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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물흐물 못생겼지만 시원하고 진한 감칠맛 비싼 대구 저리가라네

중앙선데이 2013.12.07 17:25 352호 22면 지면보기
1 작고 둔하게 생긴 물메기지만 통영 사람들에게는 중요한 겨울 손님이다.
“그거 맛있어요.”
“그래도 생긴 게 너무 이상해요.”

정환정의 남녘 먹거리 <7> 통영 물메기

“저도 그래서 먹기가 좀 그랬는데, 막상 먹어보니까 그렇질 않더라고요.”
“제가 비린 건 잘 못 먹거든요.”
“에이 민물 매운탕이랑 비교하시면 안 돼요. 맛은 전혀 달라요.”
“그래도 좀 별로….”

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한다.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사람의 의무 중 하나는 그 지역의 유명한 혹은 잘 알려지지 않은 볼거리를 소개해주거나 다른 곳에서 먹을 수 없는 메뉴를 추천해주는 일이다. 여느 때처럼 그런 요청을 접수한 어느 날 저녁, 나는 이제 막 잡히기 시작한 물메기를 추천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미심쩍다는 눈치였다. 대화에서 오간 것처럼 생긴 게 영 이상하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물론 그 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나 역시 통영에서 물메기를 처음 봤을 때, 그 기괴한 생김새와 마치 젤리나 푸딩처럼 흐물거리는 살을 보고 “아이구 저런 걸 어떻게 먹어”라는 생각부터 했으니까. 하지만 아내의 손에 이끌려 물메기탕을 먹어보고는 나는 감탄에 감탄만 할 수밖에 없었다. 그 흉측한 외모에서는 절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시원하고 진한 감칠맛이 입안을 가득 채웠기 때문이었다. 물메기에 비하면 겨울 생선의 황제 대구는 너무 진했고 봄의 전령사 도다리는 너무 담백했다. 맛의 균형에 있어서만큼은 정말 완벽할 정도의 황금률을 자랑하는 게 바로 물메기탕이었다.

그래서 나는 통영을 찾는 많은 사람들에게, 특히 생선이라면 고등어·갈치·삼치·광어·우럭밖에 모르는 도시 사람들에게 물메기를 추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한 번도 물메기를 추천해준 것에 대한 원망을 들어본 일은 없다. 하지만 시장에서 “어머, 이 이상하게 생긴 물고기는 뭐예요?” 등의 대화를 통해 물메기와 안면을 튼 사람은 종종 그것을 먹는 데에 망설이는 경우도 있었다. 앞에 소개한 대화처럼 말이다.

2 바닷바람에 물메기를 말리면 맛있는 포가 된다. 3 통영의 추도는 물메기의 집산지로 겨울이면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진다. 4 맑게 끓인 탕에 고춧가루를 조금만 얹으면 완성되는 물메기탕.
대구 대신 물메기
사실 물메기가 지금처럼 통영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기 시작한 건 그리 오래 전의 일은 아니란다.

“미기(메기. 통영 사람들은 물메기를 그냥 메리라 칭하는 경우가 더 많다)를 아예 안 묵은 건 아인데, 미기 말고도 묵을 게 마이 있었으이 일부러 그 몬 생긴 거 먹을 이유는 없었던 겁니다.”

손님에게 물메기탕을 강권(?)하다가 도리어 내가 먹고 싶어져 일부러 한가한 시간에 찾은 식당에서 “예전엔 물메기를 안 먹었다면서요?”하고 주인 아주머니에게 물었더니 아주머니가 웃으며 대답했다.

“여 토영(통영 사람들은 통영을 ‘토영’이라 부른다) 사람들이 묵는 건 제대로 묵습니다. 꼬기도 고등어, 갈치 같은 거는 하품이고 뽈라기(뽈락), 참가자미, 대구, 도다리 같이 제철에 나고 맛 좋은 것만 묵지요. 그래 우리들이 관광차로 안동 같은 데 놀러 가서 버스가 자반고등어 파는 데 내리주도 그거 사는 사람이 없다 안 합니까. 나중에 주인이 나와가 왜 안 사느냐고 물어보마 ‘아이고 우리가 토영에서 왔거든요. 생물 아니모 안 묵어놔서…’ 그라모 다 이해를 해줘요.”

아닌 게 아니라, 본격적인 식사에 앞서 나온 반찬만 해도 ‘격’이 달랐다. 회만 해도 학꽁치, 병어, 도미 세 가지가 있었고 제대로 구운 생선도 한 마리 있었으며 호래기(꼴뚜기) 젓갈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비록 절대적 가격으로 보자면 비싼 감이 있지만 ‘이 정도는 나와야 한끼 식사’라 할 수 있는 통영식 상차림이었다.

하지만 대구가 잡히질 않으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겨울 통영 밥상을 그득하게 만들어주던 대구가 사라졌으니 그 대체재를 찾아야 했는데, 그게 바로 못 생긴 걸로 치면 첫손에 꼽힐 물메기였다.

물메기포 스무 마리 한 묶음에 20여만원
커다란 몸뚱이에 시원한 입, 부리부리한 눈알까지 어디 하나 겨울바다의 황제로 칭하기 모자랄 데 없는 대구의 빈자리를 천덕꾸러기처럼 생긴 물메기가 차지했다는 게 참으로 역설적이지만, 그 맛만큼은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대구 한창 비쌀 때는 쌀 한 가마니 값이었어요. 그래도 토영 사람들은 시장에 대구 나왔다 카믄 달리가 샀지. 근데 미기도 대구맹키로 맛있는 기라. 그래 묵기 시작했다 안 합니까.”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탕으로 끓여낼 때 사용하는 물메기 역시 살아있는 것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미기가 죽으모 아무리 딴 거 옇어 끓여도 시원하지가 않아요. 살아 있는 걸로 끓이야 묵을 만한깁니다.”

그러고 보니 시장에서 본 대부분의 물메기들은 아직도 숨이 붙어 펄떡이거나 아가미를 펄럭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물메기가 물 밖에서도 오래 살아 있는 놈이라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란다.

“물 밖으로 나오마 금방 죽습니다. 시장에서 살아 있는 미기들은 이제 막 갖다 놔가 아직 숨이 붙어 있는 기고.”

아하, 그러니까 통영 사람들이 많이 사가다 보니 수조에 넣어 두질 않아도 살아 있을 만큼 싱싱한 물메기들이 끊임없이 공급되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런 물메기를 말려 황태처럼 포를 만드는데, 한창 추운 계절이 지난 1월 중순부터 시장에 풀리기 시작한다. 스무 마리 한 묶음에 이십여 만원. 그리 녹록한 가격은 아니지만, 가벼운 맥주 안주는 물론갖은 양념으로 간을 한 찜, 시원하게 끓여내는 국까지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어 그 맛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한겨울 별미로 인기가 높다. 그리고 내 입맛에도 잘 맞았다.

나는 지난 저녁, 손님을 설득(?)하다 결국 스스로 설득당해버린 내 입과 위장에 아낌없이 물메기탕을 부어 넣어주었다. 그리고 마침내 절반쯤 빈 그릇을 보았을 때에야 촬영도 해야 한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래서 부랴부랴 카메라를 들어 조금은 지저분해진 탕그릇을 찍었다.

찍어놓고 나니 민망하기 이를 데 없었지만 그 이상한 사진 한 장만큼 이상하기 이를 데 없는 물고기가 얼마나 맛있는지 증명하는 증거도 없으니 그냥 사용하기로 했다. 어쩌면 물메기의 역설이 알려준 용기 덕분인지도 모르겠다.

『서울 부부의 남해 밥상』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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