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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거짓이지만 거짓 말할 때 진실이 보이더라

중앙일보 2013.12.09 00:27 종합 20면 지면보기
순수문학과 대중문학을 넘나드는 작품을 써온 요시다 슈이치는 자신을 ‘박쥐’에 비유했다. “순수문학은 목소리, 대중문학은 스토리라고 생각한다. 잡지 성격에 따라 양쪽을 모두 쓰다 보니 장르를 크게 인식하지 않게 됐다”고 했다. [강정현 기자]
그는 늘 독자의 기대를 보기 좋게 무너뜨린다. 『악인』의 작가로 올해 데뷔 15주년을 맞는 요시다 슈이치(吉田修一·45)를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는 것은 불가능하다. 일본 문단에서도 문학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인정받는 작가답게 그 동안 순수문학부터 대중문학을 아우르는 작품을 선보여왔다.


장편 『태양은 움직이지 않는다』 낸 요시다 슈이치

태양광 둘러싼 국제 첩보전



 그가 첩보물이라는 새 장르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신작 장편 『태양은 움직이지 않는다』(은행나무)는 일본·중국·홍콩 등 동아시아를 무대로 최첨단 우주 태양광 발전 시스템을 둘러싼 국제 첩보전을 다룬다. 일본의 소규모 연예통신사를 가장한 산업스파이 조직 아시아네트(AN)통신의 요원 다카노 가즈히코와 의문의 미녀, 한국인 첩보원 데이비드 김에다 중국의 거대 에너지 기업과 일본·중국의 정치인 등이 얽히며 팽팽한 긴장감을 빚어낸다. 신간 출간에 맞춰 방한한 그를 만났다.



 『악인』 등 전작을 떠올리는 독자에게 이번 작품은 낯설게 다가온다. 작가는 “『악인』을 썼을 때도 그랬다. 연애소설인 『동경만경』을 쓴 요시다 슈이치 맞아라는…. 작품마다 계속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작가 스스로 ‘내 문학 인생의 분기점이 될 작품’이라 했듯 신작에서는 변화도 감지된다. “예전 작품이 등장인물의 마음을 쫓아갔다면 이번에는 인물의 몸과 움직임을 따라갔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썼다. 스스로 즐거웠다”고 말했다.



 신작은 무엇보다 동적(動的)이다. 전작 『원숭이와 게의 전쟁』에 이어 돈과 사랑을 향해 돌진하는 적극적 캐릭터가 등장한다. 그는 다시금 이야기의 힘을 믿게 됐다고 했다. 소설은 거짓이지만, 거짓을 말할 때 보이는 진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는 설명이다.



 이번 소설의 출발점은 오사카에서 실제 있었던 유아 아사 사건이다. 소설의 주인공 가즈히코는 엄마에게 버림받은 뒤 아사 상태에서 발견돼 요원으로 길러지는 인물로 그려진다.



일본 유아 아사 사건이 모티브



 “이 사건이 첩보소설로 이어진 게 나도 신기하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는데 슬프고 어두운 이야기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방에 갇힌 아이들을 밖에서 보는 시점으로 썼다. 그러다 같은 방안에서 바라보니 벽이 보이고, 밖으로 나가고 싶더라. 차도 타고 비행기도 타고. 어쩌면 방에 갇힌 아이들의 시점에서 공상하는 세계를 그린 이야기일 수도 있다.”



 우주 태양광 발전을 둘러싼 음모에 맞서는 과정에 일본과 중국의 차세대 정치인이 적극 협력하는 모습도 보인다. “정치에 대한 믿음은 아니고, 믿고는 싶다. 오히려 정치가보다는 젊은이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각국의 많은 친구를 갖게 된 요즘 젊은이들이 새로운 시작의 가능성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작품 에서는 악인도 이해받을 자리가 있다. ‘나쁜 놈’이라고 몰아가지 않는다. 인간에 대한 긍정으로 보일 만큼. “인간에게는 좋은 면과 나쁜 면이 모두 존재한다. 설명하기 쉽지 않은데 인간이 지닌 악이라고 하는 측면이 꼭 싫지만은 않다.”



한국영화 ‘베를린’ 기억에 남아



 『악인』 『퍼레이드』 등 그의 여러 작품은 영화와 드라마 등으로 옮겨졌다. 한국 영화를 즐겨본다는 그에게 만약 이번 작품이 영화화된다면 한국인 첩보원인 데이비드 김 역할에 누가 적합할지 물었다. 영화 ‘베를린’을 인상적으로 봤다는 그는 “하정우”라고 답했다.



글=하현옥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요시다 슈이치=1968년 일본 나가사키 현 출생. 97년 『최후의 아들』로 등단. 일본에서 대중성과 작품성을 갖춘 작가로 평가받는다. 장편 『퍼레이드』 『파크 라이프』 『악인』 『요노스케 이야기』 『동경만경』 등. 아쿠타가와상과 야마모토슈고로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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