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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더니즘의 냉정함과 엄격함 유치찬란하게 비틀다

중앙선데이 2013.12.07 16:58 352호 14면 지면보기
1 프루스트(Proust) 의자(1978), 디자인: 알레산드로 멘디니, 기존에 생산된 로코코 양식의 의자 커버에 점묘법 회화의 패턴만을 그려넣었다.
영국의 디자인 비평가 스티븐 베일리는 포스트모던 디자인 그룹인 ‘멤피스(Memphis)’의 멤버 미켈레 데 루키에게 이렇게 질문했다. “멤피스의 작품을 거실에 놓아둔 사람을 실제로 본 적이 있나요? 아니면 그렇게 하길 원하는 사람이 있나요?”

김신의 맥락으로 읽는 디자인 <18> 포스트모던 가구

이 질문은 가구를 만든 사람을 노골적으로 조롱하는 듯하다. ‘당신이 만든 가구는 실제 생활에서는 도저히 쓸 수 없어요’라는 뜻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다른 유명 디자이너들의 가구나 조명이 수십 년이 지난 뒤에도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과 달리 멤피스가 생산한 포스트모던의 산물을 호텔이나 카페, 집에서 보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1980년대 초반 멤피스 가구와 조명이 등장하자 전 세계 유명 디자인 잡지들은 열렬히 환호했고 이들의 ‘작품’으로 특집 기사를 만들기 바빴다.

모더니즘 디자인은 1920년대 독일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과거 역사주의와 완전한 결별을 선언한 모더니즘은 건축·인테리어·가구·조명·식기 등 삶의 모든 분야에서 현대적인 생활에 맞는 새로운 디자인을 추구했다. 새로운 구조를 탐색하고 새로운 재료로 최신의 기술을 활용해 제품을 만들었다. 기능주의를 앞세우고 장식을 극도로 혐오한 모더니스트들은 절제를 미덕으로 삼았다. 금욕주의는 모더니스트들이 갖는 우월감의 증표였다.

그런 디자인에 대해 일반 대중은 심드렁한 반응을 보였다. 그들의 건축과 실내가 너무 차갑고 비인간적으로 보인 것이다. 하지만 낯선 아방가르드 아트도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 눈에 익숙해지는 것처럼 모던 디자인도 점차 생활의 일부가 되어 갔다. 네모 반듯한 건물, 아무것도 없는 텅 빈 벽면, 금속 프레임으로 제작된 각진 가구들이 흔히 볼 수 있는 생활의 풍경이 되었다.

2 1981년 개최된 멤피스 그룹의 전시품들. 상징성과 유희성, 그리고 화려한 표면 색채, 키치적인 요소 등으로 모더니즘의 원칙들을 깨부쉈다. 3 다시 디자인된 토넷(Thonet) 의자(1979), 디자인: 알레산드로 멘디니, 현대 가구의 이정표와도 같은 토넷 의자에 장식을 더해 경의를 표하고 있다. 4 칼톤(Carlton) 책장(1981), 디자인: 에토레 소트사스, 기능을 무시하고 다양한 상징성과 재미를 부여했다. 5 미켈레 데 루키가 디자인한 톨로메오(Tolomeo) 조명
모더니즘, 보수 권력이 되다
전후 미국을 비롯한 서유럽 국가들의 경제적 풍요가 최고조에 달하자 소비자들의 마음은 들떴다. 경제적 여유를 증명할 물건들로 집안을 채우고 싶어했다. 이제 차갑고 엄격한 모더니즘은 젊은이들의 창작 욕구를 억압하는 보수화된 권력이 돼버렸다. 모더니즘을 권좌에서 끌어내려는 다양한 운동이 일어났다. 1960년대부터 시작된 이른바 팝 디자인, 래디컬(Radical) 디자인, 안티디자인(Anti-Design) 등이 그것이다. 이 운동을 주도한 이탈리아의 과격한 젊은 디자이너들은 모더니즘의 합리주의를 비판하며 기능이 아닌 사람과의 의사소통과 유희, 번잡스러운 대중문화의 기호를 표현한 디자인을 발표했다.

이렇게 모더니즘의 작동이 느슨해진 틈을 타 포스트모더니즘 디자인이 그 외양만큼이나 화려하게 1970년대 후반부터 급부상했다. 그 중심에 에토레 소트사스와 알레산드로 멘디니 같은 논리로 무장한 디자이너들이 있었다. 알레산드로 멘디니는 1970년대 말부터 ‘지극히 따분한’ 또는 ‘리디자인’이라는 개념으로 가구를 발표했다. 그는 디자인에서 더 이상 새로울 게 없으므로 기존에 생산된 가구를 ‘따분하게’ 장식적으로 변형하는 일로 새로움을 대체했다. 기존의 로코코 스타일 의자에 후기 인상파 화가인 폴 시냑의 점묘화 기법의 패턴을 그려 넣은 ‘프루스트 의자’는 대표작이다. 이는 새로운 구조, 새로운 형태, 새로운 재료를 추구한 모더니즘의 철학을 비웃는 것 같다. 유명한 토넷 의자에 모빌 장식을 덧붙인 ‘리디자인된 토넷 의자’에 대해 더 이상 혁신적인 디자인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위대한 작품에 경의를 표한 것이라고 그 의도를 설명한다. 하지만 이는 모더니즘이 그 생명을 다했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실용성 없는 장식과 현란한 치장
에토레 소트사스는 60대의 늙은 나이에 아들뻘 되는 젊은 디자이너들과 뜻을 함께 해 ‘멤피스’라는 디자인 그룹을 만들어 1980년대 초반 가구와 조명을 발표했다. 그는 젊은 시절에는 모더니스트로 활약했던 디자이너다. 1950년대 미국과 인도 여행을 통해 팝 문화와 신비주의로부터 영감을 받은 소트사스는 차가운 이성 대신 모호하고 불합리한 사고를 바탕으로 재미와 상징성을 가구에 불어넣었다. 1981년 개최된 멤피스 전시회 때 가장 뜨거운 반응을 일으킨 그의 칼톤 책장은 기능성과 무관한 유희적 구성과 패턴으로 장식돼 가구라기보다 커다란 오브제처럼 보인다. 나무 위에 코팅 플라스틱을 한 깊이감이 없는 표면, 대리석이나 나무와 비슷해 보이는 싸구려 장식 효과, 아프리카 토착 신앙의 상징물이나 만화를 뒤섞은 듯한 복잡한 그래픽 등으로 모더니즘이 상상할 수도 없는 치기 어린 순진한 창조를 선보였다.

그를 리더로 따르는 미켈 데 루키를 비롯한 젊은 멤피스의 멤버들도 실용성이 없는 장식과 현란한 색상으로 가득한 가구들을 디자인했다. 미국의 대중문화부터 인도 신비주의, 아르데코, 초현실주의, 저급한 키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양식을 수용한 멤피스의 가구와 조명들은 모더니즘이 경멸한 역사적 절충주의와 장식을 부활시켰다. 멤피스의 작품들은 어떻게 보면 싸구려처럼 보였고 변덕스럽고 이국적이고 요란했다. 그렇지만 이 전시는 발표되자마자 찬사를 받았다. 당시 디자이너들은 억눌린 것에 대한 해방감 같은 것을 느꼈던 것이다. 모더니즘이 강요한 취향의 독점이 와해되는 것 같았다. 그에 반해 변태성욕, 자아도취적인 난센스, 2류 사이비 문화 이벤트라는 비난 또한 감수해야 했다.

포스트모던 가구는 지속적이지 못했다. 1980년대 초반 불꽃처럼 타올랐다 이내 사그라졌다. 멤피스의 핵심 인물인 미켈레 데 루키는 이후 기능주의의 결정체와도 같은 톨로메오 조명을 디자인해 많은 돈을 벌었다. 그는 정말로 그 가구들을 거실에 놓을 마음으로 디자인했을까? 아니면 단지 창작욕구의 해방감을 맛보고 싶었던 걸까?

30여 년이 지나 일본의 디자이너 하라 켄야는 포스트모더니즘을 “모더니즘이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계승되어 가는 과정에서 일어난 한때의 소동”이라고 평가했다. “모더니즘의 가능성과 한계를 자신의 경험으로 지켜본 디자이너가 가공의 신호 체계를 만들어 디자인을 해학적으로 보이게 했다”는 것이다. 모더니즘 디자인이 나타난 지 이제 100년이 돼 가지만 여전히 그 영향력과 권력이 막강한 것을 보면 그의 말이 맞는지 모르겠다.



김신씨는 홍익대 예술학과를 졸업하고 17년 동안 디자인 전문지 월간 ‘디자인’의 기자와 편집장으로 일했다. 대림미술관 부관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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