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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떤 베토벤보다 베토벤다운!

중앙선데이 2013.12.07 17:28 352호 24면 지면보기
예상대로였다. 파보 예르비는 구질이 다양한 명투수처럼 끊임없이 악단을 독려하며 템포와 밀도를 조절했다. 그의 강렬하고 예민한 지휘봉에 도이치 캄머필 단원들은 덤비거나 물어뜯듯 긴장을 자아내며 반응했다. 서로를 살피며 연주하는 단원들은 미소를 교환하곤 했다. 이들은 자신들이 만들어내는 음악을 매 순간 즐기며 사랑하는 듯했다.

파보 예르비 지휘 도이치 캄머필 첫 내한공연, 12월 4·5일 예술의 전당

예상보다 더했다. 이들의 베토벤 교향곡 전곡 음반을 평소 많이 들었지만 시각적 흥분이 가세해 펼쳐지는 자발적 연주의 강렬함은 생각보다 훨씬 컸다. 라이브만의 묘미가 무엇인지를 새삼 환기시켰다.

도이치 캄머필의 첫 내한공연이 열린 12월 4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은 음악 애호가들로 북적였지만 상대적으로 무대 위 규모는 소담스러웠다. 좌측에 석 대의 더블베이스, 우측에 팀파니가 위치했다. 양 날개처럼 바이올린이 포진하고 그 뒤에 첼로와 비올라가, 그 뒤에 목관 및 금관이 위치했다.

‘피델리오 서곡’부터 범상치 않았다. 박수가 채 그치기도 전에 지휘봉이 허공을 갈랐다. 40명 내외로 수적으로 적은 대신 각자 재량을 발휘할 수 있는 범위는 훨씬 넓었다. 이들은 재료 자체로 승부하는 요리사 타입은 아니었다. 내추럴 트럼펫과 팀파니 정도가 원전 연주의 질료일 뿐이었다. 나머지는 직접 몸을 써서 움직이며 베토벤이란 형상을 구현했다. 현악 주자들은 비브라토가 거의 없는 주법을 쓰며 활뿐 아니라 온몸을 리드미컬하게 움직여 생생한 음을 구현해 냈다.

이어진 교향곡 7번. 역시 박수가 끊기기 전에 첫 음이 시작됐다. 고색창연한 팀파니 음색이 귀를 잡아끌었다. 예르비는 지휘대 위를 껑충껑충 뛰며 악단을 독려했다. 타고난 음색보다는 현재의 움직임과 자세, 태도가 결정적으로 작용하는 연주란 생각이 들었다.

아타카로 끊김 없이 2악장 알레그레토가 시작됐다. 과거 우유광고에 나와 유명해진 해석과는 완전히 달랐다. 베토벤 교향곡 7번을 리스트는 ‘리듬의 신격화’라 불렀다. 전체적으로 보면 빠른 춤, 느린 춤, 코믹한 춤, 격렬한 춤으로 되어 있는 댄스 컬렉션 같은 교향곡이다. 역시 아타카로 시작된 3악장. 인류를 위해 술을 빚은 디오니소스로서의 베토벤이 이보다 더 실감나게 와 닿은 적이 없었다. 막판 4악장에서는 박자가 뒤엉킬 뻔도 했는데, 예르비의 액션으로 자연스럽게 흐름을 되찾는 모습이었다. 슬림한 근육질 몸매 같았던 교향곡 7번 연주가 끝나고 예르비는 목관악기와 호른, 팀파니 주자를 차례로 일으켜 세우며 격려했다.

휴식시간 후 교향곡 3번 ‘에로이카’에서 홀 적응을 끝냈는지 1부보다 매끄러운 모습이었다. 둔중함을 벗어버린 참신한 해석을 선보였다. 수동 기어를 자유자재로 변속하며 익숙한 핸들링으로 예측된 드리프트를 하듯 이 곡에서 예르비는 액셀을 자주 밟았다. 복잡한 악구를 명확하게 ‘해치우며’ 호른이 불고 있는 도중에도 나머지 주자들이 셈여림을 조절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약간의 공백을 가진 뒤 2악장 장송행진곡을 시작했다. 팀파니의 타격과 목관의 지저귐이 잘 들리는 가운데 비장감은 그대로 유지됐다. 3악장에서 호른 연주는 완전히 빼어나지는 않았지만 실수가 없었고 음의 미립자를 썰어서 분류하듯 속도에도 무너지지 않는 디테일이 경이로웠다. 4악장 피날레는 피치카토 후에 현악 수석 주자들이 현악 4중주처럼 연주하는 모습이 볼 만했다. 콘서트마스터가 장식음을 연주하는 것은 생경할 정도였다. 이들이 총주에서 만들어내는 소리가 의외로 풍성하고 커서 놀라웠다. 커튼콜 때 예르비는 호른과 목관, 금관, 팀파니 단원 순으로 기립시켰다.

“어떤 시련을 겪더라도 주저앉아 있지 말고 움직여라.” 그 어떤 베토벤보다 베토벤다웠던 예르비와 도이치 캄머필의 연주 너머로 베토벤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암흑에서 광명으로’ 향했던 베토벤의 모토는 지친 현대인들에게도 늘 든든한 힘이 되어주는 것 같다.

앙코르곡은 즐겨 연주하는 시벨리우스의 ‘슬픈 왈츠’. 아버지 네메 예르비가 왜 아들에게 핀란드의 거장 파보 베르글룬트의 이름을 붙여줬는지를 알 수 있는 해석이었다. 중간에 극도의 피아니시시모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마지막 앙코르는 브람스 헝가리 춤곡 1번이었다. 빠르고 느린 템포 변화가 아찔했다. 인터뷰에서 밝힌 대로 예르비는 베토벤 이외의 레퍼토리에서도 긴밀하게 반응하는 단원들을 보여주고 싶었을 것 같다. 예르비와 도이치 캄머필은 2014년과 2015년에도 내한, 각각 브람스와 슈만 교향곡 전곡을 연주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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