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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2014 한국경제 토정비결

중앙일보 2013.12.09 00:44 종합 32면 지면보기
정선구
경제부장
1965년,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은 입시 오답파동이 있었다. 일명 ‘무즙 사건’. 전기 중학교 입시에서 ‘엿 만드는 순서에서 엿기름 대신 넣어도 좋은 것은?’이란 문항이 말썽이 됐다. 문교부가 밝힌 정답은 디아스타아제. 그러자 지문 중 무즙을 답으로 택한 입시생의 학부모들이 격분했다. 문교부를 찾아가 무로 만든 엿을 잔뜩 싸 들고 “무즙으로 만든 이 엿 좀 먹어봐라!”며 거세게 항의했다. 이 사건은 급기야 소송으로까지 번졌고, 재판부는 그해 3월 30일 무즙도 정답으로 인정했다. 이 결정으로 경기중에 30명이 추가 입학했는데, 후기 명문 중학교에 들어가 한 달간 반장까지 하다가 옮긴 이도 있었다. 그는 내친김에 경기고에 합격하고 훗날 경제부총리까지 지냈다. 인생에 행운이란 게 있다면 그의 1965년 토정비결이 대단히 좋았던 모양이다.



 2014년은 말띠 해. 말은 싱싱한 생동감과 뛰어난 순발력으로 대표되는 동물이다. 전쟁에선 군마요, 교통에선 역마다. 특히 내년엔 갑오년(甲午年) 청말띠다. 청말은 극단적인 성격이지만 영리하고 사람과의 의사소통이 원활한 게 특징이라고 한다. 마침 인천 아시안게임과 브라질 월드컵이라는 흥행 요소도 있는 내년, 우리와 세계 운세는 활짝 필까.



 일찍이 공자는 나라 운영의 중요한 세 가지를 역설하며, 굳이 우선 순위를 따진다면 신(信)-식(食)-병(兵) 순이라고 했다. 등 따스운 국방과 배 불릴 경제보다는 신뢰의 정치를 우선한 것이다. 그런데 일본 전국시대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의 생각은 달랐다. ‘식’을 맨 앞에 놨다. 어린 시절 오랜 인질생활로 툭하면 굶다 보니 나온 처절함이었다. 먹고사는 거야말로 생존의 필수조건이라 여긴 것이다.



 그렇다면 내년 우리나라의 ‘식’은 어떨까. 언제 경제가 어렵지 않은 해가 있었느냐마는, 그래도 새해는 무언가 다를 것이라고 소망하는 게 우리의 마음이다. 다행히 전망은 어둡지 않다. 한국경제에 결정적 영향을 주는 선진국 주도로 세계경제 성장률 회복세가 점쳐진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올 2.9%에서 내년 3.6%로 뛴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이와 비슷한 3.7~3.8%의 성장률이 예상된다.



 변수는 ①미국 양적완화 축소 ②유로존 위기 재연 가능성 ③중국 개혁 리스크 ④아베노믹스 성공 여부 ⑤신흥국의 지나친 대외의존도, 다섯 가지로 볼 수 있겠다. 출구전략은 달러 강세로 이어져 국제시장이 다시 요동칠 수 있다. 유럽에선 여전히 디플레이션 가능성이 높다. 중국은 내년에도 7%대 성장이 예상되긴 하나 경기부양책보다는 개혁정책을 펼칠 공산이 크다. 2탄까지 나온다는 아베노믹스가 실패한다면 그 후폭풍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일 것이다. 우리나라야 어느 정도 견뎌낼 수 있는 체력은 갖췄다. 하지만 주변 신흥국들이 휘청거리면 영향권에서 벗어난다고 보기 어렵다. 만약 이 다섯 가지 변수가 한꺼번에 온다면? 두 가지만 동시에 벌어져도 최악의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게다가 현장을 잘 아는 기업들의 예측이 부정적이다. 삼성의 한 사장은 “내년 경제는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대기업 사장은 “IMF의 전망은 믿을 게 못 된다”고도 했다. 주변 상황은 또 어떤가. 신·식·병 상황이 뒤죽박죽이다. 중국과 일본은 방공식별구역으로 생난리를 치고, 조 바이든 미 부통령은 “베팅” 발언으로 우리를 압박하는 탓에 신(新)열강시대의 부활을 보는 듯하다. 여야 극한 대립은 상수가 된 지 오래고, 우리 경제는 늘 북한 리스크에 휘둘린다. 이런 시대에 경제(食)는 정치(信)·국방(兵)과 따로 가는 게 불가능하다.



 토정비결에 인오술(寅午戌) 삼합(三合)이 좋다고 한다. 호랑이·말·개의 조화를 말한다. 마침 우리나라 지도는 호랑이 형상이요, 내년은 말띠 해며, 개는 늘 우리의 친근한 벗이다. 인오술을 공자 말씀에 대입하면 용맹한 호랑이는 ‘병’이요, 생동감 넘치는 말은 ‘식’이요, 충직한 개는 ‘신’이다. 이 세 가지가 2014년 우리나라의 토정비결이라고 생각하니 가슴 벅차지 않은가. 극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세 가지 운은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 이제 이를 잘 엮을 삼합의 지혜가 필요한 때다.



정선구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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