ‘결전의 날’을 선포했다. 당시 참가자 수가 최대 10만 명 선에 그친 것을 감안하면 9일 시위 규모도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지난 5일 국민 다수의 존경을 받는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의 86회 생일을 계기로 시위 동력이 한참 떨어진 상태다. 따라서 수텝의 ‘투항 공약’은 시위 동력을 다시 끌어올리려는 엄포 성격이 크다.



 야당인 민주당도 이에 동참했다. 민주당 대변인은 8일 현 정부가 정통성을 잃었다면서 소속 하원의원들이 총사퇴하고 9일 시위에 동참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전체 500명인 태국 하원은 민주당 소속 전원이 사퇴해도 347명의 의원이 남게 된다.



 이번 사태는 지난달 초 잉락 정부가 탁신 친나왓 전 총리의 사면으로 이어지는 포괄적 사면안 입법을 추진하며 시작됐다. 잉락의 오빠인 탁신 전 총리는 탈세 등 혐의를 받다가 2006년 군부 쿠데타로 축출돼 해외 망명 중이다. 잉락 총리와 친탁신 정당인 푸어타이당은 2011년 집권 후 기회만 있으면 탁신 전 총리의 사면과 귀국을 추진해 민주당과 반탁신 진영의 반발을 초래했다. ‘옐로 셔츠’로 불리는 반탁신계 반정부 시위대는 주로 방콕 등 도시 중산층들로 민주당과 지주 및 사업가 등의 지지를 받고 있다. 이들은 지난달 24일 이래 주요 정부 청사를 점령하며 잉락의 사임 및 탁신 일가의 정치 축출을 요구해 왔다.



 그러나 잉락은 조기 총선, 나아가 국민투표를 주장하며 야권을 압박하고 있다. 표 대결로 하면 승산이 있다는 자신감 때문이다. 탁신은 집권기간 동안 저소득층 지원책 등으로 도시 빈민과 농민층의 지지를 받아왔다.



 태국은 1932년 입헌군주제 도입 이후 19차례 군사 쿠데타가 발생했을 정도로 정정이 불안정하다. 특히 2000년대 이후엔 시위를 통한 정권 축출이 반복돼 왔다. 2008년엔 반탁신 진영이 총리 청사를 3개월간 점거하는 등 대대적인 반정부 시위를 벌여 친탁신 정권을 무너뜨리고 민주당 정권을 출범시켰다. 이에 맞서 2010년엔 친탁신 진영인 이른바 ‘레드셔츠’들이 방콕 중심가를 3개월 동안 점거하는 시위를 벌여 조기 총선 약속을 얻어냈다. 양측은 서로 정치 개혁과 민주화 추진을 공언했지만 정권을 잡은 뒤엔 이를 지키지 않아 반목이 가속돼 왔다.



강혜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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