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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덕현의 귀촌일기] 물 건너온 며느리

중앙일보 2013.12.09 00:45 종합 32면 지면보기
남덕현
귀농 수필가
우리 동네 김 영감은 마음이 심란한 지 오래되었단다. 며느리는 여전히 서툰 발음으로 더듬더듬 아이를 꾸짖고, 어미보다 더 정확한 발음으로 또박또박 말대답하는 손자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늘 심란하단다. 며느리가 둘씩이나 되는데, 그것도 위 아랫집에 사는데, 밥 한 끼 얻어먹으려면 몇 번을 오르락내리락하며 눈치를 줘야 했단다. 말이 안 통하니 눈치껏 상을 차려줄 때까지 마냥 기다릴 수밖에 없었단다. 시아버지 자리라 더 어려웠고, 그때마다 먼저 떠난 조강지처 생각이 간절했단다.



빤한 시골 살림에 다달이 며느리 친정으로 몇십만원씩 송금하느라 등골이 휜단다. 결혼할 때 철석같이 약속을 한 것이라 빚을 내서라도 보내야 한단다. 말로 듣던 것과 다르게 빈궁한 시골 살림에 크게 실망하며 방황하던 며느리가, 그나마 손자를 낳고 마음을 다잡고 잘 사는 마당에 송금을 끊으면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단다.



 주위에서 들려오는 험한 이야기에 비하면 탈 없이 잘 살아주는 며느리들이 기특하지만, 그래도 마음이 늘 불안하고 심란해서 애꿎은 담배만 늘어간단다. 그래도 김 영감은 며느리가 기특하단다. 우리말이 많이 늘어서 웬만한 말은 척척 알아듣고, 심지어 당신도 종종 헛갈리는 촌수도 제법 따질 줄 알게 되었단다. 주일마다 교회도 잘 따라다녀서 기특하단다.



냄새만 맡아도 질색하던 청국장을 이제 없어서 못 먹고, 워낙 눈썰미가 좋아서 한 번 본 것은 절대 잊어먹지 않고 그대로 따라 한단다. 오죽하면 시집온 지 1년 만에 혼자서 제사상을 다 차리겠는가! 이제 ‘물 건너온 메누리’는 한국 사람이 다 되었단다. 그런데 김 영감은 여전히 며느리 고향이 베트남인지, 월남인지, 월맹인지 헛갈린단다.



 베트남 말을 단 한마디도 못한단다. 배워볼 생각은 해본 적도 없단다. 베트남 음식에는 뭐가 있는지, 며느리가 뭘 좋아하는지 전혀 모른단다. 물어본 적도 없고, 역시 배울 생각은 더더욱 없으며, 자식들에게 배우라고 권할 생각도 없단다. 며느리 종교가 뭔지도 모른단다. 역시 물어본 적도 없단다. 그러고 보니 며느리에 대해서 아는 게 별로 없단다. 아는 것이라고는, 이제 ‘물 건너온 메누리’가 한국 사람이 다 되었다는 것뿐이란다.



그래서 김 영감은 다문화가정이라는 말이 뭔 뜻인지 도무지 모르겠단다. 밥이 나오는 것도, 쌀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문화 타령을 하는지 모르겠단다. 피가 섞였다는 말을 공연히 어렵게 돌려서 하는 것 같아서 마땅치 않고 심란하단다.



남덕현 귀농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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