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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젊은 날의 흔적 김광석 뮤지컬은 운명처럼 시작됐다

중앙선데이 2013.12.07 16:49 352호 9면 지면보기
연습실에서 함께한 김준수·장진 감독·박건형(왼쪽부터)
2013년 뮤지컬계엔 때아닌 김광석(1964~1996) 바람이 불었다. 3월 소극장 뮤지컬 ‘바람이 불어오는 곳’으로부터 조용히 훈풍이 불어와, 4월엔 ‘창작 뮤지컬의 신화’ 장유정이 연출한 ‘그날들’이 각종 상을 휩쓸고, 급기야 연말엔 최고의 스타 김준수가 출연하는 ‘디셈버’(12월 16일~2014년 1월 29일·세종문화회관)의 돌풍이 예보되고 있다. ‘우리 시대 이야기꾼’ 장진 감독까지 가세해 자작곡과 미발표곡을 포함한 김광석의 모든 노래로 엮은 유일한 뮤지컬 ‘디셈버’가 어떤 차별화된 감동을 빚어낼지, 뮤지컬 팬들은 기대에 부풀어 있다.

공연계 도전하는 영화계 ‘미다스의 손’ 김우택

그런데 이 작품, 좀 뜻밖이다. 기존 뮤지컬 제작사가 아닌 영화투자배급사 NEW가 제작에 나선 것. NEW가 어딘가. 2008년 설립된 신생 중소기업으로, 대기업 CJ·롯데·쇼박스가 삼분하고 있던 충무로에 파란을 일으키며 한국영화 시장을 재편하고 있는 ‘투자배급계의 풍운아’다. 지난해 ‘부러진 화살’ ‘내 아내의 모든 것’ ‘피에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등 조용히 개봉해 입소문을 타고 흥행한 영화들은 죄다 NEW의 작품. 올해는 최다관객을 동원한 ‘7번방의 선물’에 이어 ‘신세계’ ‘감시자들’ ‘숨바꼭질’ 등 제작비 50억원도 안 되는 영화들로 대기업의 100억원짜리 블록버스터와 당당히 맞짱 뜨며 상반기 매출액 점유율 1위에 올랐다.

NEW를 이끄는 사람이 김우택(49) 대표라는 걸 알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2000년 국내 최초 멀티플렉스 극장 메가박스 오픈의 주역으로, 2003년 39세로 쇼박스 대표이사에 올라 ‘태극기 휘날리며’ ‘말아톤’ ‘웰컴투 동막골’ ‘괴물’ 등 손대는 영화마다 대박을 친 ‘한국의 하비 와인스타인’이다. 2010년부터 NEW 대표이사를 맡아 신진 감독·제작자들의 작품을 과감히 발굴, 한국영화의 신(新)르네상스를 이끌고 있는 그가 이번엔 뮤지컬 ‘디셈버’에 총괄 프로듀서로 이름을 올렸다. 영화계 ‘미다스의 손’은 지금 왜 뮤지컬 시장을 노크한 걸까.

지난 11월 1일 저녁 8시. 뮤지컬 ‘디셈버’ 1차 티켓 예매가 시작되자마자 12만 명이 동시 접속해 서버가 마비되며 순식간에 5만여 석이 판매됐다. 창작 뮤지컬 사상 최다 단일 판매 기록이자 최고의 흥행 파워 김준수의 단일 판매 기록 역시 넘어선 수치다.

지난해 영화 ‘건축학개론’과 함께 시작된 ‘90년대 복고 바람’이 영화 재개봉 러시와 드라마 ‘응답하라 1994’ 인기 등으로 이어지고 있는 올해, 김광석 뮤지컬 열풍은 예고된 바다. 이제 막 40대 중년 문턱을 넘어선 소싯적 ‘X세대’가 문득 또 하루 멀어져 가는 청춘을 아쉽게 떠올릴 때 배경음악으로 깔리는 것이 김광석의 노래요, 흘러간 노래가 가장 감동적으로 부활하는 방식이 잘 짜인 스토리와 엮어진 주크박스 뮤지컬이기 때문이다.

영화계의 소문난 ‘촉’ 김우택 대표가 뮤지컬 제작에 뛰어든 것도 이런 트렌드를 예감했기 때문일까. “뮤지컬 디셈버는 운명이다. 운명처럼 시작돼 운명처럼 여기까지 왔다”는 게 그의 답이다. 지난해 인수한 음악회사가 우연찮게 김광석 음원을 유통하고 있었고, 평소 공연 매니어이자 김광석 팬이었던 그에게 ‘김광석 뮤지컬’이란 섬광이 스친 것. “김광석은 저와 동갑이기도 하고, 우리 젊은 시절을 함께한 음악이잖아요. 다행히 직원 모두 공감한 덕에 진행하게 됐죠. 복고 트렌드를 노린 건 아닌데 운 좋게 맞아떨어졌네요.”

이미 두 작품이 준비 중이라는 걸 뒤늦게 알게 됐지만 망설일 이유는 없었다. 그가 원한 건 김광석의 모든 노래가 온전히 전달되는 작품을 만드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학교 때나 사회 초년생일 때 늘 들었으니 우리 또래라면 적어도 한두 곡은 노래방 애창곡이죠. 그런데 준비하다 보니 새롭게 와 닿는 곡도 있더군요.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는 젊었을 땐 몰랐는데 요즘 들으니 대박이에요. 혼자 듣는데 눈물이 나고, 배우들도 연습 때 그 부분에서 다들 운답디다. 김광석의 음악은 스펙트럼이 넓어서 누가 들어도 다 자기 얘기로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주옥같은 노래들을 지탱할 강한 드라마를 위해 그는 뮤지컬 경험이 없는 장진 감독을 과감히 연출로 기용했다. 쇼박스 시절 배급한 ‘웰컴 투 동막골’을 가장 좋아하는 영화로 꼽을 정도로 장진의 스토리텔링을 좋아하는 그다. “드라마축을 강하게 하고 싶은데 머리에 떠오르는 사람이 장감독밖에 없어요. 처음엔 각본만 맡기려 했는데 뮤지컬 시장에 대한 얘기를 나누다 보니 저와 생각이 같더군요. 다양한 문제들이 산재한 어려운 시장인데, 어차피 처음 하는 거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우리만의 틀을 만들어 보자며 연출까지 부탁했어요. 장감독도 SNL하느라 한창 바쁠 때였는데 결국 동참해 줬고요.”

국내 최초로 ‘아이라이너 홀로그램’ ‘미디어 파사드’ 등 신기술도 도입한다. 살아있다면 내년 1월로 50세를 맞는 김광석을 무대에 세우기 위해서다. “관객과의 소통을 고민한 결과가 하나는 김광석의 오리지낼리티에 대한 향수를 최대한 살리자, 또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대에 맞게 어필하자는 것이었죠. 1월이 생일(22일)이자 기일(6일)이니 그를 직접 등장시키는 것이 의미가 있겠다 싶었어요. 상상되는 모습으로 복원을 시도해 봤는데 상당히 그럴듯하게 나왔습니다.”

첨단 기법으로 50세 된 김광석의 모습 되살려
사실 그를 만난 건 그의 ‘촉’이 궁금해서였다. 이미 포화상태라는 뮤지컬 시장에 뒤늦게, 그것도 리스크 부담이 큰 대형 창작뮤지컬로 뛰어든 데는 어떤 촉이 작용했을까. 그는 “첫 뮤지컬이라 아는 게 없다”며 겸손하게 말문을 열더니, ‘조직의 확신’ ‘절대적인 시간과 경험이 필요하다’ ‘때를 기다려야 한다’는 말을 반복했다. ‘조직의 확신만 있다면’ 창작이든 라이선스든 가리지 않을 것이며, 제작뿐 아니라 좋은 작품에 적극 투자도 할 계획이란다. 영화판에서와 달리 시작부터 50억원 대작으로 승부한 것도 ‘때가 됐고, 그 정도 규모가 필요한 작품이라는 조직의 확신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대화를 나눌수록 타고난 승부사 기질을 드러냈다. “일단 시작했으니 끝을 봐야죠. 작지만 강한 미디어 그룹을 만드는 꿈을 위해 독립한 만큼, 어떤 분야든 잠깐 재미 삼아 했다 그만두는 경우는 없습니다. 시작할 땐 그에 대한 소명감으로 해요. 어떤 방식이건 뮤지컬 산업 자체에 도움이 되도록 노력할 겁니다.”

국내 최대 규모 극장인 세종문화회관을 뚫고, 최고의 티켓파워 김준수를 캐스팅한 것도 ‘어려울 것’이라는 주변의 예상을 뒤로하고 뚝심 있게 추진한 결과다.

“연말 성수기에 스타 연출가와 최고 아이돌을 기용한 50억 대작이라니, ‘이렇게 성공 가능성 높게 해놓고 업계 진입하는 건 반칙’이란 소리도 들었지만, 그런 조건을 갖추기까지 많은 산을 넘어왔어요. 처음엔 극장 구하기도 힘들다더군요. 그래서 제일 큰 극장을 찾았죠. 창작 뮤지컬은 통상 소규모로 시작한다지만, 투자는 작품에 맞는 규모로 해야죠. 김광석 노래를 보다 많은 사람에게 들려주려는 작품이니 그에 걸맞은 하드웨어를 갖춰야 했어요. 세종과 막상 터놓고 얘기해보니 방법이 생겼고요. 김준수도 주위에선 힘들 거래요. 하지만 운명을 믿고 만났죠. 소주 한잔 하면서 그저 내 진심을 얘기했을 뿐인데 선뜻 협조하겠다는 겁니다. 김준수 본인에게 창작 뮤지컬에 대한 욕망, 김광석 노래에 대한 욕심이 다 있었던 거죠.”

모든 직원과 소통으로 작품에 대한 애정 공유
2008년 외화 ‘트와일라잇’으로 출발한 NEW는 2010년 ‘헬로우 고스트’로 302만 관객을 모으면서 진격을 시작했다. 연도별 관객동원 실적을 보면, 2010년 ‘헬로우 고스트’ 등 15편에 1080만 명, 2011년 ‘그대를 사랑합니다’ 등 19편에 1464만 명, 2012년 ‘내 아내의 모든 것’ 등 15편에 2344만 명, 2013년 ‘7번방의 선물’ 등 17편 예정에 현재까지 3335만 명을 동원해 배급편수가 대동소이한 가운데도 관객 수가 현격히 증가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올해 상반기에는 11편을 상영해 매출액 점유율 22.5%를 기록하며 작품 수가 두세 배 많은 대기업을 모두 제치고 1위에 올랐다.

하지만 김 대표는 “매출이나 점유율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중요한 건 작품 하나하나에 애정을 쏟는 NEW의 문화라는 얘기다. 극장 인프라가 없다는 치명적 약점이 오히려 배급과 마케팅에 집중력을 발휘하는 효과를 낳았고, 초기에 인지도도 없고 자본도 적어 신인감독들과 일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다양한 영화를 발굴하는 계기가 됐다. 무엇보다 작은 기업이기에 막내 직원의 의견까지 묻는 원활한 소통이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 특히 소통의 목적이 결코 ‘히트할 작품을 점치기 위해’가 아니라 ‘작품에 대한 애정을 공유하기 위해’서라는 말이 인상적이다.

“성공 여부는 아무도 몰라요. 다만 어떤 작품에 대해 조직원들이 알아야 그에 대한 힘과 애정이 공유된다고 믿어요. 전 직원 시나리오 회의를 하는 것도 결론보다 과정을 통해 작품을 공유하려는 거예요. 지금 좀 더디더라도 그런 과정이 더 중요합니다. 내 독단으로 간다면 조직에는 힘이 안 남겠죠. 뮤지컬의 경우도 조직원 모두가 그 프로세스에 참여했기 때문에 영화팀도 도와주려고 힘을 모읍니다. 이 과정이 5년, 10년 후에도 ‘문화’로 남아 우리 회사를 지탱하는 힘이 될 겁니다.”

‘미다스의 손’은 소통의 결과일 뿐 결코 개인의 감이나 촉이 좋아서가 아니란 말이다. “내 역할은 나보다 뛰어난 선수들에게 장을 만들어주는 일”이라고 선을 그으면서도, 영화를 통해 사회에 긍정적이고 사랑스러운 메시지를 전하겠다는 소명감이 있기에 ‘7번방의 선물’이나 ‘헬로우 고스트’ ‘웰컴투 동막골’ ‘말아톤’ 같은 영화가 개인적으로도 자랑스럽다고 말하는 얼굴에 자신감이 스친다.

“어렸을 때 공부를 꽤 잘했는데 중 2때 생물을 52점 받은 적이 있어요. 시험 전날 영화 ‘포세이돈 어드벤처’를 너무 보고 싶어 허리우드 극장에 혼자 갔었죠. 진 해크먼이 신부로 나와 마지막에 다른 사람들의 탈출을 돕고 사랑과 희생, 헌신에 대해 하나님과 대화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그 대사가 내내 맴돌아 공부를 못 했어요. 결국 시험을 망쳐 난리가 났지만, 그때 그 대사가 저를 지금껏 붙들어주고 있는 것 아닌가 합니다. 사랑해야 되고, 남을 도와야 되고, 이런 것들이 제가 하는 미디어를 통해 전해졌으면 하는 거죠.”

몇 년 새 NEW의 활약으로 한국 영화가 다양성과 저변확대 측면에서 진일보한 만큼, 업계에서는 NEW가 대기업 틈새시장을 벗어나 영화 산업의 새로운 틀을 짜주길 기대하는 분위기다. 이에 대해 김 대표는 “틈새시장을 공략한 적이 없다”고 잘라 말한다.

“늘 메인시장을 겨냥해 우리가 좋아하고 확신하는 작품에 투자해 왔어요. 처음부터 100억짜리를 못한 건 자원이 없었기 때문이죠. 모든 일에는 단계가 있고, 선택의 폭이 점차 넓어질 겁니다. 아마 3년 전에 뮤지컬 하자 그랬으면 못했겠죠. 그만큼 성장했고 우리 자원을 분배할 위치에 온 것은 감사한 일입니다. 새로운 틀까진 몰라도 건강한 시장을 위해 꾸준히 노력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 되겠죠. 뮤지컬 시장도 잠깐 경험해보니 아직 갈 길이 멀더군요. 처음엔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을 거예요. 큰 라이선스나 좋은 극장은 이미 다 차지하고 있겠죠. 기존 방식으로는 힘들 테니 결국 우리는 영화판에서 그랬듯 새로운 시도를 해나갈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런 시도가 뮤지컬 시장에도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왔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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